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힘으로 사십니까? 창39장 1-6 20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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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힘으로 사십니까? 창39장 1-6 203.10.202018-12-03T20:56:2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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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옛날, 애굽의 한 시장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시끌버끌하고 있었습니다. 시장에는 장을 보느라 바삐 움직이는 가정 주부들, 하나라도 손님을 더 끌기 위해 호객하는 상인들, 조금이라도 물건 값을 더 깎아보려고 흥정하는 사람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시장을 구경하고 있는 어린아이들, 물건을 사는 척하며 남의 돈을 훔치는 소매치기, 길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거지 등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 한 구석에서 굵직한 목소리로 아주 좋은 물건을 싸게 팝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팔려고 내놓은 건장한 노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유별나게 눈에 뜨이는 한 청년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느 노예와는 달리 건장하며 얼굴이 아주 곱상하게 생겼습니다. 마침 노예를 사러온 사람들 가운데 보디발이라는 애굽 왕의 시위대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요셉을 보고 마음에 들었던지 몇 마디 묻지도 않더니 이스마엘 상인에게 그를 사서 자기 집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이 청년노예는 오늘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꾸며가면서 당시 시장의 분위기와 청년노예의 모습을 상상하여 말씀을 드렸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처럼 실패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물건처럼 취급 받는 노예였으니 그보다 실패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청년 요셉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가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통은 영어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Success’ 즉 성공입니다. 즉 요셉이 사람의 눈에는 가장 실패한 자처럼 보였지만 성경은 그를 성공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노예로 팔려가 종살이하는 청년을 성공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과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까? 우선 눈에 크게 보여야 합니다. 외적인 거대함과 화려함이 성공의 잣대입니다.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얼마나 재산을 모았느냐가 성공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류 대학을 나와서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 월급을 많이 받으면 성공한 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성경은 어떤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외적으로 크고 화려한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즉 사람이 얼마나 어떤 일을 했느냐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를 보고 성공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요셉은 노예청년이었지만 성경이 그를 성공한 자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은 노예였습니다. 그는 숨을 쉬는 것 외에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여 시장에 팔고 사는 물건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는 학교 졸업장도, 세상적인 배경도,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스펙이 별 볼일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 요셉처럼 불쌍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형통, 즉 성공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잘 나가는 것을 인하여 성공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잘 되는 것을 형통으로 알고 그것을 추구하면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위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신용도가 일정기준 이하인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뜻합니다. 이로 인하여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이 뿌리 채 흔들렸습니다. 그로인해 2008년 당시미국의 5대 투자회사인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JP모건,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중에서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을 빼고는 모두 망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 대공황 이래 미국은 지금 최악의 경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5대 투자 회사에 근무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아십니까? 경영의 천재들만이 모이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서 최고로 성공한 자로 분류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망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실체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소위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자들이 어떻습니까?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데 앞장 서 있습니다. 온갖 부정부패의 핵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동양그룹의 사태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시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1975년부터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76년 동양그룹의 회장의 딸과 결혼 한 뒤 검찰을 떠나 동양시멘트 사장(1983)과 동양증권 회장(1986)을 거쳐 1989년에는 이양구 회장의 뒤를 이어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습니다. 이 정도 스펙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학력과 재력이 너무 화려합니다. 감히 우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투자자들로부터 악덕 기업인으로 몰려 비난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감에 출석하여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곧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성공의 실체입니다. 어디 동양그룹만 그렇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한 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거의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은 마치 모래위에 집을 세운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은 한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사막의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세상의 성공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세상에서 성공의 집을 세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세상에서는 실패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진짜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처럼 형통한 자, 곧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문자적으로 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성경은 요셉의 외모를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그런데 이전 개역판에는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39:6)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아담한 요셉을 쓰셨듯이 저도 쓰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통하여 받았던 위로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금번 개역개정판에서 아담하였다아름다웠더라’(39:6)가 대체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체구가 크고 호남형의 청년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장동건이나 정우성을 뺨칠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가만 놔두지를 않았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날마다유혹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불어닥친 시험을 이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운명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요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말하면 다시 시장에 내다가 팔 수도 있었고, 고된 일을 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여주인의 말을 잘 들으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 될 수도 있었고 잠시동안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고 사는 것이 보디달의 아내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다른 하나는,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여주인은 한두 번도 아니고 날마다 유혹을 했습니다. 