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에게 믿음을 배운다 눅1:26-38 20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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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에게 믿음을 배운다 눅1:26-38 2015.4.262018-12-03T22:47:2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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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사가랴 부부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는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맡은 바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고, 의로운 삶을 살았고,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가랴부부가 놀거나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아무런 수고 없이 받습니다. 즉 일방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삶 속에서 받는 은혜는 쌍방적입니다. 즉 은혜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담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힘써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전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가 어디에 살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6절을 읽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사렛이란 ‘경멸, 조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지역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면서 그 이름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날 수 있겠느냐”(요 1:45)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만 보아도 나사렛이 어떤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살고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가서 수태고지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 누구에게 임할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과 예상을 초월해서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루살렘에 사는 여인에게 임하지 않고, 나사렛에 사는 여인에게 임한 것은 생각의 틀을 깬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루살렘은 제도권이고, 나사렛은 제도권 밖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특목고를 나와 일류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부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고, 나사렛이란 정규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별 볼일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도권의 사람을 찾아가시지 않고 제도권 밖의 사람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스펙이 있어야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도 사람을 채용할 때에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일류대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상대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보고 합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사전에서 사라질듯 싶습니다. 제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스펙을 인재 등용의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판단을 기준으로 사람을 사용하신다면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세워놓으신 기준에 따라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목말라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려다가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 나서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 40년간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목말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가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28절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만나 첫 번째로 한 말은 ‘은혜를 입은 자여’입니다. 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만나자마자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은혜’라는 단어의 뜻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즉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뭔가 되어진 일이 자신의 수고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호의로 거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것은 그녀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마리아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도 이미 받았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의 수고로 받았습니까?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원을 은혜로 받는 것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의 회심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에서는 은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불교는구원 받기 위해 ‘피안에 이르는 8개의 길’을, 이슬람교는 ‘계율’을, 유대교에서는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에는 전혀 ‘은혜’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즉 다른 종교들은 사후에 좋은 세상에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도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자신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받은 구원이 자신의 선한 행실이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은혜를 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한 마디로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은혜로운 소식일까요? 요즈음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그렇게 큰 일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아이를 낳아도 사회에서 매장을 당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유대의 율법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를 거부하면 부정한 여인으로 여겨져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혹 도망을 가서 산다 할지라도 그런 여성이 살아갈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 마리아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리아에게 엄청난 고난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와 고통은 함께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75세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놀라운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은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가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평생 살아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평생 살아온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더군다나 당시는 혈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혈통과 결별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또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당대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그는 다른 사람들은 온갖 육신을 즐겁게 하는 쾌락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에 그는 120년 동안이나 땡볕에서 방주를 만드느냐고 죽을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희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과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와 함께 고통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님께 은혜만 받으려고 하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라면 아예 신경조차 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개척교회에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쉽게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주님께 받은 은혜가 정말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에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재산과 목숨을 바쳐 주님을 따랐습니까? 그들이 얻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 간이 좋지 않아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광고시간에 목사님을 위하여 간 이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다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던 터라 앞줄에 앉은 장로들부터 손을 들자 권사들도, 집사들도, 모든 성도들이 다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광고시간에 많은 사람 중에 한명을 지목하면 다른 사람들이 섭섭해 할 수 있으니 다음 주에 오리털을 하나 날려서 그 오리털이 머리에 내려앉는 사람이 간이식을 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광고한 대로 다음 주에 강대상에서 오리털하나를 불어서 날렸습니다. 먼저 오리털이 날아가서 어느 장로의 머리에 내려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는 “아버지!” 하면서 숨을 내쉬자 다른 곳으로 날아 가버리더랍니다. 또 권사의 머리에 앉으려고 하자 “오, 주여!” 하자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더랍니다. 그래서 아직 까지도 한 사람의 머리위에도 오리털이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 머리 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웃자고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숨어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은혜는 받고 싶어 하지만 기꺼이 고난은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은혜는 진정한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38절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여기서 ‘이루어지이다’는 말은 명령 간구형입니다. 즉 그렇게 이뤄지기를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녀가 기도했다는 말은 단지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런 일이 이뤄지기를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자신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원했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장차 당할 고난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뤄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른 신앙은 자신은 죽고 예수님만 사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는 자신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마리아가 천주교에 의해 우상숭배를 받고 있지만 마리아의 신앙은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리아가 천사가 전해준 말을 듣고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36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무슨 말입니까? 마리아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이미 그와 비슷한 일이 그녀의 가까운 친척 중 늙은 엘리사벳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임신이 불가능했던 엘리사벳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임신했듯이, 자신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얼마든지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서 자신에게도 그와 동일한 은혜가 임할 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가까이 하는 사람을 통하여 영향을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믿음의 사람이 되고, 불평의 사람을 만나면 불평의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가까이 하는 사람을 선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가까이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은 멀리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다른 은혜를 받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에게 베푸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리아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자신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절대로 순종하는 삶을 연출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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