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한 자입니까? 유익한 자입니까? 몬 1: 9-14 20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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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자입니까? 유익한 자입니까? 몬 1: 9-14 2013.10.62018-12-03T20:53: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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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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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중의 하나가 핸드폰입니다. 미국의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SA)라는 시장조사회사가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평균인 14.8%보다 6배나 높은 67.6%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는 8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유치원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아이들이 선물로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 중 첫 번째가 휴대폰일 만큼 휴대폰은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핸드폰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 핸드폰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핸드폰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건강에 해롭습니다. 또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리는 벨소리로 짜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휴대폰은 이렇게 좋지 않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습니다. 핸드폰으로 정보의 교환이 보다 용이해지고, 인간관계가 개선되고, 생활이 보다 편리해지고, 범죄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이제 핸드폰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여러분이 다 아시는 핸드폰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에 대해 말씀을 드릴까요?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핸드폰보다도 유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세지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시대의 특징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한다(딤후 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말세지말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중심적으로 살면 외부에 대해 마음을 닫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스마트폰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유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단지 죽은 후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빌레몬서가 소개하는 오네시모를 통하여 이전보다 더욱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빌레몬서는 1장으로 되어 있는 짧은 서신입니다. 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편지를 보내는 바울, 편지를 받고 있는 빌레몬, 그리고 전에는 빌레몬의 노비였지만 지금은 바울의 심복이 된 오네시모입니다. 당시 로마와 주변 세계의 노비들의 생활여건은 매우 비참할 정도로 가혹했습니다. 그들은 영혼 없는 두발 가진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주인들은 노비를 자기 마음대로 처형할 수 있었고 또한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오네시모는 단순 노비가 아니라 도망노비였습니다. 당시 도망노비에 대한 형벌은 더욱 더 가혹했습니다. 도망노비는 붙들리면 사형을 당하거나 사지를 찢기거나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아니면 도망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 집안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도망을 친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오네시모를 변호할 때 혹시 오네시모가 불의를 했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대신 갚아 주겠노라고 한 것으로 보아 오네시모가 도망칠 때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났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유야 어떻든 오네시모는 도망노비였기 때문에 항상 숨어서 무익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네시모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가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무익하다’(아크레스톤)는 말과 유익하다’(유크레스톤)는 말은 거의 발음이 비슷하지만 뜻은 정반대입니다. 어떻게 무익하던 오네시모가 정반대로 유익한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바울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봐서 감옥에서 바울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감옥에 있었던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담의 족보에서 벗어나서 예수의 족보로 바꾸면 운명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은 엄한 교육이나 권선징악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야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게으르던 자가 부지런해지고, 거짓말 하던 사람이 정직해지고, 두려움 많던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좇아 변화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법을 써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변화의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는데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면 시험을 준비하라고 아예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합니다. 자녀의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유학을 보내지만 자녀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주님께 드리는 일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다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기적을 본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삭개오는 요즘 말로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정부에 일정부분만 세금을 바치면 남은 것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동족에게 야비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향하여 자기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삭개오는 재물의 욕심이 가득찬 삶을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나자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8).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부터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재물욕심에 붙잡힌 사람이 물질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고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던 삶을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199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빈부 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중오심에 범죄조직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흉악범들이었습니다. 지존파 일당 7명이 두목 김기환의 집 지하실 아지트에 창살 감옥과 사체 소각시설을 갖추고 사체를 토막 내어 인육을 먹는 등 엽기적인 연쇄 살인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형집행을 앞두고 최후 진술에서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17년 전이었지요. 미술시간이었지요. 나는 그 때 미술도구를 가지고 가지 못하였지요. 가난하여 살 돈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내 뺨을 불이 날 정도로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이 새끼! 다음 시간에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 그 다음 시간 매 맞을 것이 두려워서 미술도구를 훔쳐서 가지고 갔지요. 그것이 저의 도둑질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도둑질이 살인범이 되는 첫 길이었지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먼저 가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피해자 그 분들의 가족과 모든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보살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집은 교회 설립하는 데, 시신은 의과대학 실습용으로 기증하겠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잔인했던 사람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자기 집을 교회로, 자기 시신을 의과대학 실습용으로 내놓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서울 사랑의 교회 이재명 집사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흉악범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은 형법과 사형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존 케디라는 선교사가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언어를 습득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가 사역을 마치고 죽자 사람들은 그의 기념비에 이렇게 썼습니다. “1848년에 그가 이곳에 처음 상륙하였을 때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 이곳에는 식인종이 한 명도 없다.” 어떻게 식인종만 살던 섬이 불과 24년 만에 식인종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존 케디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식인종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불가능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보다 모범생으로 살았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문제아로 살았다고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느냐? 복음을 들었지만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변화의 삶은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사실을 믿으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시고 이 말씀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복음을 믿는다고 사람이 자동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오네시모를 바울이 갇힌 중 낳은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낳은이라는 것은 랍비적인 표현입니다. 토라를 전심으로 가르치는 랍비와 전심으로 배우는 학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오네시모가 변화된 것은 한 번에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한다고 무익한 사람이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유익한 종이 되려면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에 해산의 고통을 겪듯이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여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기 까지는 많은 고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4:19)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낳은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잘나서 스스로 성장한 줄 알지만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갓 믿은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성숙한 자로 성장하려면 해산의 수고와 같은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복음만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거듭난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성숙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말씀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을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19-20). 무슨 말씀입니까? 가서 복음만 전하지 말고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친 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제자훈련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삶의 변화를 원하신다면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만난 자는 어떤 일에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할까요?

      첫째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 1023-24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시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도들에게 어떤 일로 유익을 끼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성도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성도의 곁에서 위로의 말을 전해줄 수도 있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 받을 때만 만나면 안 됩니다. 날마다 삶속에서 말씀을 만나야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하워드 헨드릭슨은 그의 저서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서 믿는 자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은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온전히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평신도사역형교회의 목회비전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말씀으로 훈련 받고 또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하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 훈련을 받아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위해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오네시모가 과거에는 무익한 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의 심복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복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일꾼을 뜻합니다. 왜 오네시모가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까? 13절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1:13). ‘내 복음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심복이 된 것은 자연인 바울에게 매료된 것이 아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고 섬겨야 할 이유는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의 종을 섬기면 그 섬김을 주의 종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목회자라고 실수가 없습니까? 여러분 보다 어떤 면에서 부족한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는 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또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만식장로와 주기철목사의 일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주기철목사가 당회장이었는데 어느 주일 조만식장로가 중대한 회의관계로 예배시간에 늦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까치걸음으로 뒷자리에 앉으려 하는데 갑자기 주목사가 조 장로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에 어디를 왔다 갔다 합니까? 그 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리세요.” 그리고 설교 후 기도하라는 주목사의 말에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을 용서해달라고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주 목사를 찾아와 잘못을 빌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조만식 장로는 주기철목사의 스승입니다. 그런데 왜 조만식 장로가 제자인 주목사의 말에 순종하고 잘못을 빌었을까요? 주기철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빌레몬서에는 그가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한 것으로 끝나고 있지만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용서를 받고 다시 돌아가서 그곳에 교회를 세워 이름도 빛도 없이 충성하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우리도 오네시모처럼 살아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교회가 하나 되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공동체는 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유익이 없으면 참여하지 않습니다. 직장도, 단체도, 정당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에 쏟아 부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야 하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데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정말로 깨닫는다면 주님의 몸인 교회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바나바가 자기의 밭을 팔아 교회에 내놓고, 스테반 집사가 순교의 제물이 된 것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2-3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거치는 자가 아니라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익한 사람입니까? 유익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모두 예수를 만난 자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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