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 골4:14 2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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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 골4:14 2015.2.12018-12-03T22:39:3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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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설교 제목은 ‘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입니다. 저는 오늘 바울이 어떻게 누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동역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주의 일에 동역한 자가 받는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어떻게 바울이 누가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울이 누가를 만난 장소를 ‘드로아’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주일 새벽, 교회로 오면서 CBS방송을 틀었더니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복음적이고 깊이가 있기 때문에 채널을 고정하고 귀를 쫑긋하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설교 중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사도행전 16장 8-10절에 있었습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본문을 보면 바울이 누가를 만났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근거로 바울과 누가의 첫 만남이 ‘드로아’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할까요? 그것은 10절에 ‘우리’라는 대명사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 누가와 바울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드로아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소위 말하는 마게도냐 환상을 본 장소가 드로아인데, 바울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일을 정리하고 전도팀에 합류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드로아에서 처음으로 만나 곧바로 선교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어디서 만나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들의 만남을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만남을 통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이 어떻게 아굴라 부부를 만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린도에서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그들 모두 천막을 깁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생업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생업을 매개로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고 제자훈련을 통하여 복음의 동역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매체로 의사 누가를 만나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12장 7-8절을 통해서 그가 평소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는 육체의 질병을 뜻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앓고 있던 질병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직접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간질이고 다른 하나는 안질입니다. 저는 안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 14-15절에서 육체의 질병을 이야기하면서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들의 눈이라도 빼어주었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앓고 있던 질병이 눈과 관계된 것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중요한 것을 준다는 의미로 눈을 빼어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당시 앓고 있던 질병을 안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회심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강력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기 때문에 사흘이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눈과 관련된 질병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바울은 환자였고 누가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당시도 의학이 매우 발달해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눈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누가를 만났을 것이고 바울은 누가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누가는 복음으로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급기야는 바울의 전도팀에 함께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누가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누가에게 복음을 전한 것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그가 누가와 동등한 관계에 있지 않고 갑을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은 환자였기 때문에 바울과 누가는 요즘 화두인 갑을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에게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또 그를 어떻게 제자를 삼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관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죄수의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심리하는 왕과 총독앞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바울이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을 전해 제자삼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아굴라부부도 갑을관계에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들이 고린도에서 사업상으로 만나 동업했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본토에서 사업하다가 왔기 때문에 사업자금이 있었고 기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술만 있고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등한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말씀으로 훈련해서 제자를 삼았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울은 우월적인 관계나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나의 능력과 상대방의 신분을 뛰어넘게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에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만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자기희생입니다. 그는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복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는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자는 결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 있기 때문에 자신은 희생하지 않고 입으로만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를 하지 못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장로 사장은 회사원들에게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로 나갈 것을 열심히 권유했는데 회사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단체교섭을 시작하자 갑작스레 사업장을 폐쇄하였습니다. 희생적인 삶은 없고 입으로만 전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하면 먹히겠습니까? 어떤 장로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그 교회 성도가 주차했는데 주차권자가 여러 차례 연락해도 안 받자 견인한 일로 다툼이 벌어지자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구청에 민원을 넣어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없애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일로 세상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동일하게 살아가면 결코 그들을 감동시킬 수 없고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지난주도 말씀을 드렸듯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원수를 용서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다윗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그토록 죽이려고 좇아다닐 때에 그를 죽일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없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제 바울과 누가가 함께 동역한 의미가 각각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의 입장에서 누가와 동역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가를 만난 후 평생 그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주로 두 사람이 세계선교를 위해 동역한 것만 생각했지, 바울이 누가와 동역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동역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가난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성경은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후 11:2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의사 누가가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도 주치의를 대동하는 것은 엄청난 재벌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시기를 AD 44년경으로 보고, 바울이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당한 시기를 AD 67년으로 보면 그들은 약 23년간을 함께 한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진 재벌이라도 이토록 오랫동안 가는 곳마다 주치의를 대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복음전도자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주치의를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빌 4:1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의사 누가를 붙여주신 것은 그에게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병약함으로 곁에서 건강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욕심은 채워주시지 않지만 필요는 채워주십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회화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을까요? 단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대대한 분이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광야에서 농사를 지어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바울과 누가의 동역이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세계선교의 꿈을 안고 달려갈 때에 의사 누가가 그와 평생 함께 동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의사 누가를 붙여주셔서 그의 사역에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바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동신교회에 부임하면서 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과 함께 세계를 복음화 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극히 소수의 사람과만 세계선교의 마지막 동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2년간 필리핀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저는 당시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분의 헌금으로 네 번이나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교회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누가의 만남을 보면서 다시 한번 주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깨닫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아야 합니다.

    둘째로, 누가의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바울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그의 외모가 탁월했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갖지 있지 않았습니다. AD 165년 경에 쓰여진 위경에 보면 키는 작고 대머리였으며 안짱다리를 가졌으며 약간 매부리 코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사역 초기는 마가 요한의 일로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질 정도로 성질이 급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자였습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사람을 끌만한 매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무엇 때문에 사도 바울과 평생을 함께 했을까요? 그것은 누가가 사도 바울이 가진 하나님의 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울과 함께 한 것입니다. 사실 누가는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살 것인지,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감히 세상의 편안함을 버리고 세계선교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구촌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더처치에 승선하기 전, 이런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힘든 길을 가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물리치고 더처치에 승선한 것은 저와 함께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믿음에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누가가 바울과 단지 동역만 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했던 것처럼 이 사역에 끝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울과 함께 동역한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 한 자는 누가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4장 10-11절을 읽겠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와 함께 하던 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를 떠나갔지만 누가는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바울은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누가가 가까이서 수종들 때에 시험들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과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저 역시도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을 시험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때문에 그것을 참고 끝까지 동역한다면 그 상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가 바울의 세계선교에 동역함으로 그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누가는 뜻이 ‘빛나다. 총명하다’는 뜻인데 그의 이름값을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과 함께 동역하다가 바울이 순교하자, 에베소와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84세를 일기로 하나님께로 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복음을 위해 바울과 동역한 누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하만, 가룟 유다, 헤롯, 데메드리오 등과 같은 자는 오히려 성경에 기록된 것때문에 사람들에게 영원히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세계선교에 동역한 자로 기록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누가는 나쁜 면이 하나도 소개되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좋은 면만 기록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베드로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심지어 바울도 좋은 면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정적인 내용이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골 4:14)라고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은 신약성경 27권 중 누가와 사도행전 두 권을 저술한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자세히 소개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가 기록한 성경을 읽고서 영혼이 살찌고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의사들이 감동을 받아 의료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행전인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도 그는 문서선교사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는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저술한 책이라도 영원히 읽혀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읽어도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성경은 읽는 자마다 구원을 얻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세계선교를 위해 많은 사람과 동역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사람과 함께 했지만 네 번이나 선교여행을 했고 세상의 영적지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훈련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일에 동역하는 여러분을 마지막 날 면류관 쓰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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