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느12:27∼43 201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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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느12:27∼43 2014. 8. 32018-12-03T22:27:3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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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느헤미야 11장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는 지에 대하여 4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영적지도자들이 먼저 희생해야 하고, 둘째로, 사명감을 갖고 봉사해야하고, 셋째로, 서로를 축복해야 하고, 넷째로, 서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생각하면서 옆의 분을 축복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겠습니다. “당신 없이는 못살아요!”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한 과정과 그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황폐해있던 예루살렘성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그곳에 백성의 지도자들과 백성 중 1/10이 거주한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벽을 재건한 후에 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봉헌식이었습니다. 왜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완성했지만 곧 바로 봉헌식을 하지 않았을까요? 일반적으로 건물이 완공되어도 채무가 있는 경우는 헌당식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당식을 하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지만 헌당식을 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채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성벽재건을 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빚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성벽재건 봉헌식을 곧바로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봉헌식을 하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기 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절기를 지키지 않았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켰고, 안식을 지키지 않던 자들이 안식을 지켰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던 자들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말씀부흥운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후 곧바로 봉헌식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성벽만 재건했지 이스라엘백성들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봉헌은 빚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거짓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친절을 베풀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겉만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2:37).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고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네 마음에서 남이라”(4: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지 않으면 생명의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몸만 드리면 안 됩니다.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헌을 했듯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므로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성벽을 봉헌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봉헌에서 ()’자는 큰 대자를 중심으로 한 일() ()가 두 개 그어져 있는데 본래 한 일()은 절대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손 수()가 생략된 형태로 합성되어 받들 봉() ()가 된 것입니다. 또한 드릴 헌() ()는 개 견()변에 세발솥을 뜻하는 자가 왼쪽에 붙어있는데, 옛날에는 세발솥에 개고기를 담아서 종묘(宗廟)에 바쳤기 때문에 ()()을 합쳐서 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 견()은 단지 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네 발 달린 모든 짐승을 뜻하기 때문에 드릴 ’()은 짐승을 삶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봉헌은 단지 하나님께 뭔가를 바친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봉헌하는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느헤미야가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한 것은 그 성벽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벽을 복구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느헤미야였습니다. 만일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그 일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함으로 그 성벽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것을 주님께 드렸어도 그것 때문에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에게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아무리 헌금을 많이 드리고, 수고를 많이 해도 내가아니라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품지 않으면 하나님께 크게 봉헌해도 결국은 추락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많이 드리고, 많이 수고하지만 종말에 불행하게 되는 것은 바로 봉헌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움직이면 자신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높여드려야 주님께서 행복의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노릇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우리 동신교회가 4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물질과 시간과 몸을 바쳐 충성하신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동신교회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혹 주도적인 헌신을 했을지라도 교회의 주인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만이 주인이시라고 고백하고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섬기려는 모습을 보일 때에 교우들에게 존경을 받고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드린 대로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필리핀으로 선교사역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항상 해외 선교사역을 나가면 새벽에는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저녁에는 팀원들과 함께 평가회 겸 합심기도회를 가집니다. 그런데 첫째 날 기도시간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갑자기 저에게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알랜 목사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내 일에 수종을 들라고 보낸 것이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더군다나 선교비를 가지고 알랜 목사를 도울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더욱 더 낮은 자세로 그를 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날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많이 헌금을 드리고 열심히 헌신을 해도 교만해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은 단순히 아들을 바칠 것인지 안 바칠 것인지를 시험하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아들을 제물로 바쳤을 것이고,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바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신앙은 날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하게 주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봉헌식을 통하여 자신의 수고와 공로를 다 주님께 돌려드렸듯이, 우리도 모든 공로를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들이 봉헌식을 마치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심히 즐거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 본문에 네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워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봉헌식을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들을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을까요? 저는 본문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 다른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12“27). 