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마니아입니까? 행 26장19-29절 2013.6.23

//무엇에 마니아입니까? 행 26장19-29절 2013.6.23
무엇에 마니아입니까? 행 26장19-29절 2013.6.232018-12-03T20:32:3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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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보통 사람의 눈에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미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친 것도 종류가 다릅니다. 하나는 병적으로 미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에 미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 미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총독 앞에서 복음을 변호하고 있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래 1절부터 읽어야 하지만 시간 관계상 19절부터 읽었지만 앞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유대교 바리새파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섰던 자였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 죽이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서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들을 잡아올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 갑자기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자 바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하자, 예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회심하여 그분의 충실한 종이 되어 전 세계에 다니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곳저곳 다니면서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2-2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22-23). 한 마디로 외친 내용이 무엇입니까? 구약 성경(선지자들과 모세)이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전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전했을까요? 그것은 누구든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바울도 그동안 이것을 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을 받는 줄로 생각하고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허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에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심히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잘못된 구원론에 빠져 인생을 허비한 것을 너무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외쳤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복음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무더운 여름철에 ‘제2차 구삼행복축제’를 실시합니까? 아직도 이것을 모르고 사망과 심판과 지옥에 법에 묶여 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그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세계 3대 종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은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자력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안에는 근본적으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착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최고급 신사복을 입으면 남자가 됩니까? 남자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고 여자가 됩니까?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제가 우리의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복음을 믿어야지만 구원을 받는다고 수없이 말씀을 드리지만 일대일로 구원을 점검해 보면 의외로 확신을 갖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결코 구원을 받는데 우리의 선한 행실은 눈곱만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발 자신이 하나님앞에 떳떳하게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당장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면 좋지만 그것은 상급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구원과는 무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 전했습니까?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았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나게 된 과정과 만난 후의 삶을 이야기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간증전도’라고 합니다. 즉 간증전도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해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진심으로 믿는 자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거듭나자마자 열정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죄의 죄를 사하시고 저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곧바로 전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녀가 만난 예수님이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야”(요 4:29).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그를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평신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날마다 집에서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침을 받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도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예수께서 자신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믿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꼭 믿으시고 먼저 자신이 구원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를 말하자, 베스도 총독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베스도는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을 보고서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미쳤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이네’라고 하는데, 여기서 영어의 ‘마니아’(mania)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마니아’는 원래는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요즈음에는 ‘영화 마니아’, ‘오디오 마니아’, ‘커피 마니아’, ‘컴퓨터 마니아’, ‘자동차 마니아’처럼 어느 한 가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긍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베스도총독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미쳤다고 했을까요? 당시 베스도 총독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헬라철학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인은 진리의 근거를 논리와 합리성에 두기 때문에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양대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온건파인 힐렐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강경파인 샴마이 학파입니다. 그런데 가말리엘이 바로 힐렐의 수제자이고,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즉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말은 공부를 많이 하고 박식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 이 세상이 가진 진리인데 그토록 공부를 많이 하고 박식한 사람이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거침없이 쏟아 붓자 그를 미친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물론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베스도 총독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더라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미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신을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미쳤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이룬 업적과 성취에 의해 발전해 온 발자취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성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를 4년 동안이나 누운 자세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10년간 끈질긴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등반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에디슨이 수많은 물건을 발명하고,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목표로 삼았던 일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발레리나 강수진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매일 10시간 이상을 발레를 연습하고 어떤 때는 19시간이나 연습한 것은 발레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발레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열정이 바로 그녀를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저도 하루에 17시간씩 40일간 동안 기도를 하고 장기 금식을 3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쳤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가운데 외교관들도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까지 파고 들어가는 기업이 있습니다. 유럽 선진국은 물론 공산권이나 저개발 국가들 심지어 원수의 나라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어느 회사인지 아십니까? 코카콜라입니다. 어떻게 민간기업이 미국 외교관이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까지 들어가서 콜라를 팔 수 있습니까? 그것은 코카콜라 사장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 혈관 속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다.” 고 정주영 씨는 사업에 대성을 한 것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태양아 빨리 좀 떠라”라고 소리칠 정도로 그가 하는 일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미치는 것은 비례합니다. 어떤 일이건 완전히 미쳐 몰입하지 않으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열정은 한 가지에 몰두하게 하고 결국 위대한 일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없어지는 이 세상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영원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직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미쳐야 영원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베스도 총독이 미쳤다고 하자 바울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는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한다”고 하면서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 26:29). 이 말은 자신을 심문하고 있는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법정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풀어줄 수도 있고 감옥에 가두워 둘 수도 있는 최고 권력자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은 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영양실조에다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추호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로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토록 예수님께 미치게 만들었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일찍이 예수님을 대적하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날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토록 큰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사도로 불러주시고 이방에 복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분께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또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좀 쉬면서 복음을 전하지 그토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한때 율법에 미쳐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어떻습니까? 사람을 정죄하고 죽일 뿐 살리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기만 하면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고,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라도 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데 어떻게 당신은 항상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빌립이나 스테반은 평신도였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자 항상 복음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나이와 학력과 환경에 상관 없이 항상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자였습니다. 그 열정이 그로 하여금 지구촌을 네 번이나 돌면서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져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한비야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 의사가 있는데 그를 만나려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명예와 영광을 버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인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 의사는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 몸,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다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도, 건강도, 시간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썩어 없어질 육신과 불타 없어질 이 세상 것에 있지 않고 영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전에는 대적하고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은 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미쳐있습니까? 흔히들 20대는 사랑에 미치고, 30대는 야망에 미치고, 40대는 일에 미치고, 50대는 소유에 미치고, 60대는 명예와 고독에 미치고, 70대는 은퇴와 죽음에 대해 미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친 사람은 모두 행복하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야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진짜 행복한 신앙생활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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