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4) 롬1:18-32절 2020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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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 롬1:18-32절 2020년 11월 15일2020-11-15T09:41: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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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로마서 1장 16-17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속은 완전히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죄악의 대명사로 불리던 고린도나 에베소 등에서 많은 사람이 이를 믿고 새로운 삶을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을 통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라고 언급한 것이 어떤 의미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먼저’를 ‘나중’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우선’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유대인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음에 있어서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일에 중심에 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방인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가는 곳마다 먼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을 제자 삼아 그들과 함께 세계 복음화를 하려고 전략을 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했는데,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세 가지, 즉 법적, 도덕적, 언약적 측면으로 이해하지만, 저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해석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복음을 믿어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를 ‘by faith from first to last’로 번역하는데, from은 출처를, to는 방향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의인이 되는 것도 믿음이고 의인이 된 후에도 믿음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을 보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끝으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주님께서 공급하는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인사와 서론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로마 교인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떤 사람들의 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로마교회 성도들이 아니라 비신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근본적인 죄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8절에서 밝히듯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입니다. ‘경건하지 않음’은 헬라어로 아세베이아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의’로 번역된 아디키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불경건과 불의를 말하면서 곧이어 우상 숭배를 언급합니다. 다시 21-23절과 25절을 읽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바울은 우상 숭배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그분께 감사하지 않고 피조물을 조물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우상숭배도 불경건과 불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바르지 못한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우선적으로 불경건과 불의와 우상숭배를 죄라고 말하는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크게 생각하는 죄와 하나님께서 크게 생각하는 죄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범하는 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면 가장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으로 범하는 죄보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어떻게 말합니까? 19-20절을 읽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본능적으로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을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도 자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그런데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맞붙고 있습니다. 칼 바르트와 부르너의 논쟁은 매우 유명합니다. 칼 바르트는 사람은 완전히 타락해서 그 안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르너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조금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장로교 창시자인 칼빈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씨앗(the seed of religion)이 심겨져 있고, 그들의 양심 가운데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기에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만하지만,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지는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칼빈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바울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셨다고 말합니까? 24-28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여기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24, 26, 28절의 ‘내어 버려두사’입니다. ‘내어 버려두다’는 헬라어로 ‘파라디도미’인데, 이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 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어떻게 살든 관여하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끝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네 맘대로 하라’고 합니다. 이는 진짜 자녀가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시고 있는지, 이전보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는지, 무엇을 하든지 전혀 간섭하시지 않으시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어버리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합니다. 다시 26-27절을 읽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남자와 여자가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로 썼다는 것은 동성애를 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들이 동성애를 하다가 이에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호모 섹스’는 풍년 신을 섬기는 바알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알 신전에서 이성 간의 성행위와 함께 동성 간의 성행위도 했습니다.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 로마는 세계 최강국이었고 황제들은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수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로마의 초기 15명의 황제 중 무려 14명이 동성애자였고, 로마 철학자들도 대부분 동성애자였다고 합니다.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에 의하면 당시 로마 황제에게 최대 고민은 성병 처리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동성애가 지구촌 곳곳으로 불길같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법원에서도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였습니다. 한국서도 국회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추진 중이고, 심지어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기독교 단체도 있습니다. 청어람은 김동호 목사가 만든 단체인데 동성애를 찬성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동성애가 후천적이 아니라 선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 뇌의 세포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의학계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호모 섹스를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배워서 행하는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20:13, 참조 레 18:22)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가 특별히 동성애를 반대할까요? 사실 동성애도 죄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성애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셨는데 동성애를 하면 어떻게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동성애를 하면 각종 질병에 걸려서 건강을 크게 해치기 때문입니다. 각종 감염병, 간염, 곤지름, 성병 등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동성애와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동성애 자체를 반대해야지 동성애자들을 터부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후자를 하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그들도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버려두심으로 나타난 21가지 죄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9-32절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바울은 비신자들이 범하는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죄를 단지 비신자들만 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읽어서 알고 있듯이 21가지 죄 중에서 우리와 무관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도 불의를 행하고, 추악스럽고, 탐욕이 있고, 악의가 가득하고, 시기하고, 분쟁하고, 악독이 가득하고, 수군 수군대고, 비방하고,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악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우매하고, 배약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비신자들이 범하는 죄를 똑같이 범하는 것을 인하여 크게 두 가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 안에는 구원받을 요소가 전혀 없음을 새삼 깨닫고 우리의 의를 조금도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의를 내세우면 안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미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죄에서 떠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실제로 의롭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본문은 비신자들의 죄를 다룬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였고, 21가지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 복음을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복음을 믿고 완전히 죄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아직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죄에서 건짐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여러분을 통하여 복음을 믿고 죄 문제를 해결받는 자가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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