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 꼭 치유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1:5-14 201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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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 꼭 치유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1:5-14 2012. 8. 122018-12-03T19:26:0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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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외상을 입듯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외상의 상처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약을 사서 바르기도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상보다 더 빨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께서 어떻게 제자들의 상처를 치유하셨는지를 살펴봄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과 대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잘못을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이나 제자들을 찾아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실 때마다 예수님을 배신한 것에 대한 책망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세 번째 찾아오셨을 때에 말씀하신 것인데 역시 제자들을 책망하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5절)고 하시면서 그들의 생업을 걱정하셨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너희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아예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혹 만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죄책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셔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제자들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묻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생업에 관심을 보이신 것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죄책감과 패배감에 빠진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예수께서 위로하신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되게 책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사람을 위로하시고, 어떤 사람을 책망하셨는지 아십니까?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책망하셨지만, 애통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자들은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혹 상대방이 잘못을 했어도 그가 죄책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는 책망하지 말고 도리어 위로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책감과 패배감에 빠진 제자들을 책망하면 그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로와 칭찬은 닫힌 마음을 열게 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지만, 책망과 질책은 닫힌 문을 더욱 닫게 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잘못할 경우 지나치게 책망을 하면 안 됩니다. 자녀들의 잘못을 호되게 책망하면 그들이 바뀔 것 같지만 오히려 반항을 하고 탈선을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고기만 많이 잡게 하시지 않고 잡힌 고기를 가져오게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과 굳이 식사를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왜 함께 식사를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시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누군가와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아시겠지만 유대인들은 세리나 창녀들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아예 식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라도 다투고 나면 같이 식사를 같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비록 자신을 배신했지만 먼저 찾아가셔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 그들을 대화의 상대자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잘못해서 주님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데 오히려 예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아무런 책망도 하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자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닫혔던 마음이 열리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다시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지만 인정을 받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상처가 치유되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이런 저런 일로 불편한 관계에 있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우리가 먼저 상대방에게 호의적인 행동을 하면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예배 후였습니다. 평신도사역자 보충훈련을 하면서 큐티한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미자 권찰이 큐티 하면서 경험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욕하고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큐티 중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큰 수박 1통을 사가지고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의 마음이 녹아져서 소원했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주면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조반을 같이 하자고 하실 때에 어떤 상황에서 하셨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숯불 위에 떡과 생선을 구워 먹는 상황에서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식사를 하자고 하실 때에 그런 상황에서 하셨을까요? 그것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불을 쬐다가 비천한 계집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과거를 생각나게 하기위해서 입니다. 사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숯불로 구운 떡과 고기를 먹으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과거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식사를 하신 후 베드로에게 어린양을 먹이며 치라고 하시면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과거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이처럼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그들이 배신했던 과거를 생각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잘못을 생각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식사를 같이 하신 것은 이미 그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들의 잘못한 과거를 생각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끄집어 내어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신함으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는 보통 큰 상처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모른다고 부인을 했으니 그들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렇게 큰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게 했던 것입니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육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듯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 중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기억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언제 돌발적으로 나타날지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험이 들고 또 분노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숨어있던 마음의 상처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완전히 치료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잠재된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는 밖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영혼과 마음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죄를 어떻게 해결 받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범한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1서 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자백하라’는 말은 숨어있는 죄를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시기 전, 먼저 우리에게 죄를 자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숨은 죄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죄로 인한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토해내지 않으면 마음 속에 숨어있는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집필한 ‘누구나 기도꾼이 되는 Q&A기도훈련’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토함기도’를 소개하였습니다. ‘토함기도’란 원통함이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기도로 토해내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린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인데 그의 기도가 시편에 자주 등장합니다. 예들 들어, 시편 109편은 다윗이 그의 신복인 아히도벨의 배신으로 뼈아픈 고통을 경험한 후 지은 시인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그의 마누라는 과부가 되게 하시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 빌어먹게 해주시고 그 집안의 씨가 마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이런 식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마음의 상처를 속에 간직하지 말고 밖으로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왜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하실까요?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면 치료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드러내야 합니다.

    금번 전교인수련회 둘째날 밤에 집회를 마치고 은혜의 골짜기라는 기도 프로그램을 하였습니다. 그 기도회에 들어가기 전 박원희 집사님이 “저의 많은 죄를 말갛게 씻어주세요”라는 내용의 헌금봉투를 강댓상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콧물과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입에서 분비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주에 물었습니다. 집사님 입에서 이상한 분비물을 계속 쏟아내셨는데 마음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시원하고 편하고 좋습니다” 왜 뭔가 분비물을 밖으로 쏟아냈더니 마음이 시원하고 편할까요? 그것은 기도로 죄를 인한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어 상한 마음이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낼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쏟아내면 안 됩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만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토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기 때문에 결국 그 말이 사람에게 전달이 되어 더 큰 상처를 남겨주고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죽이고 싶도록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에게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셔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토함기도의 마지막은 상대방을 축복하는 것으로 마쳐야 합니다. 축복을 하지 않고 토함기도를 마치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할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마음의 상처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상처를 입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고 합시다. 어떻게 될까요? 상처의 부위가 점점 커지게 되어 상태가 악화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그냥 놔두면 활동성 세균처럼 다른 부위에까지 퍼져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크게 번지지 못하도록 조기에 치유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새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는 텃밭이 마음인데 마음이 상처투성이라면 믿음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치유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말씀을 많이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은혜를 받아도 얼마가지 못해 시험에 들고 쉽게 넘어집니다. 따라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하기위해서는 열등감이나 우월감등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손에 상처를 입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손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고 부자연스럽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편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많을수록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좌충우돌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부정적인 성격을 만들고 부정적인성격은 인생을 실패로 만들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는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 형제, 친구, 학교 선생, 직장 상사, 목회자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거니 주거니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누구로부터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줄 아십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부모입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자녀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꽁꽁 숨어 있는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어 치유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벧전 2: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와 질병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시기 위해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믿고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주님께 토해냄으로 실제적으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로 인한 상처, 실패로 인한 상처, 말로 인한 상처 등을 주님 앞에 쏟아 놓음으로 상한 마음을 치유 받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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