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벧전2:9 201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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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벧전2:9 2014.5.182018-12-03T21:20: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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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시선이 가장 먼저 어디로 향합니까?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찾습니다. 자신이 사진 속에서 어디에 있는지, 실물보다 더 잘나왔는지를 살펴봅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부터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아직도 온전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택하신 족속입니다. 지구촌에는 200여 나라가 있고 6800여개의 언어가 있고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택하신 족속이고 다른 하나는 택하심을 받지 못한 족속입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문명인이든 미개인이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입니다. 그러나 한 지붕아래에 살고 있을지라도 아직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택하심을 받지 못한 족속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은 모두 택하심을 받은 족속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십니까? 그것은 최고로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것은 보통 영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국무총리가 최고의 관직입니까?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가 임명하는 가장 높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뒤 흔든 적이 있었습니다. 스키점프 국가대표들의 실화를 빗대어 만든 영화인데 비록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꿋꿋이 국가대표로서의 명예를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이 인기 없는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가졌을까요? 국가라는 최고의 조직에 의해 선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는데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에는 택함을 받은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꺼번에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씩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존귀한 이유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2-3억의 정자들 중에서 단 한 마리만 선택을 받아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남녀가 관계를 가질 때에 1회 사정으로 약 2-3억 마리의 정자가 질내에 배출됩니다. 이들 정자는 일시에 자궁을 향하여 헤엄쳐 올라가지만 수정에 성공하는 정자는 단 한 마리 뿐입니다. 우리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아주 대단한 자들입니다.

       둘째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약시대 성막 안에는 6평짜리의 지성소와 12평짜리의 성소가 있는데,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으로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대제사장만 1년에 한번 피를 뿌리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 막은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지성소와 성소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말로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구분이 없이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만인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세 1000년 동안 이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신부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에 1517년 마틴 루터가 사림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주장한 이신칭의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을 외치며 종교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않고 목회자를 통하여 나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일대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순히 제사장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왕에 관련된 형용사가 없기 때문에 왕 같은이라는 직유법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쉽게 말하면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5:10)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대로 나아갈 수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때나 어디서나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려고 해도 아무나 만날 수 없고 혹 만난다 할지라도 시간과 장소를 사전에 예약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아무 때나 언제든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입니까?

       셋째로, 거룩한 나라입니다. 나라는 넓게 사회의 정치조직을 가리키지만 좁게는 통치조직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통치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거룩한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통치하던 시대였는데 로마황제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유 하나만으로 대단한 영광과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지배국의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로마 시민권이나 미국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어거스틴은 두 종류의 나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지상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지상 나라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나라이고 거룩한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나라에서는 별 볼일 없는 자로 살아갈지라도 최고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것을 알고 기죽지 말고 당당해야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이나 소속되어 있다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명동에 있는 중앙투자금융()에 다니다가 정치적 야망을 갖고 고시공부를 하려고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면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평안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뭔가 허전하고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때에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는 존재구나.”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소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도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나에게 평안은 없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단지 마음의 평안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책임을 져주십니다. 우리가 몸의 각 지체를 보호하고 잘 관리하듯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그의 소유로 삼아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토록 영광스러운 신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즉 지옥백성에서 천국백성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해야 합니다. 즉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세상일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어디 가서 좋은 것을 보았으면 본 것을 자랑하고,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먹은 음식을 자랑합니다. 또 자식이 좀 대견스런 일을 하면 이곳저곳에 전화해서 자랑을 합니다. 지난 주였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 교사를 하던 분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전화를 해서 이전에 함께 했던 분들과 식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의 아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도 그분의 아들을 잘 알고 있지만 한 마디로 천재입니다. 카이스트에서 24세에 최연소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32살 밖에 안 되었는데 삼성전기에서 부장이 되어 연봉이 수억 원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날의 이야기는 아들 자랑으로 끝났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딸이 만일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최연소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최고의 기업에서 최연소로 부장이 되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자랑을 했을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유한양행에 4년간 신우회를 인도했습니다. 회원들 중에 직위가 높은 분들도 참석했기 때문에 하루는 제가 왜 유한양행에서 B형간염 약을 개발하지 못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중의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B형 간염 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회사도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1,200억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약을 개발하면 수백억 원을 들여 광고할 계획입니다.” 유한양행만 아닙니다. 모든 기업이 좋은 상품을 개발하면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붓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자랑거리가 있으면 자랑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엄청난 자랑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랑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구원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주님을 자랑하라는 것인데 주님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증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 시간과 물질을 드려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보통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말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구원교과서라고 합니다. 성경은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하고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아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혹 지금까지 죄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확신이 없던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으로 믿고 구원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데 그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보다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지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잃은 채로 살아가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4-5).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졌는지를 알아내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전도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전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서신을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보냈는지를 아신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서신을 보낸 시기는 무시무시한 박해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후 647, 네로는 장난삼아 로마시내에 대화재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크게 번지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책임을 전가시키면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처형당하고, 짐승의 밥이 되고, 심지어 사람을 불태워 왕궁을 밝히는 인간횃불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이때부터 313년 콘스탄틴 대제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밀라노칙령을 선포하기 까지 약 300년간 교회를 향한 박해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혹독하게 핍박당하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즉 그런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시간이 많고 환경이 좋을 때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전도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마귀의 전략에 속아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딤후 4:2).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명입니다. 어명을 어긴 자는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복음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택함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결코 그들이 의롭거나, 똑똑하거나, 우수한 민족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자랑하기는커녕 자신이 잘나서 택함을 받은 줄 알고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을 얼마나 무시했느냐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쓰려고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 수없이 많이 고통을 당했고. 세계로 흩어져 종살이를 했고,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이나 가스실에서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자 큰 핍박을 허락하셔서 사도 외에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버리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그분의 소유로 삼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셨지만 우리가 그 사명을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회초리를 드실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그분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소유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61일은 구삼행복축제의 날입니다. 태신자를 작정하고 노력해서 우리의 입과 손과 발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61일 여러분의 초청을 받아 예배당에 발을 들여놓는 분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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