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고난 중에 진가가 나타난다. 행 27장 27-44절 2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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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고난 중에 진가가 나타난다. 행 27장 27-44절 2020.9.13.2020-09-13T10:21:4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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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7장 9-26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피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누가가 굳이 백부장과 선주와 선장이 바울의 경고를 무시한 이유를 기록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다수의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다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수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들 때 주님께서 개입하십니다. 따라서 절망이 깊을수록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라는 것을 알고 주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자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바울과 함께 승선한 모든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 경영 방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넷째로,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므로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면 이 땅에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죽음으로 끝이라고 하지만, 하늘의 소리는 죽어도 산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바울이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 지 열흘이 지나도 풍랑이 계속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성취되기 때문에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히 10:36).

    바울을 태운 배가 광풍으로 표류하던 중 열나흘째 되는 날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저리 쫓겨 다니게 됩니다. 당시 상황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함께 27-28을 읽습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아드리아 바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바다를 가리킵니다. 선원들은 아드리아 바다에서 자정쯤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어떻게 이를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물이 해안가 암벽에 부딪히면 부서지는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물의 깊이를 쟀습니다. 처음에는 물의 깊이가 스무 길, 즉 38미터였고, 조금 후 다시 재어보니까 열다섯 길, 즉 27미터였습니다.

    그러자 사공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9-30입니다.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사공들은 암초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여 닻 넷을 고물로 내렸습니다. 고물은 배의 뒤를 뜻합니다. 사공들이 이렇게 배 뒤쪽에서 닻을 내린 것은 배가 계속 육지 쪽으로 밀려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이 밝기를 고대합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배의 뒤쪽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다가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거룻배를 타고 먼저 도망하려고 한 것입니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아직도 바다에는 풍랑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어떻게 육지에 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들만 살려고 도망한다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지난 세월호 침몰 사건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승객들 수백 명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준석 선장이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구명정에 올라타서 크게 지탄받지 않았습니까? 무기 징역을 받아 현재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그런데 선원들이 이렇게 몰래 도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어떻게 합니까? 31-32을 읽습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바울이 이런 사실을 알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알리면서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즉시 지시를 내려서 거룻배를 내리던 밧줄을 끊어버립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백부장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백부장과 바울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주종 관계입니다. 백부장이 바울을 편하게도 할 수 있고 불편하게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살펴보았지만 백부장이 시돈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허락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백부장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의 행실이 다른 사람과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 전달하는 모습이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관계를 급반전시키는 키는 감동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자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려면 그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소위 감성을 터치해야 합니다. 감동을 주지 않고서는 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여러분이 전도대상자에게 깜짝 선물을 보내면 상대방이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복음을 전하면 상대방이 주님을 영접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날이 새어가자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33-34입니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개역 개정에서는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번역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고서 개역개정의 번역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바울이 그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했다는 것이 어떤 말로 들립니까? 그냥 음식을 먹으라고 한 것일까요? 지금 배에 탄 자들은 다 성인들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지 말라고 해도 먹을 것이고 먹을 것이 없으면 훔쳐서라도 먹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그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을까요? 이는 그가 음식 먹기를 권하면서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즉 음식을 먹는 것과 그들이 구원받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이 사도행전 2723-25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들 중에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어떤 섬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은 어떤 상황에 있었습니까? 여전히 풍랑이 일고 있었고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헤엄쳐 육지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즉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한 것은 곧 육지까지 도착하려면 헤엄을 쳐야 할 힘을 갖도록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입니다. 리더는 앞을 미리 내다보는 자입니다. 왜 D3가 마지막 시대를 리딩하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환난을 준비하도록 평신도사역자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35-37절입니다.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6-37).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먼저 떼먹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바울이 축사 후 떡을 떼었다고 하니까 성찬식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성찬식은 누가 참여할 수 있습니까? 구원받은 자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 안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비신자들입니다. 따라서 성찬식을 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입니다. 또 혹자는 예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떡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하자 갑자기 많아져서 276명이 함께 먹게 된 것이 아닙니다. 3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식사 후에 버린 것은 떡이 아니라 밀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밀로 276명이 먹을 수 있는 떡을 만들었고 이를 먹기 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떡을 떼기 전 감사기도를 할 상황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음성을 들었지만,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풍랑은 그대로 있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감사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즉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실 줄 믿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바로 이런 겁니다. 지금 일이 안 풀리고, 복잡하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사 기도를 하고 먼저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안심하고 받아 먹었다고 말씀합니다(36절). 그런데 안심하고는 번역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용기를 얻었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즉 바울이 감사하고 먼저 음식을 먹자 이에 그들이 용기를 얻고 그들도 먹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감사 바이러스가 그들에게 전염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사 바이러스를 전파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긴 자들입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말해야 합니다. 절망하는 자와 함께 절망하고 불평하는 자와 함께 불평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식사한 후 밀을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고 말씀합니다(38). 그들이 배불리 먹은 후에 밀을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는 것은 상당한 양의 밀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당시 밀은 한마디로 돈입니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버렸을까요? 배가 무거워서 바닥이 땅에 닿으면 난파를 당해서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의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통하여 돈보다는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가진 재물과 명예와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고난보다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자든 비신자들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으로 돈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배부르게 먹고 무거운 짐들을 버린 후 육지에 대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39-41입니다.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날이 새면서 경사진 해안에 배가 가까이 밀려갔습니다. 어딘지는 몰라도 항만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그곳까지 들어가 정박할 수 있는지 의논한 후 진행하다가 결국은 정박하지 못하고 두 물이 합하는 곳에서 이물은 모래톱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졌습니다. 배가 파선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44입니다.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로마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가면 그들도 죽임을 당해야 하므로 그들을 죽이자고 합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먼저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육지에 나가라고 하고 나머지는 널조각이나 배 물건을 이용하므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배에 탄 276명이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를 통하여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열흘이 지났어도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몰래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또 배에 있는 사람들은 헤엄쳐 육지로 나갈 힘조차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죄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배를 육지 가까이 대기까지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지만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므로 임마누엘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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