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다 누가복음 16:19-31 201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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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다 누가복음 16:19-31 2017.8.132018-12-03T23:30:5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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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비유로 알고 있는데 실은 비유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은 누가복음 16장 1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15장 3절부터 시작된 4가지 비유를 가리킵니다. 즉 잃은 양 찾은 목자 비유(15:3-7),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15:8-10),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15:11-32),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16:1-9)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비유를 끝난 다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한 부자가 매일 호화롭게 잔치를 즐겼습니다(19절).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헌데를 앓는 몸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부자가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배를 채웠습니다. 결국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후에 부자는 음부로 들어가서 고통가운데 있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으로 들어가 안식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음부에 던져져 고통을 당하는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고서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물을 찍어 자신을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과 부자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오고 갈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하여 사후세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사실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모두 죽었지만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후 아브라함 품에 안겨서 안식을 누렸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합니까? 사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죽음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고 그것에 따라 영원히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고,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으로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죽으면 곧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가지 않고 잠시 다른 곳에 머물다가 최종적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죽은 후 부활하기 전 잠시 머무는 영역 또는 상태를 신학적인 용어로 ‘중간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상태를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거지와 부자 나사로가 죽은 후 잠시 다른 곳에 갔다가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로 들어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한 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간상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성경적인 근거를 댑니다. 카톨릭의 ‘연옥’도 중간상태교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들도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구약성경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마카베오기하(12장 39-45절)는 정경이 아니라 외경입니다. 또한 그들이 신약성경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구절들(마 12:31, 고전 3:11-15) 역시 연옥의 근거가 아닙니다.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연옥교리는 믿음으로 즉시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이를 주장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요 5:24; 히 10:10). 그렇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얻는 것이지 그 후에 우리가 뭔가를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죽은 후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2절-23절을 다시 읽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성경은 부자와 거지를 매우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살아 있을 때는 부자가 먼저 나오지만 죽은 후에는 거지 나사로가 먼저 나옵니다. 즉 생전의 삶을 말하는 16장 19절에서는 부자가 먼저 나오지만 사후의 삶을 말하는 22절에서는 거지가 먼저 나옵니다. 둘째로, 부자는 죽은 후에 장례를 치렀지만 거지 나사로는 장례를 치루지 않고 곧바로 천사들에게 받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부자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장례식을 호화로웠지만 나사로는 거지였기 때문에 장례식조차 치루지 못했습니다. 셋째로, 부자는 음부에 던져져 고통을 당하였지만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자는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는 호의호식했으나 죽은 후에는 음부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였지만, 거지 나사로는 잠시 이 세상의 삶은 고통스러웠으나 죽은 후에는 영원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생전과 사후는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살던 자들이 지옥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 가운데 있을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이름도 빛도 없던 자들이 천국에서는 영원히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잠시뿐이고 사후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생을 역전시키려고 하지 말고 장차 천국에서 역전을 이루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한 성당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 이런 글귀가 쓰여 져 있습니다. 첫째 문에는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고 쓰여 있고, 둘째 문에는 “모든 고난도 잠깐이다”라고 쓰여 있고, 셋째 문에는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의 글귀는 그냥 놔두고 세 번째 문의 글귀는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사후가 생전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권력을 잡고,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국에서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가서 가장 큰 역전이 이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사후에 인생 역전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5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절).” 마치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았기에 거지 나사로는 죽은 후 위로받고 부자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다는 이유로 죽은 후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갔고,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절을 읽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 무슨 의미입니까? 부자가 음부에 들어간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회개’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가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즉 ‘회개’가 사후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열쇠인 것입니다. 사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비법은 회개입니다. 회개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회개함으로 생전과 사후에 인생의 역전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사후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지만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지옥에는 오지 못하도록 부탁했지만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서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사후에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는 이동이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즉 죽은 후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연옥 교리를 만들어 지상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 미사를 드리거나 헌금을 드리거나 각종 교회 봉사를 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원은 생전에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 집에 보내어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증거하여 그들을 자신이 있는 곳에 오지 못하도록 부탁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24절과 28절을 읽습니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8절). 한마디로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무엇보다도 고통의 기간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아무리 길어도 100년입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영원합니다. 또한 고통의 정도입니다. 지옥은 물 한 방울이라도 혀에 닿게 할 정도로 뜨거운 곳입니다. 지옥은 자신만 생각하는 부자라도 자기 가족만큼은 들어가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나설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지옥에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은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 아는 부자도 가족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당연히 우리의 가족을 지옥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가족구원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구원하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적당한 기회를 주셔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면 부족한 것이 많아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부자의 간청이 우리의 간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살아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에 전도해야 합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로, 기적을 본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자기 집에 보내 자기 다섯 형제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전도해달라는 요청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 형제가 있는 마을에도 모세와 선지자들과 같은 전도자가 있지 않느냐? 그들에게 말을 들으면 된다.” 그러자 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서 전해야 그들이 회개하고 믿지, 평범한 전도자의 말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전도자의 말을 듣고 믿지 않는 자는 죽었다가 산 자가 가서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목격해도 말씀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보고도 회개하거나 믿지를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생전에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은 말씀이지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영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킬 뿐 사람을 회개시키거나 믿음을 갖게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지 기적중심의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말씀위에 신앙의 집을 세워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 부자에 대한 경고는 바로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아직도 천국보다는 이 세상을 크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부자의 다섯 형제가 지상 세계에 살고 있기에 아직 변화의 가능성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아직은 살아있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천국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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