그들은 레위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서 함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각처에서 레위인들을 데려온 것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인만으로는 봉헌식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벽봉헌식은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혼자서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이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로 영광을 얻을 수 있다면 혼자서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이 일을 혼자서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일로 시험에 들거나 믿음이 약해져서 주님께 나오지 못하는 자들을 설득하여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사랑은 모든 관심을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대 크리스천들은 혼자서만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는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더불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에 크게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성벽재건 봉헌식을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옮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50:14)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주님께 나가면 구원을 맛보기 때문에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감사할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감사할 게 어디 있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선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고 싶어도 직장 때문에 못 오는 분들도 있고, 몸이 아파서 못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지 직장이나 몸이 아파서만 못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형제자매들은 예배 자체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드려도 은밀한 장소에서 마음껏 찬양도 부르지 못한 채 숨을 죽여 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평소 페이스북으로 필리핀 알랜 목사와 소통하던 중 자신의 집과 교회가 멀어서 종종 교회 위에 자기 방을 만들어 기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 만나서 그가 어디에 거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를 자신이 거하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가보니 그곳은 사람이 살 만이 곳이 아니라 간신히 비만 가리는 움막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개집만도 못한 곳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리 가난해도 지붕만 걸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매시간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와 지옥형벌에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감사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죽은 다음에 심판을 받고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구원 받은 것 하나만 가지고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구원 받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크게 맛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최선을 다해서 준비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그들은 그냥 봉헌식을 드리지 않고 찬양대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종의 타악기인 제금, 현악기인 비파와 수금, 관악기인 나팔 등이 포함된 완벽한 오케스트라를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찬양대를 조직했다는 것은 봉헌식을 준비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교회 아이노스 중창단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아이노스 중창단이 매주 특송을 부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특송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하는지 아십니까? 매주 주일 오후 예배가 끝나면 곧 바로 시작해서 거의 6시까지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주일 오전 10시까지 나와서 또 연습합니다. 준비 없이 강단에 서는 찬양팀은 없습니다. 찬양단이 섰다는 것은 예배를 준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를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준비한 만큼만 받으십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최고의 예배를 드릴 수 없고 즐거움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즐거움을 맛보기 원하신다면 주일예배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적어도 예배시간 10분 전에는 오셔서 본문을 미리 읽고 함께 준비 찬양을 해야 합니다. 제가 예배지각하지않기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준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영화를 보기 위해서도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10분 전에 입장을 완료합니다. 제발 십분 전에 오셔서 준비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즐거움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우리가 예배시간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혹자는 예배시간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훌륭한 목사중의 한 사람인데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계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예배 중에 그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육성으로만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를 모두 동원해서 주님을 찬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150:3-4). 우리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몸을 통하여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빼앗겼던 법궤를 되찾아올 때에 아랫바지가 내려가는 것조차 모르게 춤을 추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예배 분위기가 좀 더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이유는 분위기가 조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분위기가 조용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경건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1:27).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즐거워야 합니다. 1시간 남짓 드리는 예배를 지루한 마음으로 드리거나 때우기 식으로 드리면 안 됩니다. 박수도 치고 율동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목소리와 악기 소리로 예배당이 충만해야 합니다.

       넷째로, 성벽재건을 위해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벽재건 공사를 할 때에 모든 백성이 참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52일 만에 완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식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받으시고 봉헌식을 통하여 그들에게 즐거운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즐거움은 봉헌과 비례합니다. 여러분은 입당예배를 통하여 이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 예배당 건축에 함께 한 참여도에 따라 느끼는 기분이 달랐을 것입니다. 많이 수고한 분은 크게 기쁨을 누렸을 것이고, 작게 참여한 분은 작은 즐거움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한 사람만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즐거움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하고 흘린 눈물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집필한 온가족튼튼양육 제5과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각자 가정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행복을 맛볼 수 있듯이, 교회 역시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예배, 훈련, 전도, 교제,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장례식 때에 자주 읽는 본문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3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천국은 단지 그냥 들어가서 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자들이 쉬는 곳입니다. 안식의 즐거움은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안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특별히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매주 주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주의 이름으로 구제하고,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주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중에 이런 삶을 살면서 예배를 드리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봉헌은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최고의 봉헌은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즐겁게 사시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드린 만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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