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7차 로마서강해 13장 1-7절 20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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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7차 로마서강해 13장 1-7절 2021.7.182021-07-20T08:37:2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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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로마서 1214-21을 통해서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펴보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않고 도리어 축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2-13을 통하여 답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저주했는데 그것이 상대방에게 합당하면 상대방에게 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저주한 자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에 이유를 묻지 말고 저주를 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둘째로, 어떻게 하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지혜로운 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함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와 마음을 같이 할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셋째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다툼은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희생하고 양보하면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화목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화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희생하고 양보하므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왜 우리가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수를 갚으면 월권입니다. 다른 하나는 원수를 갚는데도 욕심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즉 지나치게 원수를 갚으므로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원수 갚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용서입니다. 용서하므로 불편한 관계를 화목의 관계를 바꾸고 그 기쁨을 맛보는 것이 그리스도인만이 누닐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기관을 주셨는데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정과 교회와 국가입니다. 우리는 앞서 교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무슨 뜻입니까?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세’는 에베소서 6장 12절의 권세와는 전혀 다릅니다. 12절에서는 ‘악한 영의 능력’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한 국가를 다스리는 힘과 권한을 가진 통치자를 뜻합니다. 그런 통치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복종하라’(휘포라스세스토)는 동사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아래에 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바울이 왜 로마제국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로마교회의 상당수가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이 로마의 속국에서 정치적으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로마교회 성도들 중에 예수께서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1-32)고 하신 말씀을 오해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은 죄의 멍에로부터의 자유인데, 이를 정치적 경제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는데 굳이 로마제국의 법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로마 정부가 유대인들이 혁명적이고 반역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독교를 유대교의 일부로 알고 이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교회가 로마제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면 로마제국의 공격을 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복음 전도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디모데전서 21-2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국가와 적대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이유입니다. 다시 1절을 읽습니다.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뭐라고 말합니까?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국가를 세우셨기 때문에 이를 다스리는 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공의대로 통치하지 않고 불법과 불의를 저지를 경우라도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과거 독일의 히틀러 정권 시절에 본 회퍼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이고, 기독교를 박해하여 복음주의 목사 50,000 명을 죽인 악독한 히틀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히틀러를 죽이겠다고 결단하고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서 히틀러가 죽기 전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성경을 통해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씩 예를 들어 답하려고 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서 3장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을 하라는 느부갓세살 왕의 명령을 거역하므로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에는 불순종하였지만, 왕이 풀무불 속에 넣었을 때는 아무 반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약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베드로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자, 그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며 그들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감옥에 투옥당할 때 베드로는 조금도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통치자들의 명령이 하나님의 법에 위배가 될 경우는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일로 명령할 경우는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얼마나 불의하고 불공평했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로마제국과 투쟁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박해하면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얼마든지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고 계셨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체포당하셨습니다. 검을 사용한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 총독의 판결에 아무런 항의를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시당하고, 노예제도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것들을 인하여 로마제국과 투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하면 됩니다.

     

    둘째 이유입니다. 2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한마디로 무슨 말씀입니까?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기에 권세자의 명을 어긴 것은 곧 하나님의 명을 어긴 것이라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권세를 거스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교회 성도만 아니라 우리도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줄 알고 곧바로 이렇게 말한 이유를 3-4절에서 밝힙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무슨 말입니까? 통치자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과 같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을 악한 일을 징벌하도록 사용하시는 사역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통치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할 때는 구원받은 것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악한 자를 징벌하는 일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부른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국가가 악한 자를 징벌하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과 이 세상의 일을 전혀 다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대부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일과 이 세상의 일을 전혀 다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국가와 법질서를 지키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신앙생활은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국가나 사회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곡해한 것입니다. 영적인 일, 즉 개인 구원도 국가 사회와 무관하거나 대립 되는 것이 아니고 깊이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해서 거듭나게 하고,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운다고 합시다. 이런 일을 국가 권력이나 사회제도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면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 극보수 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조차 없어서 건물 교회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셨는데 국가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서 이런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미혼모나 결손 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이나 마약 등 기타 문제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건설하려면 현실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도 성경에 근거해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왔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 원리를 갖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 원리가 무엇입니까? 공평과 정의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정신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곧 세상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유를 말합니다. 5입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통치자들에게 복종하지 말고 양심을 위해서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양심을 가진 자들이므로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양심은 어떤 양심입니까? 거듭난 새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양심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이 세상 사람들의 양심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양심을 인해서라도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과연 내 양심은 어떤 양심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문제를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6-7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가 무슨 의미입니까? 조세를 내는 것도 양심을 인하여 내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의 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금을 거두는 자들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힘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절 하반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두려움을 ‘포보스’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포보스’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를 세상의 통치자를 두려워하라고 할 때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세상의 통치자를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장기판 옆의 재떨이보다도 하찮게 여깁니다. 현대를 가리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 중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전통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할 자와 존경할 자가 없습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쌍욕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가 떨어졌고, 교회에서는 목사의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와 목회자와 통수권자에게는 복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 기관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고 그들을 각각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권위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유한 마음을 갖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온유는 길들인 야생마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길들인 야생마는 힘이 있지만,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마부의 뜻대로 사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유하지 않으면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행하지만, 훈련을 통하여 온유해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그렇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면 우리도 마침내 주님의 마음인, 온유과 겸손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상의 통치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국가 없이는 교회도 없고 교회 없이는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동떨어진 두 기관이 아니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보나 보수의 이념으로 통치자를 대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대해야 합니다. 바른 국가관으로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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