한 두 번이라면 쉽게 물리칠 수 있었건만 날마다 유혹을 했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다른 장소에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남편이 나가기만 하면 요셉을 불러서 일을 시키는 척 하며 신체적 접촉을 수도 없이 시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추행을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셉이 보디발 아내가 동침하자고 하며 옷을 잡았을 때에 그 옷을 그녀의 손에 두고 도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요? 그녀가 날마다했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집요하게 유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유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저는 넘어졌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시험에 이기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말에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것과 임마누엘은 비례합니다. 큰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큰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큰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선악과는 에덴동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선악과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의 선악과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의 선악과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의 선악과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의 선악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에게 있는 선악과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승리하시기전까지 이 시험을 이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선악과의 시험을 이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시험을 이긴 것은 그가 시험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이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는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험에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시험을 물리쳐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성공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원망이나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려운 일을 당했어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에게 배신을 당해서 다른 나라에 종으로 팔리는 것보다 인생에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요셉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셉을 보시고 그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원망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나안 정탐 사건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들이 각자 와서 보고를 하는데 그 중에서 열 사람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두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거이 낫지 아니하랴“(14:2-3)라고 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정탐꾼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떻게 보고를 했습니까? 우리가 두루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14:7-9).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을 다 광야에서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생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원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분의 방법으로 성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능력이 아무리 탁월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불평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망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원망과 불평은 교만의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하나님께서 대적하시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얼마 살지 않았지만 나이에 비해 성공도 빨리 거두었고 고생도 숱하게 겪었습니다. 30대 후반에 당시 한국교회 Big3라고 불리던 교회의 수석 부목을 했고, 국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청년대학부를 부흥시키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교회를 개척해서 어느 정도 성공을 했지만 0000감리교회 권사에게 사기를 당해 교회를 경매로 날리기도 했고, 부교역자로 청빙을 받아간 교회에서 담임목사보다 인기를 더 얻자 2달 반 만에 쫓겨나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지하에서 오랜 동안 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성공한 줄 알았던 제가 왜 추락하게 되었는지 맨 처음에는 그 원인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원인이 교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교만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면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다시 내려오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자신의 마음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면 자신이 영적으로 교만한 상태에 있음을 깨닫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므로 받았습니다(10:9-10). 그런데 그렇게 하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2-13)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면 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구원자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인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두 개나 주셨을까요?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불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예수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의 뜻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임마누엘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임마누엘을 부르는 것과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것은 정비례합니다. 이 시간 저를 따라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임마누엘, 임마누엘,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가정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직장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업장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지금 하시는 일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은행 잔고가 바닥나 있습니까? 전기료조차 낼 수 없는 상황입니까? 어떻게 월세를 내야 할지 막막합니까? 집이 곧 채무이행을 제 때에 하지 못해 가압류를 당해 있습니까? 자금결제를 신용카드로 돌려막고 있습니까? 철석같은 친구가 배신했습니까?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성공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가까이 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때가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은 출세하고 유명해질 때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권력을 쥐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권력을 잃으면 문전작라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형제라도 세상적으로 잘 나가면 집안에서 대우를 받고 능력이 없으면 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려울수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혹 이런저런 일로 어려운 상황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더욱 우리와 함께 하실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 얼마나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느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성공한 사람으로 바꾸어주셨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왜 성경이 노예 청년 요셉을 성공자라고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진정한 성공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종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려고 했던 교만을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육신으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던 것같이, 여호와께서 여러분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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