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눅11:29-36 20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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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눅11:29-36 2016.11.132018-12-03T23:16: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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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 무리들을 향하여 악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며 그들에게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고 체험하였으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믿지 않고 표적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좇아내시는 등 각종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계시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각종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각종 기사와 이적을 행하므로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는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만 좇으니 예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작은 복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을 나의 관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주님께서 무리들을 향하여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표적이 없나니”라고 하신 책망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언제’ 무리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보일 표적이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29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입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가 무슨 의미입니까? 들을 자들이 많이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아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을 성장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날마다 큐티를 하는 것입니다. 큐티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날마다 한 시간을 투자해서 큐티 작업을 해서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큐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큐티는 말씀읽기와 관찰과 묵상과 적용을 위한 기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다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굶으면 죽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끼 이상은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영의 영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실천하면 좋지만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영혼을 양식을 먹지 않으면 영혼이 죽습니다. 영혼이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믿음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자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므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표적을 구하는 무리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29-30절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예수께서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즉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는 말은 요나에게 있었던 일이 예수님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순종하지 않으려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공들은 이런 풍랑이 임한 것이 누구의 소행으로 인한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이에 사공들은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해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고 하자, 요나는 “나를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라고 하여 그가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물고기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토해내심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즉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간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만 다시 부활하시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외에 그 어떤 것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나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자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하필이면 요나의 표적을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표로 해석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나에게 일어난 기적이 그의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기적처럼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일어난 것이 없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도, 귀신이 쫓겨나갔을 때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어도 그곳에는 철저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오직 배속에 있던 요나가 물고기 밖으로 토해져서 살아나는 기적에만 회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먼저 회개를 했기에 받았습니다. 회개 없이는 어느 누구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단지 구원이라는 기적을 불러오는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기적을 경험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정말 기적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날마다 삶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없이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또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자는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그를 누가 낳았습니까? 밧세바가 낳았습니다. 밧세바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였던 자입니다. 즉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으로 탄생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아들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한 후에 밧세바와 동침하여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기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마치 중병에 걸린 자에게 대수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회개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병의 원인을 수술해서 제거해야만 살 수 있듯이 영원히 사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악하였어도 그들이 요나를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에 영원히 살 길이 열립니다.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일을 경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우리 함께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30절)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1-32절을 읽겠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께서 두 가지 예를 들어 이 세대가 정죄를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남방 여왕입니다. 본문에서 남방 여왕은 시바여왕을 말합니다. 시바는 현대 예멘을 말하는데, 이스라엘과는 무려 약 2,00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방여왕이 교통편이 불편하기 그지없던 시대에 그렇게 먼 곳에서 솔로몬을 보러 왔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솔로몬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혜의 왕 이신 예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를 않고 허구한 날 배척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 때에 시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니느웨 사람들입니다. 니느웨는 고대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당시 그들은 교만하여 강퍅했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요나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감히 견줄 수 없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그들을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이 두 가지 예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정말 시바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 심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좇지 않고 눈에 보이는 표적만 좇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지 않고 현상만 따르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말씀이나 표적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표적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듣는 자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지만 표적은 이를 보는 자에게 놀라움을 줄 뿐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여 새롭게 하지만 눈에 보이는 표적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할 뿐입니다. 따라서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도 한 달에 두 번이나 해외에서 전도집회를 하고 제자훈련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서 제자삼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면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능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기적과 표적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할 때에 살 길이 열립니다. 말씀으로 회개할 때에 구원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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