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제44회 로마서 15장 22-29절 2021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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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제44회 로마서 15장 22-29절 2021년 9월 5일2021-09-05T14:35:3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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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로마서 1514-21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책망하고 칭찬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나 사람을 대할 때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대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이 구원받고 복음의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한 것이 은혜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은혜를 앞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세 가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둘째로, 신앙의 기복이 심하고, 셋째로,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앞세워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교만하다는 증거이므로 속히 이런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말씀으로만 전하지 않고 ‘행동과 놀라운 기적과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성령으로 세 가지 사역, 즉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평소 제자훈련사역이 곧 성령사역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3분복음메시지’를 날마다 반복하므로 성령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넷째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무슨 의미냐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복음의 방향성이 아니라 동기성을 말한 것입니다. 즉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려고 복음을 전해야지 양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섯째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위해서 이사야 5215절을 인용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우리의 언행심사는 오히려 화를 부릅니다. ‘D3전도중심제자훈련’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먼저 바울은 로마교회에 가려고 했지만 여러 번 막혔다고 말합니다(22절). 이는 로마서 113에서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로 가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23-24을 다시 읽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바울이 지금 있는 지방에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방’은 고린도를 포함한 헬라 전역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것은 1년 6개월입니다(행 18:11). 1년 6개월이면 매우 짧은 기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헬라 전역에 일할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자신이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이미 그곳에 세워진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전도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직접 제자훈련을 하지 않아도 터키에서는 이승복 선교사가, 필리핀에서는 김종태 선교사가, 태국에서는 김봉국 선교사 등이 저를 대신하여 훈련할 수 있기에 제가 계속해서 다른 나라를 찾아다니는 것과 흡사합니다.

    둘째로, 그들과 교제를 통하여 기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로마교회가 서바나로 가기 전 그곳에 들러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교제하려고 한 내용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 선교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성경을 통하여 이를 깨달아야 서바나 전도 여행에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전 세계를 다니며 제자훈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렇게 해야 깨달은 자가 제자가 되고 함께 세계복음화에 협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얻는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D3로 제자훈련을 제대로 하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당장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셋째로, 로마교회가 자신을 서바나로 보내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서바나는 토끼라는 뜻인데 지중해 서쪽 끝에 있는, 오늘날로 말하면 스페인을 뜻합니다. 바울이 서바나를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당시 유럽과 중근동 사람들이 그곳을 땅끝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곳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에 로마교회가 함께하기를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로마교회를 세우신 것은 그 교회가 또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복음 전도를 위해 존재하므로 국내든 국외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함께 협력하고 동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25-26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도를 섬기는 일’을 ‘성도를 위하는 연보’라고 했습니다(고후 8:4, 9:1 참조).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성도를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이라고 말합니까? 26절에 나와 있듯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사도행전 1127에 언급된 ‘흉년’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따라서 당시 기근으로 가난하게 된 자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섬김의 대상을 성도 중 가난한 자들로 한정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이것을 보면 요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기본소득’은 좀 성경의 원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했을까요? 저처럼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27입니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영적인 빚을 졌기 때문에 그들이 육적인 것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을 자선사업이 아니라 복음의 빚을 갚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은혜를 받은 것을 빚으로 생각하고 이를 물질적으로 갚으려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구원 받고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해 준 자들에 대한 감사에 인색합니다. 세상적으로 이해관계에 있는 자들에게는 때가 되면 선물을 하지만 영적인 은혜를 받게 한 자들에게는 그럴 마음조차 갖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요? 한마디로 영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은혜를 받았다면 이를 빚으로 생각하고, 은혜를 끼친 자들이 물질적으로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면 섬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마케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어떤 자세로 헌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6절에 보면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느니라.’ 그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81-2을 보면 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극심하게 가난했지만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헌금을 드립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기쁨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물질의 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미나를 인도할 때마다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헌금 드리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함께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가복음 143-9인데 시간 관계상 9절만 읽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14:9). 무슨 말입니까? 그녀가 옥합을 깨뜨려 머리에 부은 이야기를 복음과 함께 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기쁘셨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런데 이런 일이 마리아에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제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연보’입니다. 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공유하다’, ‘남과 함께 나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과 교제를 뜻하고(요일 1:3), 다른 하나는 성도 간의 친교를 뜻합니다(요일 1:7). 즉 하나님과의 교제나 사람과의 교제에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가난한 형제를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일예배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 헌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이 쓸 돈을 보낸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4:18). 우리가 선교사의 필요를 채워주거나 가난한 형제를 돕거나 말씀 사역자를 돕는 것은 자연인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6:4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참조 마 26:45).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28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었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바울은 서바나로 가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반드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행 21:11-14). 그리고 거금이기에 도중에 어떤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가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갖고 있는 영적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의 출발지이고 종착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단지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판입니다. 어머니 없이 자식이 나올 수 없듯이 예루살렘교회가 없이는 어떤 교회도 나올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모든 교회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복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권위,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 교회에서는 영적 지도자의 권위 등을 인정하고 세워야 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합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 질서가 무너져서 세상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GSSG 사건).

    바울은 확증한 후 서바나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앞서 24절에서 바울은 어떻게 서바나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8절에서는 ‘서바나로 가리라’라고 말합니다. 어투가 이렇게 바뀐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반드시 서바나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실제로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을까요? 하지 못했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굳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바울이 로마교회는 방문했지만 서바나에는 가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W. Wiersbe). 혹자는 A.D. 1세기 말 교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of Rome)가 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The Epistle to the Corinthians)에 바울이 서방의 끝에 도착하여 통치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했다고 기록된 것을 근거로 갔다고 말합니다.

    저도 후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측면에서 바울이 서바나에 갔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앞서 자신이 로마에 거친 후에 서바나로 간다고 했는데 로마에 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울이 로마에 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대로 갔습니다. 어떻게 갔습니까? 복음 전도자로 가려고 했지만, 죄수의 몸으로 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마교회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2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것을 담대히 가르쳤습니다(행 28:30-31). 따라서 두 계획 중 앞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다음 계획도 이루어졌다고 확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를 서바나로 보내셨다고 확신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곳은 모두 네 곳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땅끝까지’를 제외하면 모두 이스라엘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이방 선교사입니다. 네 곳 중 바울이 갈 곳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교회에 자신을 서바나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바나에 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29절을 읽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여기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가지고 가겠다고 말한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과연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복음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로마서 1장 11절에서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그들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했고(1:11), 15절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가 로마교회에 갈 때에 복음을 가지고 간다고 말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자신을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운반하는 자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나르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원장님의 이름이 카림인데, 아직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분들이 있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립니다. ‘카’는 은혜를 뜻하는 헬라어 ‘카리스’의 첫 글자이고, ‘림’은 한자로 임할 임입니다. 즉 카림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전하므로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고 자신도 풍성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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