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가까이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느9:1-38 2014.7.13

//말씀을 가까이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느9:1-38 2014.7.13
말씀을 가까이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느9:1-38 2014.7.132018-12-03T21:51:30+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말씀을 가까이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느9:1-38 2014.7.13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지난 번 느헤미야 8장 강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후 그 이튿날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말씀에 은혜를 받고 즉시 잊어버리지 말고 그 말씀을 되새김질 해서 자기의 말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맥추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이튿날이 있었다면 감사에 대하여 묵상했을 것이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감사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주님께서 엄청난 은혜를 베푸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인하여 크게 감사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책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도 크게 감사할 일이 있지만 아직 감사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말씀을 받기 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초막절 첫날부터 끝날까지 율법책을 낭독하였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와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그 때가 B. C. 444625일이었습니다. 그들은 71일 다시 모여 율법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예루살렘 수문성에서 말씀부흥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좀 더 말씀을 배우는 과정에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은 것을 깨닫고 일주일간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초막절 절기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진정으로 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받고 싶어 하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야당에서 그토록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사등과 관련한 국정현황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만 수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를 좋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하였고, 예수께서도 회개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신앙생활의 기초이고 전환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회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속에서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의 회개는 세상의 회개와 다릅니다. 세상에서의 회개는 양심에 기초하지만 기독교에서의 회개는 말씀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봐야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영혼의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봐야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깜깜했던 방에 커튼을 열고 밝은 태양 빛을 비추이면 뽀얀 먼지가 자욱하게 보이듯이, 말씀의 빛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면 보이지 않던 죄가 드러나게 되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말씀 때문에 회개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회개는 일반적인 회개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일반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입으로 잘못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런 회개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회개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죄에 대한 애통의 마음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는 마음을 찢는 것의 외적 표현입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에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이 회개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통렬히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이토록 통렬히 회개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이런 회개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합니다. 예를 들어 요나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3:4)라고 외친 말을 듣고 니느웨 왕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던 것은 국가가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이 회개한 때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성벽재건을 완성하고 각각 그들이 살던 성읍으로 돌아가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절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통렬히 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율법책을 낭독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책을 낭독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까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자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잡히지 않자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자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 아침에 이렇게 예배당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만 말씀을 가까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영향을 받기 위해서는 예배당 안에서만 말씀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삶속에서 자주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듣는 설교로는 마음을 찢는 회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만 회개하지 않고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다는 것입니다(2). 그들이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다는 말은 조상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직접 죄를 범치 아니하였어도 자신이 범한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회개를 중보적회개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의 본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범치 아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중보적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동족상잔의 피를 흘리지 않고, 광주민주항쟁에서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지 않았어도 우리가 잘못했다고 대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보적 회개를 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원수관계였던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되었듯이, 서로 불편한 사람사이에 화해가 일어납니다. 분열된 가정, 교회, 사회, 민족이 하나 되는 비결은 상대방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것을 자신의 죄로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말로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를 했습니다(9:2).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자손들의 혼혈을 가져왔고 이것은 곧 우상숭배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방인과 절교를 했다는 것은 아내와 며느리로 맞이한 모든 이방여인들과 소생들을 다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을 쫓아냄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쫓겨나가는 이방인들에게는 큰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방인과 절교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초막절 절기에 말씀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능력을 받아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지만 우리에게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주에 한 번 말씀을 듣는 것으로는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변화된 삶을 진짜 원하신다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지난 주 강남에서 빌딩을 소개하는 부동산중개업자를 만나서 인생 상담을 했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같은 직장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직원이 있는데 삶은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왜 예수님을 믿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예배와 삶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미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짓밟힌 지 오래 되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단지 예배시간에 설교만 듣지 개인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절기에 말씀을 읽는 것에 집중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았습니다.

       1)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느헤미야 98절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약속을 지키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은 민수기 2319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또한 이사야 5510-11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느헤미야 917절을 보십시오.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그들은 하나님께 거역하고 패역하며 목을 굳게 했지만 용서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55:7).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시지만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99:8). 따라서 아무리 큰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주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후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지적 받고 회개하자 주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대상 21:8). 회개가 없는 곳에는 용서도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3)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19절입니다.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새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 일주일 내내 성경을 읽던 중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23편을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편 23편을 읽을 때에 어떤 마음이 듭니까?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평안한 마음을 주는 시가 바로 시편 23편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읽지 않으면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고 평안한 마음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염려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느헤미야 9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이스라엘백성들은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부터 환난을 인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손을 베푸셨고, 광야에서 배고프다고 기도하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마르다고 하면 반석에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초막절에 계속해서 말씀을 읽던 중에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어도 기도하지 않고 세상사람처럼 염려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으므로 기도응답의 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5)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느헤미야 931절입니다.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 살려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외국에 포로로 잡혀와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지 긍휼을 베푸시는 분으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 내내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께서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혹 무섭고 두려우신 분으로만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게만 이해하고 있다면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심지어 소경이 눈을 뜨기도 하고, 죽은 나흘이나 되어 시체 썩는 냄새를 펄펄 풍기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어려우십니까? 주의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모든 문제는 즉시 해결됩니다.

     

       넷째로, 말씀대로 살기로 굳게 결심을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초막절 절기 동안 계속해서 말씀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한 가지 사이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그들이 죄를 범하고, 그들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환난가운데 던지시고, 또한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즉 그들의 역사는 축복환난구원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져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말씀을 읽던 중 깨닫고 결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로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본문 3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와 회중은 그들의 결심을 기록으로 남기고 인봉을 했습니다. 인봉을 했다는 말은 서명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언약을 세우고 친히 서명을 한 것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각오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회개와 환난과 부르짖음과 구원의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온전히 순종할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만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는 것은 평소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말씀의 영향을 받게 되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예배당안에서만 가까이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평소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119:133).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냥 예배를 드린 것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개가 토하였던 것을 또 다시 먹고, 돼지가 깨끗이 목욕한 다음 다시 더러운 바닥에 뒹구는 것처럼 예배를 드리지만 세상으로 돌아가 동일한 삶을 사실 계획이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마음에 굳게 다짐하고 거룩한 손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예배시간에만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날마다 삶속에서 말씀을 가까이 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무엇보다도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고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이런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