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9-17절 로마서강해(11) 2021.1.3

//로마서 4장 9-17절 로마서강해(11) 2021.1.3
로마서 4장 9-17절 로마서강해(11) 2021.1.32021-01-03T16:04:51+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로마서 4장 9-17절 로마서강해(11) 2021.1.3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85

    지난주 로마서 4장 1-8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후사를 주시고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것은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 이전에도 구원받은 자가 있는데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계속해서 죄를 범하였기에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기로 하셨는데 이 일에 첫 대상자가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칭의를 설명하면서 다윗이 죄 사함 받은 것을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신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단지 죄를 사함받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칭의는 고장 난 것을 수리하는 정도가 아니라ㅣ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넷째로, 바울이 아브라함과 다윗을 등장시켜서 칭의를 설명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 이전이나 율법 시대나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따라 구원받는 방법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항상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과 다윗이 죄 사함 받은 것을 통하여 칭의의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칭의와 할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먼저 바울은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고 묻습니다. ‘이 복’은 바로 앞 8절에 나온 대로 다윗이 죄를 범했지만, 주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다윗처럼 죄 없다고 인정을 받는 복을 할례받은 사람만 받느냐?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은 무할례자도 받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질문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는데 그가 그렇게 여김을 받은 것이 할례시냐 무할례시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무할례시니라”고 답합니다. 바울이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자문자답을 한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칭의와 할례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즉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할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하여 설득을 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도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와 할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야 말씀에 근거한 바른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앞서 바울이 칭의를 설득시키기 위해 다윗이 죄 사함 받은 것을 예로 들어 말했는데, 갑자기 칭의와 할례가 무관하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다윗을 거론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했느냐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성경에 최초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낳은 지 8일 만에 남아의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75세였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 중 최초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창세기 17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절부터 나오는데 시간 관계상 23-27절을 읽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날 자기 뿐 아니라 이스마엘과 그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도 다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지금은 마취를 하고 할례를 받지만, 당시는 마취를 하지 않고 돌을 칼처럼 갈아서 할례를 했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워서 3일이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창 34:25).

    둘째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할례를 받은 최초의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창세기 15장 사건 이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늙도록 후사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그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날 자라고 하셨을 때 이를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99세에 아브라함이 할례를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최초로 할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최로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칭의와 할례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아브라함을 거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할례의 표를 받은 의미와 목적을 말합니다. 11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1절). 먼저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를 인친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할례는 칭의를 받은 것을 확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칭의를 받지 않으면 할례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말로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것입니다. 내용은 전혀 없고 형식만 갖춘 것입니다. 이는 마치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은 할례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무할례자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할례자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방인이 아니었지만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떻게 칭의와 할례의 관계를 이토록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바울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해 주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신학을 ‘계시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구약성경에 정통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세기 17장에서 할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79-10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즉 할례를 받기 때문에 언약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된 후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 이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칭의와 할례의 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을 성경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율법의 안경을 끼고 읽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은혜의 안경을 끼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경이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새해에는 성경을 보는 눈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언약과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를 언급합니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13절을 다시 읽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2:2-3을 읽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언제 하셨는지 아십니까?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400년 전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는 상속자가 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율법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해서 하신 이유를 말합니다. 14-16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그것은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데 도리어 율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약속은 율법과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7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바울이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언약을 받았고, 칭의를 얻은 후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받기 전에 언약을 받은 것이라고 할까요? 로마서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롬 1:7). 즉 이미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칭의의 교리를 계속해서 설명했을까요? 그들 중에 아직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그리스도인은 유대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즉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 위에 굳게 서 있지 않은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에서 믿었던 교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듯이, 타종교를 믿을 때 가졌던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와 타종교와 차이가 많은데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구원을 자력으로 받느냐 아니면 타력으로 구원을 받느냐입니다. 타종교는 모두 자력설을 주장합니다. 즉 자신들이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오직 기독교는 타력설을 주장합니다. 즉 자신의 노력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해봅시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따릅니다. 첫째는, 나면서부터 죄인인데 어떻게 죄인에게 선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 하므로 하나님께서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로, 얼마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준이 애매모호합니다. 사람은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셋째로, 어느 시점의 행동을 보고서 구원을 결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때도 있고 악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죄를 범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선행은 구원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행동에 따라 구원을 받고 못 받고가 결정된다면 그런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구원은 인간 수준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유일신을 믿는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지만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무엇보다 신론과 구원론이 전혀 다릅니다. 유대교는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는 삼위일체 신관을 갖고 있습니다. 또 유대교는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만 기독교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뭔가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