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5) 로마서2장 1-11절 202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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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5) 로마서2장 1-11절 2020년 11월 22일2020-11-22T10:10:2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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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로마서 1장 18-32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먼저 불경건과 불의와 우상 숭배를 죄라고 언급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데서 발생하므로 행위로 범하는 죄보다 먼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셨다고 말합니까? 한마디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말씀합니다(24-28절). 이는 그들이 어떻게 살든 하나님께서 관여하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들을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무서운 심판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간섭하시는 것을 귀찮아하지 말고 사랑으로 알고 돌이켜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어버리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말합니까? 동성애를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동성애를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겉으로는 성적 쾌락을 추구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성애 자체를 반대해야지 동성애자는 전도의 대상이므로 그들을 정죄하거나 터부시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로, 바울이 소개한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이 범하는 21가지 죄악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을 보면서 무엇을 결단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 안에는 구원받을 선한 것이 전혀 없음을 새삼 깨닫고 우리의 의를 조금도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미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옛사람의 죄에서 떠나기로 새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지난주 큐티처럼 미가야 선지자가 사백 대일의 상황에서 아합왕에게 암몬과 전쟁하지 말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듯이 우리도 날마다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죄에서 떠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도 이방인처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1-3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판단은 ‘정죄하다, 선고하다’는 뜻을 가진 법정용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심판자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모든 사람이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것은 마귀의 유혹을 받고 교만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데 우리가 바로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이미 구원받아 아담의 족보에서 벗어나 둘째 아담의 족보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옛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할까요? 이것 역시 교만 때문입니다. 어떤 교만일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죄를 비신자보다 덜 짓기 때문에 그들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판단하는 마음이 들면 자신이 교만한 상태에 있음을 알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1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판단하는 자가 같은 일을 행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집에서 점심을 먹기 전, 선생님이 대표로 식사 기도를 하려고 막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혜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민규가 아직도 눈을 감지 않았어요.” 그런데 혜지가 민규가 눈을 감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그도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대체로 다른 사람의 죄에 분노하는 것을 보면 그 자신도 동일한 죄를 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2-3을 읽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시지 않는 이유를 밝힙니다. 4-5을 읽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에 대하여 곧바로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정당해서가 아니라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못해도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므두셀라가 969세를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인류 역사이래 가장 오래 살았습니까? 그가 건강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오래 참으셨기에 그가 천년 가까이 살았던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대로 그가 죽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따라서 심판의 날에 받을 상을 쌓고 있는지, 아니면 그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합니다. 6-10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바울은 여기서 두 부류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하나는 악을 행하는 자고, 다른 하나는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쫓지 아니하고 불의 좇는 자이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얻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은 대로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이 세상이냐 저 세상이냐, 돈이냐 주님이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구에게종두득두의 법칙을 적용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9절을 다시 읽습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당시는 사람을 크게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 말을 했을까요? 당시 로마 교회는 개종한 유대인들과 예수 믿는 이방인들이 함께 섞여 있었는데, 이방인 성도들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관대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유대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의 죄는 더욱 더 엄중하게 대하십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9절을 다시 읽습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라는 말은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나중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유대인을 더 무섭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죄를 범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롬 1:21,32).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비신자들보다 우리의 죄를 더 중하게 다루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얼마나 죄의 결과가 무서운지를 알면서도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불행한 대로 심판하실까요? 11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얼굴’을 뜻하는 명사와 ‘받아들이다’를 뜻하는 동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는 말은 ‘얼굴을 받아들이다’는 뜻입니다. 얼굴은 한 사람을 외적으로 대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얼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람을 외적으로 판단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마음을 알 수밖에 없기에 외모에 의존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까지 잘 아시기 때문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선하셨다고 생각할 때에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를 만납니다. 그런데 개척교회 목회자와 규모 있는 교회 목회자를 대하는 태도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직장에서 오너와 상사를 대하는 태도와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야고보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듯이 모든 사람을 대하는 은혜를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12-16절에서 이를 더 확대하여 설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려는 골자는 율법을 가진 자든 가지지 않은 자든 다 같이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율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바울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12-13절을 읽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이 없이 망하고, 율법을 갖고 있지만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율법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혹자는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합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합니다. 14-15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을 행위를 나타내느리라.” 즉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이 그들에게 스스로 율법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양심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지, 선한 양심으로 행했다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복음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합니다. 16입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언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은밀히 심판하시는 그날’입니다. 그날은 마지막 심판의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또 마지막 심판은 ‘어떻게’ 받는다고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 여부에 따라 심판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과 지옥의 심판을 받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 심판은 받지 않고 오직 상급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어디에서 언급했다고 말합니까? ‘나의 복음’입니다. ‘나의 복음’은 바울 개인의 복음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단지 영육의 복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어떤 복음을 전합니까?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고,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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