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7) 로마서 3장 1-8절 2020.1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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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7) 로마서 3장 1-8절 2020.12.6일2020-12-07T16:38: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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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로마서 2장 17-29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르치기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체크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말한 대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가르침은 공허할 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둘째로, 유대인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으므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적폐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욕 먹이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셋째로, 바울이 할례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할례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배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세상에 나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즉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넷째로, 바울이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할례의 불필요성을 주장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고 건물 안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 드리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릇이 없으면 내용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바울은 할례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을 욕먹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례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2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묻고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자문자답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우선’이라고 하고 다른 언급이 없기에 이 문장이 이상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선’은 순서상 첫 번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혹은 ‘특히’라는 의미이므로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즉 할례의 유익이 많지만, 무엇보다 할례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과 관련이 있기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이 할례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할례는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증거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창세기 179-1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맡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할례를 맡기신 그 자체만으로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할례가 유대인들에게는 유익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 뭐라고 말합니까? 3절을 읽습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문맥상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다’고 번역한 것은 잘된 번역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다인들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께서도 신의를 저버리시겠습니까?”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의를 저버렸어도 하나님께서는 신의를 저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인간의 파기로 폐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그 효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부모와 자식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호적에서 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혹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말을 언제 했습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를 죽인 것은 보통 큰 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토록 큰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자들보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자를 불러서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신있게 이를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하면서 덧붙인 말이 무엇입니까? 4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이 다 거짓되되’라고 말한 것은 시편 11611을 인용한 것이고,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는 시편 5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장하든지 성경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의 말에 따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 일에 청춘을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뜻을 주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성경을 숙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데 어떻게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왜 제가 여러분에게 큐티를 날마다 보냅니까? 여러분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큐티를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데 그것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궁전에 거주할 때 선지자 나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무슨 말입니까? 성전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가 즉시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대상 17:2)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대상 17:4). 다윗은 나단 선지자도 인정할 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뜻을 묻지 않으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매일 큐티 반응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가상 질문을 던집니다. 5-8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오히려 드러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실 수 있느냐며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고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한 마디로 ‘아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자주 듣는 것이 ‘가룟 유다 사건’입니다. 고고학자들이 1976년 이집트의 한 골동품 시장에서 고문서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유다의 복음서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에서 사탄의 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책은 가룟 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룟 유다의 배반을 합리화하고 심지어 칭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가룟 유다에게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거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2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종종 이런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건축 헌금을 많이 드리기 위해 탈세를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13:7). 제가 부교역자로 섬겼던 교회는 본당이 5천 500석이었습니다. 건축 당시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다음으로 본당의 규모가 컸습니다. 그리고 교인도 1990년도에 재적 8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고 수천 명이나 되던 성도들이 뿔뿔히 흩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전 건축을 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30123007000의 비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비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제자들을 모아야 합니다. 어떻게 함께할 제자들을 모아야 합니까? 훈련을 통하여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D3목회자세미나’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훈련하지 않고 선교비를 주는 조건으로 모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사역하도록 후원하기 위해 재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선교 재정을 확보해야 합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물질의 복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밖에 돕는 자들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기도 시간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여고 3학년을 딸로 둔 모친이 딸이 남학생과 교제하느라고 학교에 자주 결석하다가 가출하자 그 교회 전도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평소 여학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을 집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등짝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학생이 전도사님에게 심하게 욕을 하며 대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전도사의 제자들이 분노하여 그 여학생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납치와 집단 폭행죄가 성립되어 전도사가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여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라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께서 능력이 많으신데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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