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꿰뚫다 마28:1-10 201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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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꿰뚫다 마28:1-10 2014.4.202018-12-03T21:18:3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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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박차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절기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종살이 하던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합니다. 부활을 제대로 안만큼 우리의 신앙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처럼 부활에 관련한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예수의 부활은 정말 역사적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믿어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마가 그랬지 않았습니까? 혹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활을 굳게 확신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사람의 수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세계에서도 개인의 능력차에 따라 다릅니다. A라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B라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부활에 의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차원에서만 부활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함으로 그동안 믿어지지 않았던 부활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어떻게 예수께서 부활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야 믿으려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도마에게 찾아가서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라고 하자 도마는 믿을 수가 없다며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0:25)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직접 보지 않고 만질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지 못했어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나라에 가보지 않았어도 달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도마처럼 못 자국을 만져보지 못해도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세 가지로 증명해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최종적 권위는 성경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믿지 않거나 성경을 따르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만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수천 년 전부터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또 옳은지 그른지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교과서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바뀌고 있습니다. 한 때 무비판적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이전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습니까? 기록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바꾼 적이 없고 한 군데도 수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주장하는 성경의 주장을 온전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평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만 다시 살아난다고 말하는 들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돌이 굴려지고 무덤에 있던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로마군인들이 무덤의 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 중에 어떤 말이 믿을만할까요?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당시 경비병들은 네 명이 한 조로 편성되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즉 혼자서 지키지 않고 네 사람씩 24시간을 교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다 도망을 갔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기 때문에 무덤이 텅 비어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경은 군병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돈을 받고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인도에서 노방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설교 중에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한 가지를 가졌소.” 그러자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그것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이 있기 때문에 마호메트란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들이 믿는 예수의 무덤은 텅 비어 있지 않소.” 그러자 스탠리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와 당신들의 차이요. 마호메트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이 있다는 것은 그가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비어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비롯하여 베드로, 열두제자, 오백여 형제 등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12명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순교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간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부활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부활하신 사실까지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의 부활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러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가 살아난 기적을 여기저기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수넴 여인의 아이가 죽었다가 살아났고, 사르밧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나인성과부의 아들은 장지를 향해 가던 도중에 살아났고,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를 펄펄 풍기고 있었지만 살아났습니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죽었던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을지라도 죄 사함을 받거나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우리의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우리의 죄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이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온 천하에 공표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부활절예배를 드리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관련하여 죽음을 생각할 때에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죽음을 없앨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요한복음 1124-25절 때문입니다.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4-25). 이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입니다. 이 말씀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후반의 말씀 즉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마치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 죽음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부활을 믿는 자는 영원한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죽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다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동일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의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비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부활의 관문입니다. 죽음이 부활의 관문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죽음이 없이는 부활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지 않고서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진짜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은 단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죽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수를 다하고 죽는 자연사가 있고, 이번 여객선 침몰로 많은 희생자가 생긴 것처럼 사고사가 있고,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병사가 있고, 이번 사고에서 박지영씨가 많은 학생들은 살리고 죽은 것처럼 의로운 죽음이 있고, 스테반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순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죽음을 두 종류로 구분하면 자의적인 죽음과 타의적인 죽음으로 가를 수 있습니다. 자의적인 죽음이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즉 의로운 일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거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타의적인 죽음이란 자신이 뜻하지 않지만 죽는 것입니다. 자연사, 병사, 사고사 등이 바로 이런 죽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죽음이 가치 있고 복된 죽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자의적인 죽음입니다. 죽음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장차 부활의 영광이 결정되어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 심한 고문을 당해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11:35). 그러나 자의적인 죽음, 즉 순교는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순교는 삶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삶의 순교를 할 때에 마지막 날 더 영광스러운 부활의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4. 부활신앙을 가진 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지진이 나더니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때에 여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 같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한 말은 한 마디로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니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되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느 누구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천사는 여인들에게 빨리 가서”(7) 전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절박성을 갖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절박성을 얼마나 느끼셨던지 식사할 시간도 잊으신 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왜 절박성을 갖고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의 침몰로 나이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목숨을 잃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죽은 후에는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만 복음을 전하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더 늙기 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사역자나 전도부원이나 젊고 건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와 은사와 학력과 신앙의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리스도인이라면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61‘D3행복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전도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전도를 하도록 멍석을 깔아드릴 때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기로 새롭게 다짐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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