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인 삶을 사세요 창12장 1-4절 2012.1.22

//미래지향적인 삶을 사세요 창12장 1-4절 2012.1.22
미래지향적인 삶을 사세요 창12장 1-4절 2012.1.222018-12-03T18:58:33+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미래지향적인 삶을 사세요 창12장 1-4절 2012.1.22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60

    사람은 크게 과거지향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좋은 과거든 나쁜 과거든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과거에 매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미래에 붙잡혀서 살기 때문에 과거에 매이지 않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사람보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문화적인 배경 때문입니다. 서구 사람들의 조상은 유목민들로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양떼를 몰고 계속 옮겨 다니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척정신이 강하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한 장소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고의 욕과 저주로 사용하였던 것 중에 ‘객사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향을 떠나 집 밖에서 죽을 놈’이라는 말로서 집을 떠나 죽는 것을 최고의 비극과 저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산물은 ‘제사’입니다. 제사는 고인을 기리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는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과거만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제사는 철저히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잘 살았든 못 살았든 과거에 매여서 살면 안 됩니다. 과거에 매이면 성장이 멈추게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과거에 가전제품하면 일본의 소니 제품이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니의 창업자 일가가 몇 해 전, 세금을 내지 못해서 건물에 차업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지난 금요일 1월 20일자 조선일보에 “필름 저무는 사실 ‘131년 왕국’ 코닥만 몰랐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코닥은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필름 분야의 선구자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19일 미국 뉴욕 남부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습니다. 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소니나 코닥이 이렇게 무너졌을까요? 과거지향적인 기업경영을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은 무너집니다. 자전거가 굴러가는 동안에는 쓰러지지 않지만 멈추는 순간 쓰러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그의 부친의 경영권을 승계하고 취임한 이듬해인 1988년, 21세기 초일류기업을 비전으로 내걸고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을 선언하면서 그가 했던 말 중에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꿀 수 없는 것만 놔두고 다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가 이미 25년 전에 세상의 흐름을 읽고 준비를 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말씀으로 정복하려면

    본질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변화해야 합니다.

    제가 D3왕의사역을 창안하여 지구촌의 교회들을 평신도사역형교회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도 21세기는 평신도가 주도적으로 사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요즈음 앞서 가는 교회들은 모두 평신도가 주도적으로 사역하는 평신도사역형교회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중대형교회들이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모릅니다. 저의 작은 형이 통합측 서북노회 장로회 회장인데 역촌동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촌교회의 모든 인쇄물을 작업하는 사업자로 선정이 되었는데 홍보용 현수막 제작비로만 매달 500-800백 원어치를 주문 받는다고 합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현수막을 자주 교체할까요? 새로운 정보를 성도들에게 알림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앞서는 통찰력을 가지고 변화의 선두에 서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예배의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오늘 당회에서 몇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아브라함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로, 부모와 단절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와 단절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이야 부모를 떠난다는 것이 별로 문제가 없지만 고대근동 당시는 혈연 중심의 집단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상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생업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셋째로, 문화적인 혜택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약 25만 명이 사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2-3층 되는 벽돌로 지은 집들이 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혜택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갈 곳을 미리 가르쳐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부터 가야 할 곳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목적지도 모르는 여행을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장차 그의 이름이 심히 창대하게 되고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대로 자신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 때문에 우리를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를 누가 책임져 주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를 보장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성취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때는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얻은 때는 100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는데 25년이 걸렸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25년을 믿음으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서는 반드시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어도 그 약속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기일이 도래하면 약속어음을 결재해 주실 것을 믿고 잘 인내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기 전 그가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는 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의지하는 것과 단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버려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좇아가기 전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붙잡고 의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마다 의지하는 것이 다릅니다. 자신이 가장 의지하고 힘으로 삼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주일을 못 지키거나, 놀러가기 위해서 못 지키거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야하기 때문에 못 지킨다고 하면 바로 그것이 주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과거입니다. 잘한 과거와 잘못한 과거를 모두 떠나야 합니다. 잘한 과거를 붙잡고 있으면 교만해져서 발전을 못하고 잘못한 과거에 매여 있으면 힘을 잃어 앞을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으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버릴 것을 버리고 떠날 것을 떠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만 잘 믿고 섬기면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대명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이 조상이 된 것은 그가 공부를 많이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정치를 잘했기 때문에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에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그동안 의지하고 붙잡고 있었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과정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치 아브라함이 명령을 받고 즉시 말씀을 따라 떠난 것 같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아무런 고민 없이 즉시 결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음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외출하고 아브라함이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상의 형상을 사러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사람의 나이가 궁금해서 “혹 나이가 몇이나 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이가 50이라고 하면서 가장 최근에 만든 우상을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쉰 살이나 되신 분이 어제 저녁에 만든, 하루밖에 안 된 우상을 사다가 거기에 절하시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랬더니 우상을 사러왔던 사람이 당황해 하면서 그냥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어떤 여인이 밀가루 음식을 가지고 와서는 우상들에게 바쳐달라고 이야기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막대기를 들고 우상들을 전부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거대한 우상 하나만 남겨 두고 그 손에 자기가 우상을 부순 막대기를 쥐어 놓고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저녁 때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서 보니 가게가 온통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이냐고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우상들 앞에다 이 밀가루 음식을 갖다 놓으려고 했더니 우상들마다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움을 하니까 막대기를 들고 있는 제일 큰 우상이 갑자기 나머지 우상들을 전부 다 때려 부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야, 이놈아, 그게 말이 되냐? 이 우상들이 어떻게 밀가루를 먹을 수 있고,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다 때려 부술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 제 생각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금까지 섬겼던 우상의 무가치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을 때에 그것을 버리고 말씀을 좇아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이를 초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때가 75세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75세에 그를 부르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스도인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를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인물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인물들 중에는 고령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사라는 9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80세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했고 40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모세보다 3살이 많았지만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동역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가나안 땅의 철옹성인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나이를 초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많아도 스스로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사는 날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음을 알고 과거의 늪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이가 들수록 미래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도전해야 합니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의 삶에서 빠져나와야 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동신교회는 46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노인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장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용기를 갖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할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미리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고는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과거와 단절해야 합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2012년도 새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