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올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눅13:10-17. 201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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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올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눅13:10-17. 2017.4.262018-12-03T23:23:4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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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 중에 18년 동안이나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런 병을 현대의학 용어로는 ‘척추교착염’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꼽추라고 불렸습니다. 그녀는 평생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저주하며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에게 붙잡혀 18년간 척추교착염증을 앓던 여인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12-13절). 곧 바로 그 여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한 마디 대화도 하시지 않고 일방적으로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자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꼽추로 무시를 당하고 사람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던 여인이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한 순간 그의 여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날 갑자기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육신의 병을 고침 받거나 물질의 복을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복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런 은혜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생애가운데 그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갑자기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여인이 ‘척추교착염’에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성경은 이 여인이 18년이나 ‘척추교착염’에 걸려 곱추로 살아간 이유가 귀신 때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신과 질병과의 관계를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귀신과 질병이 어떤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자는 “모든 질병의 원인은 귀신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성락침례교회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병에 걸리면 일단 귀신부터 쫓아냅니다. 심지어 감기에 걸렸어도 귀신을 쫓습니다. 물론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귀신과 질병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보셔서 알지만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에 모두 귀신을 쫓음으로 병을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말씀이나 안수를 통하여 고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귀신이 질병의 원인이 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여인의 병을 어떻게 고쳐주셨습니까?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시자마자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여인이 ‘척추교착염’에 걸리게 된 것이 귀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당연히 “더러운 귀신아 이 여인에게서 떠나갈지어다.”라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고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시고 안수하심으로 병에서 놓임 받게 하셨습니다(13절). 왜 예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이 여인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명령기도보다 안수기도가 이 여인에게 더 좋은 치료방법이었을까요? 이 여인은 척추교착염으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접촉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판단에 따라 치유방법을 선택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치유받기를 원한다면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치유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하지만 고침 받는 시기와 방법까지도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정한 날짜까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면 쉽게 낙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대로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셨어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통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지 말고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18년 된 자를 고치시자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14절을 읽겠습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14절).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신 일로 회당장이 분을 내면서 무리에게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회당장이 18년이나 된 환자가 나았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지 않고 오히려 분을 내고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회당장이 회당의 최고 책임자인데 그곳에서 안식일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여 가만히 있으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안식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십계명의 제 4계명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읽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신 5:12-15).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회당장과 예수께서 읽으셨던 성경은 같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예수께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성경은 해석하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은 ‘자기 생각’을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삼았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회당장이나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성경을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우리와 같은 성경을 읽지만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단이 아닌데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할까요? 그것도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에서 무엇을 가장 강조해야 할까요? 전도를 가장 강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어떻게 했습니까? 전도보다는 예배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건물을 짓고 운영을 해야 하니까 헌금을 강조하고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로 만족하고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엉망진창인데 누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주의해서 읽으면 회당장이 직접 예수님께 분을 내거나 항의하지 않고 무리를 통해서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회당장이 그렇게 했을까요? 그가 직접 예수님과 안식일 논쟁을 하면 질 수밖에 없지만 무리를 통하여 논쟁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보다 무리를 통해서 예수님께 항의하는 것이 더 힘이 있고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리는 힘이 있습니다. 다수결로 모든 일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무리의 힘이 대단합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고 세월호를 물 위로 올라오게 한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무리가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물론 광화문에 모인 무리와 회당장과 함께 한 무리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회당장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마귀와 싸우지 말고 주의 힘과 능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곁에서 회당장이 무리에게 하는 말을 들으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5-16절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너희들이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듯이 내가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자를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예수께서 매우 논리적이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회당장과 무리들이 한 마디로 못하고 꼬리를 내린 것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이 논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에 지금보다 더 논리적으로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3분복음스피치’를 만들 때에도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논리성’입니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죄인으로 설득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논리적으로 말씀하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논리적인 말은 반대자들의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복음을 논리적으로 증거하므로 반대하는 자들이 주님께 무릎을 꿇고 돌아오며, 이를 곁에서 듣는 자들도 함께 기뻐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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