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8-15절 로마서강해(3)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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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8-15절 로마서강해(3) 2020.10.25.2020-10-25T09:58:3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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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로마서 1장 3-7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피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왜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복음이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죄를 해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째로, 바울이 예수님을 주시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오직 예수께서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둘째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로, 우리에게 전혀 처분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을 섬겨야 하고,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범사에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셋째로, 바울이 자신을 은혜로 불러서 사도의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신 목적이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듯이 우리도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바울이 서신서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은혜’는 아무 공로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하고, 평강은 그것을 받은 자에게 얻어지는 결과로 어떤 경쟁자와 더불어 다툼이 있은 후 함께 모이고 화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은혜와 평강이 있도록 축복한 것은 그가 이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은혜로 구원받고 평강을 누림으로 다른 사람도 그런 복을 받아 누리도록 빌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문안 인사를 한 후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을 인하여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8절을 읽습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일반적으로 먼저가 있으면 나중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나중이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먼저’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즉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을 무엇보다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 굳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여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곳의 핵심부가 로마였습니다. 따라서 수도인 로마의 도처에 그들의 믿음이 소문났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그렇게 전파되었을까요? 그것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로마제국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욕망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 전혀 삶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삶에 기반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즉 그들의 삶과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 세상에 확산이 되지 않은 것은 삶의 변화를 동반한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로마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9절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위해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관심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진정한 관심은 기도하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면한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이 세상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고,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그가 기도한 대로 로마에 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에 어떻게 가기를 기도했습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좋은 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실제로 로마에 어떻게 갔습니까? 그가 탄 배는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파선하여 멜리데 섬에서 삼 개월이나 머물러서 빨리 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인이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 갔습니다. 과연 그렇게 로마로 간 것을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겉으로만 볼 때는 좋은 길이 아니어도 실제로는 좋은 길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일 그가 탄 배가 파선되지 않아 계획한 대로 왔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에게 암살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죄수가 아니면 황제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여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마치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도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요셉의 꿈이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통하여 이루어질 줄을 어느 누가 상상을 했겠습니까? 우리는 ‘2030123007000비전’, 즉 2030년까지 12명의 단독 선교사와 300명의 현지 목회자와 7000명의 현지 평신도사역자를 파송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전이 유대인들과 함께 그리고 유대인들을 앞세워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7,312명을 훈련하여 파송하고 재정적으로 매달 20억 원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으로는 이 비전이 성취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십니다. 이는 제가 이미 경험한 것입니다. 저는 평소 평신도들을 사역자로 세워서 목회하는 평신도사역형교회 비전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분당에서 경매로 교회의 문을 닫았고, 또 부교역자로 청빙받은 교회에서 추종하는 교인들이 많아지자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교역자로 4년간 사역을 했고, 상수동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곳에서 5년간 사역하던 중 D3전도중심제자훈련시스템에 필요한 교재를 모두 준비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50대 중반이 넘었습니다. 50대 중반에 조직교회에 청빙을 받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신교회로 부임하게 하셨고 그곳에서 2년 10개월 간 위임목사로 사역하게 하시다가 이곳 상수동에 다시 더처치를 개척하여 여러분과 함께 세계 복음화를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했더니 때가 되매 주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도 우리의 때와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혼자서 기도하지 않고 이런 사실을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알렸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우리도 상대방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바울도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8:34). 왜 우리가 상대방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까요? 기도하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그 말을 듣고 힘과 위로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이 찾아와서 “제가 매일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저와 원장님은 매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에 가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1-12절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여기서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주어진 능력을 뜻합니다. 바울은 그런 능력을 나눔으로 로마 교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은혜와 은사는 다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만 하시지 않고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도 성품과 성격에 따라 다르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십니다. 따라서 자신의 은사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은사를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그의 은사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은사를 소중하게 여기지를 못하는 사람은 이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받은 은사를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의 은사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의 은사도 소중하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은사와 비교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은사를 나눠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12절을 읽습니다.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나눠줄 수 있을까요?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과 자신의 믿음으로 피차 안위함을 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위’는 헬라어로 ‘숨파라칼레오’입니다. 함께 강하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은사를 나눠준다는 것은 바울이 일방적으로 은사를 로마교회 성도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제하여 함께 강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교제는 한 사람은 손해 보고 한 사람은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서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으로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말합니다. 13-15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열매’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신앙의 성숙이나 인격적인 변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방인 전도에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 즉 전도의 열매를 뜻합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서 만남으로 전도의 열매를 함께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빚진 자’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옵헤일레테스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법정에서 갚을 것이 있는 죄인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채무 상환을 소홀히 하거나 거부할 때는 감옥에 들어가서 응분의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 예수를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까지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땅히 죽어야 할 자신을 구원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을 생각할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을 알아야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자로 살아가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고 빚진 자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성 프랜시스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높은 보좌가 있었는데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누가 앉을 것이냐고 물었더니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을 자리다라고 하더랍니다. 제자이지만 자기 스승이 너무 높아진다는 말을 들으니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 선생님을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위선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성자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강도도 많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많은데 선생님이 제일 악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때 성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은혜를 받은 줄 몰라서 그래.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주셨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 됐을 거야.” 받은 은혜를 깨달은 만큼 겸손해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남은 생애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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