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구할 것인가 눅3:21-22절 20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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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할 것인가 눅3:21-22절 2015.8.92018-12-03T22:53: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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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는 것을 보고서 혹 그가 메시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절망에 가운데 살면서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야를 찾고 있었는데 세례 요한을 바로 그 메시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례요한이 절망가운데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그의 신분이나 그가 외친 메시지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호의호식할 때에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는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은 큰 건물을 갖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즉 나눔을 실천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푸는 현장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일종의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죄인이 아니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죄인이 아니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심판과 구원의 이중적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물에 들어가는 것은 심판을, 물에서 건짐을 받는 것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공생애의 출정식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세례를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출정식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을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즉 물에 잠기는 것은 옛 사람이 죽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의 죄를 전가하는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자신에게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들 가운데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번째 해석입니다. 즉 죄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인류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도록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기독교 이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옥수 목사입니다.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그가 구약의 제사제도에 근거하여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의 죄와 백성의 죄를 해결 받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개인의 죄는 죄인이 직접 제물에 안수하여 죄를 전가하였지만, 백성들의 죄는 제사장이 대표로 제물에 안수하여 전가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한 것은 그가 백성의 대표로 모든 인류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교단의 목회자들 가운데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도 한 동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주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장대로 우리의 죄가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전가되었다고 한다면 그 때부터 예수께서 죄인이 되셨다는 것이고, 공생애 사역을 죄인의 신분으로 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죄인의 신분으로 사역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인 상태에서는 성령충만을 받아 능력 있게 사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옮겨졌을까요? 그것은 빌라도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사형 언도를 내린 후부터입니다(눅 23:22-25). 그때부터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인의 신분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1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3장과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본서만 예수께서 기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을 각각 다르게 기술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은 사람이시기에 자신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연약함을 깨달아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웁니까? 어머니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SOS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언제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4장 2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 때가 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셋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한 때부터입니다. 왜 사람들이 셋의 아들 이름을 ‘에노스’라고 한 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에노스’가 ‘연약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연약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만 가능합니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과 그것을 깨닫는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철저히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서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요? 성경에는 예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속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속사역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명을 받았습니까?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신 것을 보면서 우리의 기도내용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사명의 완수를 위한 간구가 있는지, 아니면 오로지 이 땅의 것만 구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아직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사명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우리가 여기에 모여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사명을 위해 기도하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눅 3:21).
    첫째로,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이미 닫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즉 닫혀 있던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연극을 시작할 때에 커튼을 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기도할 때에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닫혔던 것이 열리게 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매어달릴 때에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새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인생이 닫히는 것을 경험합니다. 각종 질병, 교통사고, 사업의 실패, 갈등, 고독, 이혼 등 다양한 일로 인생이 닫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상관없습니다. 기도하면 닫혔던 문이 열리고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씨의 딸 장(이)민아씨의 간증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전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아내였다가 이혼하고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시력장애와 갑상선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어 그의 인생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눈 수술을 받기위해 한국에 왔다가 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와 수요여성예배에 참석해서 기도하던 중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자폐증도, 자신의 갑상선암과 시력장애도 모두 치유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의 부친인 이어령 전 장관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을 뿐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기적을 경험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상식으로만 신앙을 지켜왔는데 상식을 초월한 성경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 세상에서는 맛볼 수없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차원에서 새 일이 일어납니다. 특별히 사명을 위해 기도하면 각종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둘째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의 머리위에 임했습니다. 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성령이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기도하시자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인생은 자신이 함께 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돈과 함께 하면 재벌이 되고, 질병과 함께 하면 환자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22절 중반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2). 어떤 음성이 들렸습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것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사 42:1).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구원사역을 온전히 감당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가운데서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고난을 쉽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종살이를 했지만 그 기간을 단지 수일처럼 짧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40일 금식할 때였습니다. 35일 즈음이 되자 몸이 가라앉는다는 느낌을 들면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제가 누웠던 자리를 흔드시면서 들려주신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종아, 남은 금식에 내가 함께 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힘이 생겼고 남은 기간 금식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어떤 시험이든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앞두고 기도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사명을 위해 기도할 때에 동일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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