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제대로 회개해야 합니다 행 2장 37-41절 2018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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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제대로 회개해야 합니다 행 2장 37-41절 2018년 10월 28일2018-12-03T23:59:0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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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를 무조건적으로 믿으라고 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성경으로 설득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단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구원자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단지 구원받은 것으로 감사하지 말고 주재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고 있는 베드로의 복음전도 설교를 듣고 청중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37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들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마음에 찔림을 받은 것입니다. 왜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을까요?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진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을 아주 잘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거짓 선지자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신 13:1-5)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는가 하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 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어떻게 설교를 했기에 마음에 찔림을 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을 논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설명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그렇기 전도했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복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 중의 하나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논리와 성경으로만 복음을 설명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코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서는 전도를 능력있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들의 잘못을 깨닫자 어떻게 했습니까? 37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잘못을 깨닫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자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으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즉 잘못된 삶을 바꾸려는 단계까지 나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설교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목사의 설교의 횟수가 많은 나라는 없습니다. 방송매체를 통해서 쏟아지는 설교가 한 주에만 수천 편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토록 설교를 많이 듣지만 삶에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그 다음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주 설교 후에 말씀을 나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고백하므로 삶에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어찌할꼬’ 하자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38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자신의 설교를 듣고 “어찌할꼬”라고 하는 자들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단호히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그를 거짓 메시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을 죄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 중의 죄는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이미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회개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것은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은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후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제대로 회개한 예를 든다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된 회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의 시작은 하디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903년 8월 선교사와 일부 한국인이 참여한 연합 기도회에서 자신이 강원도 일대에서 3년간 사역했지만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자신의 무능을 털어놓으면서 인종적 우월감과 한국인을 미개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생각한 교만함과 성령의 도우심보다 자기 실력을 과신했던 것을 참회했습니다. 이렇게 하디선교사가 회개하자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전염병처럼 다른 이들의 회개를 촉발시켰습니다. 또 길선주 장로가 장대현 교회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회개를 고백하고 촉구하자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당시 회개는 바보스러울 만큼 철저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중가운데서 일어나 교회 가까이 있는 계곡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음, 증오, 시기, 질투 등 죄를 지었다고 흐느껴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보복하려고 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또 회개한 후 과거에 횡령했거나 훔쳤던 돈을 돌려주고 보상해 주었고 돌려줄 대상이 없어진 경우에는 교회에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회개한 돈이 수북이 쌓였는데 이를 ‘양심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디 선교사와 함께 전도를 다녔던 윤승근은 전도하다가 빼돌린 돈이 7달러에 달한다고 고백하고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 수년 간 강도짓을 했다고 고백하고 경찰에 자수하고 자진해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이런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단지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또 다른 것을 요구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38절을 다시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회개한 후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세례를 받는 줄로 알고 있습니까?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후에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례를 받는 순서가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들리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백성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올 때에 그가 전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막 1:4, 참조 행 13:24)였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입으로만 회개하지 말고 삶으로 회개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베드로가 이렇게 설교한 것을 들으면서 과연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나 ‘세례 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 주려고 하였지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크게 외치던 이들입니다. 즉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께서 그들의 죄에서 건져주시는 진짜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였습니까? 38절 다시 한번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회개하고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경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장 14-16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세례는 받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할 때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을 무슨 의미로 말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신학에 따라 다른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을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을 받는 것으로 구분하면 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는 것이고, ‘성령의 은사들’을 받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8장 14-16절에서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본문 38절에서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신 안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것이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님을 자신 안에 모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거하시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단지 교인에 불과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도 하고 직분도 갖고 있는 교회의 회원이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을 마음에 모셨다고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성령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9절입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한마디로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이 성령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와 너희 자녀’는 유대인들을 뜻하고, ‘모든 먼데 사람’은 모든 이방인을 뜻합니다. 이것은 벌써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민일 줄 알았는데 이방인들도 자신과 동일한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선민사상에 갇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의 생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께서 지배하시기 때문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게 되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무미건조한 옛 사람의 삶을 버리고 생명이 넘치는 새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므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41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의 수가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확성기도 없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혹자는 팔레스틴에서 실험했는데 그곳에서는 설교자가 어떤 위치에 있을 때 소리의 반항 음에 의해 수많은 무리가 들을 수 있었다며, 예수께서도 이러한 지리적 입지를 고려해서 설교하셨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오순절에 무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위치에서 설교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는 오순절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자 15개 국어로 설교를 한 자체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로,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통틀어 25,000-30,000명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에는 그곳에 상주하던 유대인만 있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원근 각지로부터 수십만 명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삼천 명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어떻게 3,000명이 한 번에 세례를 받을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시에 세례를 받으려면 그만한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과연 예루살렘에 그런 장소가 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1세기경 예루살렘에는 8개의 큰 연못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유대인의 의식을 베푸는 수백 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48개가 예루살렘 성전 남쪽 지역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설교에 하루에 3,000천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거짓이나 과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자 하루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세례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하여 누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복음을 증거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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