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눅 24장 36-53절 2018.9.2.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눅 24장 36-53절 2018.9.2.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눅 24장 36-53절 2018.9.2.2018-12-03T23:54: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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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모두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주에는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구약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지난주 케냐로 가는 중이나 가서 사역하는 중이나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서도 예수께서 이십오리를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면서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확신을 들었습니다. 2시간 반이면 예수님처럼 성경을 통하여 기존의 성도들에게 부활 신앙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2시간 반’짜리 부활신앙교재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도했으면 해요.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11번째 나타나신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6절을 읽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열한 제자들 가운데 서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말로서 샬롬, 즉 평강을 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신 데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자라야 진정으로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물질을 쌓음으로, 지식을 얻음으로, 높은 지위를 얻으므로 등등의 방법을 통해서 평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당시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평강을 얻는 유일한 길은 죄 문제를 해결받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징계를 받으시므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로마서 5장 10절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평강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유를 불문하고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인데 우리는 이미 그 문제를 해결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그리스도이시라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들이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인사말로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37절입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그들이 예수께서 인사말을 하셨어도 그들이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38-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께 이렇게 손과 발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시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아 드신 것은 그들이 여전히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친히 보여주셨어도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과 관련하여 자신에게 어떤 요인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가 자랑거리로 바뀌는 순간, 인생은 추락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고 심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됩니다. 유대인의 역사가 바로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과 발을 보이시고 그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드신 것을 통하여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몸의 부활입니다. 누가가 굳이 예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원론 사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리스철학은 이원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즉 영혼은 고상하고 불멸하는 것인데 반하여, 몸은 천하고 일시적인 감옥과 같아서 영혼이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미화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원론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구원을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 간다고 교리화한 것도 이런 플라톤의 이원론을 수용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구원은 플라톤의 이원론과는 전혀 다릅니다. 즉 성경은 영혼의 구원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몸의 부활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보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의 부활을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단지 천국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여전히 부활을 믿지 못하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44-46절을 읽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본문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라는 것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만 다시 살아나신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을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신 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근거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혹자는 영적 체험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신비적 체험’은 어느 종교에나 있습니다. 심지어 이단 종교에도 있습니다. 신천지는 교주 이만희를 성령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에 이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방언을 합니다. 세계3대 종교도 다 방언을 합니다. 이슬람교도들과 불교도들도 방언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들도 방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방언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안닙니다. 또한 병 고침의 기적도 기독교에서만 아니라 승려나 힌두교와 이슬람 사제들과 심지어 무당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성경은 사단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권능을 베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7:22). 따라서 ‘영적체험’을 기독교의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근거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살아나신 것을 증언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성경으로 증명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을 읽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런데 예수께서 성경을 통하여 부활하신 것을 깨닫게 하신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44절을 읽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구약성경 39권중 선지자의 글, 즉 예언서가 17권이나 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언서에서만 자신에 대한 예언을 찾아내서 말씀하시지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시편의 글에서도 찾아 말씀하셨습니다. 이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관한 예언은 300개 이상 등장합니다. 이들 예언에는 예수님의 초림, 고난, 십자가에 죽으심, 승천, 재림 등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한 말’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예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자가 살아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공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여인들에게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 28:5-6)라고 말한 것입니다. 천문학자 Peter Stoner’이 ‘과학의 소리’에서 한 개인에 대한 예언 8가지가 모두 맞을 확률은 1/10경(1/100,000,000,000,000,000)이라고 기고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예언은 지금껏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재림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곧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신 후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7-48절입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가 시작되는데 그 일에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일에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본문 49절을 읽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 말씀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왜 성령을 받고자 합니까? 은사사역이나 치유사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으면 이런 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게 하리라”(행 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1-53절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예수께서 이렇게 승천하신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승천하게 하신 것을 연상시킵니다(왕하 2:11). 예수께서 승천 후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의 이름을 전하면 각종 핍박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날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이 항상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까지만 성령의 기다리며 성전을 늘 찬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깨달은 자는 성전에서 예배만 드려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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