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위기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전 10장 13절 2012.7.22

//모든 위기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전 10장 13절 2012.7.22
모든 위기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전 10장 13절 2012.7.222018-12-03T19:24: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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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때를 만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고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전 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좋은 날이라는 씨줄과 나쁜 날이라는 날줄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려운 날을 맞이할 때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을 수없이 많이 당하지만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로,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셋째로, 사람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넷째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첫째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의 힘은 대단합니다. 왜 삼성을 그냥 삼성이라고 하지 않고 삼성공화국이라고 합니까? 돈으로 정치계와 경제계를 주물럭거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는 인생의 위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돈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십년 간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위해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마실 물을 위해 우물을 파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서 먹게 하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해서 마시게 하셨습니다. 또한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찾아가서 왕이여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가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깊은 산속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산속에서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하여 날라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은 까마귀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도 평소에는 까마귀가 자기에게 가까이 오면 재수가 없다고 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가져다 엘리야에게 먹이셨습니다. 단지 떡만이 아니었습니다. 고기까지 먹게 하셨습니다. 떡과 고기를 먹게 하셨다는 것은 먹을 것을 풍성하게 공급하셨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당시 세계적인 기근이 찾아왔기 때문에 야곱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어떻게 합니까? 자녀들을 애굽으로 보내 식량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가서 식량을 나눠주는 자 총리를 보았더니 그가 누구였습니까? 이미 짐승에게 찢겨서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기근 시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들을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먹이시고 입혀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시 33:18-1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자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고 기근 시에 살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적으로 어려워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 김해지역에서 일일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김해제일교회의 옥혜영 권사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간암인 것을 안지 40일 만에 소천했는데 80,000,000원의 빚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옥 권사님이 “하나님, 왜 저에게 남편의 빚까지 떠안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시더랍니다. 하나는 처녀시절 회사에서 경리를 봤는데 장부조작으로 도둑질을 한 것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더랍니다. 당시 남편이 대한항공을 다녔는데 월급쟁이라 풍족하지 않아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 그 금액과 일치하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께만 매달려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누구 밑에 가서 일을 하면 마음대로 신앙생활 할 수 없고 적은 돈으로는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없으니 기업을 주세요.” 매일 밤마다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1년 3개월이 지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손을 대는 것마다 잘 되게 하셔서 얼마 되지 않아 진 빚을 다 갚게 하시고 지금은 한 달에 순수입이 수천 만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 교회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내는 것을 제외하고도 개인적으로 선교비로 지불하는 돈만 한 달에 2백만 원이라고 하는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혹 지금 물질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물질을 공급하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신 줄 알고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께 매어달려 간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불치병에 걸렸을 경우입니다. 예로부터 404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404병이란 오장(심장, 비장, 간장, 신장, 폐장) 6부(대장, 소장, 위, 담, 방광, 삼초)에 81가지씩 드는 병중에서 죽음이라는 병을 제외한 404가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병 종류가 404가지만 있습니까? 날이 갈수록 알지도 못하는 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온 세상이 아픈 자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렸어도 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현대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렸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그야말로 인생의 위기를 만난 때입니다. 이럴 경우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이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쳐주신 장면이 수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불치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쳐주신 후에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각종 질병에 걸렸을 때에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아왔음을 철저히 고백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그는 어느 날 선지자를 통하여 곧 죽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 앞에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가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을 병에서 건져주시고 15년간이나 더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가장 먼저 취할 태도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참조, 벧전 2:24).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만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질병도 이미 해결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약속을 믿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듯이, 예수께서 우리의 질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도 그것을 믿고 기도하지 않으면 치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믿고 구한다고 모든 병이 낫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과 같이 육체의 가시로 허락하신 병은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허락하신 질병을 제외하고는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기위해서 이미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셨음을 믿고 구하면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마음을 먹은 대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를 원하지만 뜻하지 않게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는 마귀가 이간질을 하기 때문이지만 현상적으로 크게 2가지 이유때문에 발생합니다. 하나는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시기와 질투심 때문입니다.

      1)오해의 경우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진실을 모를 수 있고 잘못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전지하신 하나님 한분께서만 진실을 아시고 실수가 없으시며 그릇된 평가를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믿고 그것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으로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난도질을 합니다. 그래서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관계였지만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어 등을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회를 찾아 자꾸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오해를 푸는 첫 단추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 22장을 통하여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간 가나안 땅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르우벤과 므낫세와 갓지파는 요단강 동편을 분배받았고 나머지 지파는 요단강 서편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요단강을 건너기전에 요단 동편에 땅을 분배받은 자들이 그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들이 땅을 정복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요단강 서편에서 어느 정도 정복이 이루어지자 그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다가 요단강 언덕에 볼만한 아주 큰 단을 쌓았습니다. 왜냐하면 혹 세월이 흘러서 요단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동편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자기들과 무관한 민족이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단 서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 단을 쌓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는데 그 명령을 어기고 제단을 쌓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요단 동편의 세 지파 사람들과 전쟁을 하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전쟁을 하려다가 먼저 사신을 보내서 그 단을 쌓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를 목적으로 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오해가 풀려서 민족상잔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화는 서로간의 생각의 차이를 좁혀주고 오해를 풀게 해서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켜줍니다. 따라서 뜻하지 않은 오해가 발생한 경우는 무엇보다도 먼저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합니다.

      2)시기와 질투심입니다. 좋은 관계를 깨는 또 다른 원인은 시기와 질투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 할지라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면 깨어지게 됩니다. 성경에는 좋은 관계가 시기와 질투로 깨어진 예가 있습니다. 바로 사울과 다윗의 관계입니다. 처음에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정말 좋은 관계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좋았습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자신의 사위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나와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자 그 때부터 사울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어떻게 돌변했습니까? 장차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윗을 죽이려고 우리나라의 강원도 만한 나라를 10년 이상 좇아 다녔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상대방의 시기와 질투로 다윗처럼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처럼 더욱 더 주님께 가까이 하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마 27:18; 막15:10).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시기심으로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침묵을 하시고 주님께 엎드려 간구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활을 통하여 예수께서 아무 죄가 없으시고 옳으셨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셨습니다. 다윗도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로 억울하게 숱한 고생을 당했지만 결코 사울에게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께 맡기자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를 왕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기와 질투로 억울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주님을 더욱 더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는 것을 훈련하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시 37:7-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주님께 맡김으로 결국은 높임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넷째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려움을 당한 경우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각종 재해를 당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주로 어떻게 합니까? 왜 하나님의 자녀인데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하게 하고 문제를 더 크게 할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더 좋은 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로마서 8장 28절을 온전히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불행을 만나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운명적인 삶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죽는 것 같지만 죽지 않고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어떤 고난을 당했습니까?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립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을 해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요셉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인생의 성공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한 다음에 성공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패 없이 성공하면 교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해도 절망을 하거나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물질 문제입니까? 육신의 질병입니까? 인간관계의 불편함입니까? 뜻하지 않은 사고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미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만난 어려움에 빠져서 헤매는 것을 보고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피할 길을 내시고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를 침몰시키는 것은 우리가 만난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보자기에 싸여있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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