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세례로 만족하시렵니까? 행19장 1-7 2013.11.10

//물세례로 만족하시렵니까? 행19장 1-7 2013.11.10
물세례로 만족하시렵니까? 행19장 1-7 2013.11.102018-12-03T20:58:3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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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세례식이 있기 때문에 설교를 평소보다 조금 짧게 하겠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매우 중요하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영적지도자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보수신학 성향의 목회자를 만나면 신본주의 신앙을 가지게 되고, 자유주의 신학 성향의 목회자를 만나면 인본주의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에베소교회는 아볼로라는 사람에게 신앙지도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824-28절을 읽어보면 아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성경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곳이었고 일반 학문도 번성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에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그곳에서 헬라식 교육을 잘 받으며 자랐고 히브리 성경을 잘 배워 성경에 능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명문대 출신에 신학대학원을 나오고 외국에 유학 갔다 와서 목회를 잘하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아볼로가 고린도로 갔을 때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제자들은 아볼로에게 신앙지도를 받았던 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그러자 그들은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다시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묻자 그들은요한의 세례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요한이 베푼 세례의 성격을 말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례식을 베푸는데 그것은 에베소의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받았던 물세례입니다. 물세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참된 기독교인이 된다는 표시입니다. 즉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즉 내가 복음을 믿는지 안 믿는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도록 문서화하고 공표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이것은 마치 두 남녀가 결혼신고만 하고 합법적으로 살 수 있지만 많은 하객을 불러 결혼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물세례는 구약시대의 할례와도 유사합니다. 유대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그들은 할례 받은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마찬가지로 물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인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례 받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는데 하물며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물로 세례만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안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9:6).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베푸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물세례만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고 그 이상의 수준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세례를 받는 수준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물세례가 물속에 잠기듯이 성령세례는 우리가 성령에게 잠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성도들 중에는 물세례만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세례 뿐아니라 성령을 받고 뜨겁게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성령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김익두 목사님의 사례를 통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기차를 타고 가는데 맞은편 좌석에 청년 3명이 앉아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하도 기특하여서 청년 중 한 명에게내가 보니 모두 예수 믿는 청년 같은데 지금 어디에 가지?”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밤부터 00교회에서 김익두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부흥회를 하는데 그 부흥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중에 한 청년이 제가 김익두 목사님을 잘 압니다. 어르신도 시간이 있으시면 우리와 같이 이번 부흥회에 참석하셔서 은혜 받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자신을 앞에 두고 김익두 목사님을 잘 안다고 하니까 얼마나 자신을 잘 아는지 보려고 시치미를 떼고서 김익두 목사님이 어떤 사람이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김익두 목사님은 xx동리 00집 몇 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깡패로 망나니 생활을 하던 중에 선교사를 두들겨 패어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교사님에게서 큰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평양에서 그분의 설교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청년이 김익두 목사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청년은 단지 김익두 목사님에 관해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을 뿐 개인적으로는 그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세례만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물세례만으로는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세례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여러분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다고 하시겠습니까? 성령세례를 받겠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왜 물세례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을 받아야만 할까요? 크게 세 가지로 그 이유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주님께서 친히 그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명령을 어겨도 살 수 있지만 주님의 명령을 어기면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명령이 최고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에 관심이 없을까요? 그것은 물세례를 받을 때에 이미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고린도전서 123절을 제시합니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즉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성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을까요? 그것은 성령세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성령세례를 성령의 내주로 생각하면 물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성령세례를 성령의 내주라고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성령세례’ 즉 성령  받는 것을 이미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이 그분을 더 잘 섬기도록 능력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세례를 성령충만의 첫 번째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이미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만으로는 능력 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치하셔야 그분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가 성령세례를 성령의 내주로 이해하든, 성령충만으로 이해하든, 성령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다면 다시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훈련만으로는 신앙생활을 능력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베소교회는 아볼로를 통하여 말씀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말씀훈련을 잘 받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하였을까요? 그것은 아무리 말씀훈련을 잘 받았어도 말씀만으로는 신앙생활을 능력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택에 가면 평택대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의 전신이 피어선 신학교입니다. 이 신학교는 아더 피어선 선교사의 유지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피어선 선교사가 100년 전 런던 태버내클 교회에서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만약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내가 확신하건데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그런데 피어선 선교사가 설교한 태버내클 교회가 누가 목회하던 교회인 줄 아십니까? 역사상 설교를 가장 잘했다는 찰스 스펄전 목사가 사역하였던 교회입니다. 스펄전은 아볼로와 같이 말씀에 능하고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가서 피어선 선교사가 외친 제일성은 성령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훈련 만으로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말씀훈련을 받아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결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 제자훈련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지 않았습니까? 한국교회가 수많은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지만 날이 갈수록 죄악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말씀훈련만 있고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능력 있게 하고 싶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를 만나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성령께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15:26). 저는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녔고, 1977대학생선교단체인 C.C.C가 주관하는 대학생수련회에 참석하여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영접하겠다고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 1학년 2학기 종강을 하는 날 강릉에 있는 초당교회의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바로 그날 성령께서 저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 다음날부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떻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성령께서 내 안에 충만히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마귀의 권세아래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듣고 성령을 받기로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육체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을 거스르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의 생각을 죽이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죽임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왜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에 마취를 합니까? 환자가 살아 있으면 의사의 마음대로 수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지 않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마음대로 통치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을 사모해야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107:9).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사모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령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성령님이 안계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를 살 수 있어도 성령을 떠난 그리스도인은 살 수 없습니다.

      셋째로, 성령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기도와 성령을 받는 것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성경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붙잡고 성령을 구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에 성령을 달라는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심으로 성령을 받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물세례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능력 있게 살 수 있고 복음을 증거하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충만을 받아 남은 생애 변화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성령의 충만함으로 1124일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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