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눅 22:35-38 2018.6.3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눅 22:35-38 2018.6.3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눅 22:35-38 2018.6.32018-12-03T23:49:07+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눅 22:35-38 2018.6.3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64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두 번이나 파송하신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마다, 즉 12제자를 파송하실 때(눅 9:1-6)나 70인을 둘씩 짝지어 파송하실 때나(눅 10:1-5) 전대와 배낭과 신발 없이 파송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대와 배낭과 신발이 없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그들의 모든 필요가 채워졌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전도하러 갔지만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냈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나”(35절)라고 물으실 때에 제자들은 “없었나이다”(35절)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6절입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당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몹시 황당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전대와 배낭과 신발이 없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둘 다 가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전과는 정 반대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3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이 말씀은 원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37절 말씀은 예수께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자신이 죄인처럼 취급을 받아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곧 죽임을 당하시기 때문에 전대와 배낭이 있는 자는 가지라고 하시고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함께 계실 때는 제자들이 나서지 않아도 예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지만 예수께서 죽으시면 그들이 직접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상황이 곧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상황이 달라지자 말씀을 다르게 하신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모든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말씀과 상대적인 말씀입니다. 절대적인 말씀은 상황과 상관없이 영원히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읽으라,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제자 삼으라 등입니다. 이런 말씀은 특정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뀐다고 다르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이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해도 된다거나, 제자 삼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에 상대적인 말씀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 중에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한 것이나,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은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이나, 환난이 임박했기 때문에 처녀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 것 등은 당시의 상황에서 바울이 권면한 것이기에 얼마든지 상황에 맞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믿음이 좋은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1,600년간 그리고 40여명의 저자가 기록했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과 문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시대와 환경을 불문하고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전대와 배낭을 가지고 있는 자는 가지라’고 하시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하신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전대 있는 자는 전대를 가지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전대는 ‘돈 주머니’를 뜻합니다. 그런데 전대 있는 자는 그것을 가지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돈을 가지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훈련하기 위해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는 훈련이 끝났기 때문에 그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돈 없이도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할 때에 전대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만 강조하여 “주의 일에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께서 경제학자가 아니셨지만 누구보다 돈과 재정에 관해 많이 말씀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예수님의 설교 중에 믿음과 구원에 관한 말씀이 400여절인 반면에, 돈과 재정에 관한 말씀은 약 2,489절이나 되고 신구약을 모두 합쳐서는 15,600여 구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제가 일일이 세어보지는 아니했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장 24절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재물을 하나님과 맞먹는 수준으로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맘모니즘’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주의 사역을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둘째로, ‘배낭 있는 자는 배낭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배낭은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헝겊이나 가죽 따위로 네모지게 만든 주머니’를 뜻합니다. 그런데 전에는 그것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가지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전에는 배낭에 준비한 것이 없어도 예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공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역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75년 간 살았던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처럼 우리가 든든히 붙잡고 있는 것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만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초대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 쉽게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배낭을 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환난의 시대가 옵니다.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배낭을 메고 있다가 주께서 가라하면 곧 떠나가야 합니다.
    셋째로, ‘겉옷을 팔아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겉옷은 가난한 자나 나그네에게 낮에는 옷으로, 밤에는 이불의 역할을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검을 사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 사라고 하신 검이 무슨 검이냐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릴 때에 예수께서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께서는 검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1)문자적으로 장검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제자들이 전도할 때에 강도나 산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가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때에 그를 책망하실 정도로 검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셨습니다(마 26:51-52).
    2)장검이 아니라 주방용 칼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는 섬기는 자들이 있어서 제자들이 요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주방용 칼이 필요해서 이를 가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검은 ‘마카이라’라고 하는데 이는 식당용 칼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기로 쓰는 칼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주방용 검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당시 죽음을 앞두신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주방용 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3)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징적으로 해석해도 구체적으로 검이 무엇을 상징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유명한 주석자인 헨드릭슨은 제자들이 앞으로 발생될 상황에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라고 주장합니다. 즉 예수께서 곧 죽으시고 나면 그들이 두려움에 직면할 텐데 이를 아시고 미리 용기를 가지라는 뜻으로 검을 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검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6장 17절에 근거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예수께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 곧 마귀와의 싸움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귀와의 싸움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어떻게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셨습니까? 마귀에게 공격을 받으실 때마다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가져야 하듯이, 영적 원수인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해야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38절입니다.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말씀하실 때에 신이 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검 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검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검이 제자들이 갖고 있는 검이라면 굳이 겉옷을 팔아 그것을 사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셨지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족하다.” 이 말은 예수께서 그들의 대답에 만족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과 더 이상 이야기가 안 되니 그만두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예수께서 제자들과 3년간이나 함께 하셨는데 이토록 소통이 안 되는 것일까? 예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든지 깨닫게 하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이렇게 질문을 하다가 순간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것과 예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는 것은 제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느냐 살지 않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제자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또 구원받은 후 말씀대로 사느냐 안 사느냐에 따라 천국의 상급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단지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삶 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고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야 할 곳은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리를 매섭게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하여 말씀 충만하지 않으면 결코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3분복음메시지를 일상화하여 말씀충만하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