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해결하고 새해를 맞이하세요 사 40:18-31 201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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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고 새해를 맞이하세요 사 40:18-31 2014.12.282018-12-03T22:36: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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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금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삼일만 지나면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따라서 새해를 맞이하기 전, 우리의 염려와 걱정을 날려버려야 합니다. 혹 현재 당하고 있는 문제 때문에 걱정하거나 염려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으로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 되어 새해를 소망으로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비신자처럼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나 불신자나 다 같이 어려운 일을 만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비신자는 자기의 힘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그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고난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매를 대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못해서 하나님께 매를 맞는 것을 ‘징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징계하시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되돌아보기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을 보시고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채찍질을 하십니다. 에덴동산으로 가보십시오.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냥 덮어주고 감싸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법대로 ‘죽음’이라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죽음’은 ‘분리’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하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930세를 살다가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되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묵과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회초리를 드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회초리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심판의 매가 아니라 사랑의 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징계하시는 것이 미움이라고 생각하면 징계를 받을 때에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징계를 받을 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5-6)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혹 잘못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얼마든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만큼만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304장을 찬송하겠습니다.

    둘째로, 고난은 하나님의 복을 담는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지만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벧전 1:6-7).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두 사람을 통하여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 한 번째였습니다. 야곱은 노년에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을 통하여 요셉을 낳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식들에게는 입히지 않은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 하고 미워했습니다. 더군다나 요셉이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그 이야기를 형들에게 하자 더욱 더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이 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며 그를 세겜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평소 요셉을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마침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자 상인들은 그를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아 넘겨서 그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자 보디발은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이 없으면 늘 성적으로 유혹을 해왔습니다. 순간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 일시적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요셉은 단호히 그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물리쳤지만 그에게 큰 화가 미쳤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종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요셉을 모함하여 감옥에 집어넣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습니까? 그가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렇게 고통을 당한 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하여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행정력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만일 형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가지 않았고 또한 그곳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바로의 꿈을 해몽해 줄 수 없었고, 당대 최고의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한 고난은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욥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욥은 엄청난 시험을 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잃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부자였던 욥이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자신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말이 욥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을까요? “네가 지금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욥 11). 그런데 성경은 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면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거룩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바르게 살지 못하는 자들이 와서 네가 이렇게 고난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하니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욥이 그렇게 고난을 당할 때에 한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단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을 통하여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질 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믿음대로 모년에 배나 더하는 복을 받았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지만 계속해서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고 계시다고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사 40:27)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이렇게 한탄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어 간구했지만 고난이 계속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속히 응답이 없으면 순간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회의를 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와 어린 자녀 사이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모가 해주지 않거나 매를 들면 혹 부모님이 진짜 자기의 부모님일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제 딸이 네 살 때 고집이 너무 세니까 제 아내가 매를 댈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내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 내보내고 우리 둘이서 살자.”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속히 자신들을 형편을 돌아보시지 않는다고 한탄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28절-29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8-29).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모르는 척 하시는 분이 아니라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새 힘을 더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까요?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좋으신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으로 고난을 당해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새 힘을 더하셔서 그 고난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을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비록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죄 값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평안을 주고 소망을 주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결국은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애굽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창 50:20)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토록 수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앞뒤가 꽁꽁 막혀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고난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생은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너나나나 할 것 없이 고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30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느라고 고생을 했던지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라고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광야로 피신하다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용장들도 고난을 당했는데 하물며 우리처럼 죄가운데 사는 자들이 어찌 고난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 3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여호와께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고정한다는 것은 한번 슬쩍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킬 수 있을까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큐티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말씀에 고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말씀에 고정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앙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화 속에서나 이야기하던 달나라에 여행을 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약 8,120억 원만 있으면 1박 2일간 달나라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점점 어떻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육신적으로 편해지지만 우울증을 비롯해서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가고 있을까요? 인간은 헬라어로 ‘안드로포스’로 하나님께 뿌리를 박고 사는 존재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수리를 통해 그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독수리가 평소에는 다른 새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폭풍이 몰아치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처마 밑에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날개 쳐서 폭풍우를 뚫고 높은 하늘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독수리의 날개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날개를 한 번 휘저으면 순식간에 창공을 박차고 올라갑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폭풍이 몰아칠 때에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 자체를 바라보지만 독수리를 폭풍위에 있는 안전지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새들은 폭풍을 피하여 처마 밑으로 기어들어가지만 독수리는 폭풍을 뚫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고난을 뚫고 올라가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7장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수들을 태우고 로마로 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서 파선하게 되어 배에 탄 사람들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27:20).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뭐라고 외쳤는지 아십니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2-25). 어떻게 바울이 배안에 탄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에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절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넘칩니다.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지만 하나님만 바라보면 이상하게 희망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해도 된다고 말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이 있기에 긍정적으로 말을 하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 아무리 뛰어도 피곤치 않고 숨차지 않습니다. 뛰면 뛸수록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걸어가도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결론을 좋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불치병이 있든지, 경제적으로 어렵든지, 인간관계가 꼬였든지, 어려운 문제가 산처럼 둘러싸고 있어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열어주십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기 위해 몇 가지 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혹 우리가 잘못해서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잘못이 없는데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잠시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시기 때문에 결국을 좋게 하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2014년을 닫고 2015년을 새롭게 시작하므로 2015년 소망 찬 한해를 맞이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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