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32차 롬 11:33-36절 20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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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32차 롬 11:33-36절 2021.6.132021-06-13T14:59:2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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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로마서 1125-32을 통해서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펴보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말한 신비란 한마디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뜻하는데 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이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아야 전도 전략을 바르게 세워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를 몰랐기 때문에 대체 신학을 만들어서 유대인을 핍박한 것입니다.

    둘째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동서남북에서 돌아온다고 했는데 예언대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알리야 운동으로 계속해서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장하든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D3전도중심제자훈련’을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은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훈련하여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삶과 신앙과 사역은 전혀 의미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말씀에 근거해야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좇으면 반드시 마귀에게 넘어가고 실족하게 됩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방인과 유대인을 심판으로 끝내시지 않고 결국에는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긍휼의 대상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로 생각하는 자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심판하려 하지 말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다시 읽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라고 감탄합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감탄했을까요? 자기 민족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는 버려두셨지만 결국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를 어떻게 깨닫게 되었습니까? 자신은 구원을 받았지만 자기 민족은 구원받지 못해서 근심하고 마음의 고통을 느끼던 중 성경을 통해서 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해결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든, 육적인 문제든 다른 데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종 문제의 답을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만일 성경에서 답을 얻지 못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지 않은 데 어떻게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D3전도중심제자훈련’이라는 제자훈련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도 저의 고민을 성경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평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던 중 빌립이나 스데반은 평신도임에도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지상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는지를 찾던 중 사도행전 5장 42절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즉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자 그들이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성도들을 훈련한 방법, 즉 반복, 집중, 시연이라는 세 가지 훈련방법을 통하여 평신도들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이를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금년에 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인 ‘신을 품다’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민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신데 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만 계시는가?”, “왜 기도하는데 속히 고난에서 건져주시지 아니하느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서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기록한 책이므로 성경을 읽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의 깊이를 깨닫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의 깊이에 감탄하면서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것을 이루시는 방법을 사람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해합니다. 그래서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TV프로그램도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착하고 성품이 좋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많습니다. 가끔 평생 모은 돈을 자식에게 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보도를 접합니다. 우리가 돈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입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말하지만 실제로 이를 행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주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이 완공되어 다시 한번 그의 생애에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고당 조만식,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해공 신익희 등의 애국지사들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삶은 정말 감동입니다. 어떻게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수천 억원에 해당하는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운동을 펼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훌륭한 분들을 제쳐놓고 먼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 우리에게 세계 복음화와 함께 유대인 복음화라는 엄청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일을 더처치에게 맡기실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바울이 말한 대로 그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속담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이런 속담이 생겼습니까? 키가 크고 굵기가 굵은 나무들은 사람들이 베어가기에 남아 있지 못하고, 작고 못생기고 볼품없는 나무는 베어가지 않았기에 산을 지킨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학벌 좋고, 문벌 좋은 자가 쓰임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무명한 자, 연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우리의 판단을 무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큰 민족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만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품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매우 과격합니다. 대한민국은 70년 전만 해도 세계 최고로 빈국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게 하셔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게 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의 길은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처치의 성도들에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을 믿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그의 길은 찾을 수 없다면서 세 가지 질문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째로,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수사의문문으로, 몰라서 말한 것이 아니라 강한 긍정을 말한 것입니다. 즉 아무도 주의 마음을 아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8-9). 바울은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원수가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롬 8:7).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려주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으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동안 구약성경에 정통해 있었지만, 주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듭나서 성령충만을 받자 성경을 보는 눈이 활짝 열렸고 주님의 신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34,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도 수사의문문으로, 어느 누구도 주의 모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4013을 인용한 것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여기서 여호와의 영은 성령님이시고, 모사는 꾀를 써서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즉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느 누구에게 배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도 수사의문문으로, 욥기 4111을 인용한 것입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가 먼저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동안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많이 드려야 갚으심을 받을 수 있다면서 헌금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문맥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왜 정 반대의 해석을 합니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크게 두 가지 유혹을 받습니다. 하나는 적게 드리면 부끄럽게 생각하고, 많이 드리면 바리새인들처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왜 이런 유혹을 받습니까? 돈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받은 것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릴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드린 것보다 더 많이 갚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성경에는 심은 대로 주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지 우리가 그런 자세로 헌금을 드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자세로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거래는 대등한 관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와 거래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할 수 있는 것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뿐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영원까지 은혜의 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철저히 깨달아야 헌금을 많이 드려도 교만해지지 않고, 또 드릴 것이 없어도 절망하지 않고, 많이 드렸지만 넘치도록 갚아주시지 않아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사도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어떤 결론에 도달합니까? 다시 36절을 읽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바울은 세 가지 전치사를 사용하여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에게서입니다. ‘에게서rkdalrd 헬라어로 에크이고, 영어로는 from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지 않고, 그분의 뜻 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이런 주장이 전혀 의미가 없지만, 탈레스의 주장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여러 사물과 변화를 뛰어넘어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에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살고 죽은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둘째로, ‘주로 말미암고입니다. ‘말미암고는 헬라어로 디아이고, 영어로는 ‘through’입니다.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진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즉 역사가 영웅호걸이 만들고 우연히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아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넘어져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가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를 배후에서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토록 유명한 로마서 8장 28절, 즉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고 말한 것입니다.

    셋째로, ‘주에게로입니다. ‘에게로는 헬라어로 에이스이고 영어로는 ’to’입니다.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주관하시고 마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헬라적 사고에서 알파는 시작이고 오메가는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끝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고에서 알파와 오메가는 동일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는 것은 알파이신 주님에게서 시작하여 오메가이신 주님께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 말을 했을까요?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시작하여 주님께로 돌아가듯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예루살렘에 온전히 증거되어야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고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것을 깨달았기에 감격하고 감탄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잠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갔지만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만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주님을 위해 살다가 결국은 주님에게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1992년도 바르셀로나 올림픽400m 육상 트랙에서 가장 유망한 금메달리스트였던 영국의 래리 레드먼드 선수가 달리던 중 150M 정도에서 햄스트링이 파열되어 절뚝거리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관중석에서 한사람 달려와서 그의 팔을 붙들어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뛰자.” 그리고 그와 함께 결승선까지 들어갑니다. 그러자 관중들은 끝까지 함께 뛰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일어나 뜨거운 박수로 그들을 격려합니다. 래리 레드먼드 선수를 격려한 자가 누구일까요?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경주자입니다. 이 경주에서 힘들어 포기하고 주저앉을 때 우리의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함께 뛰자!” 바울처럼 만물이 주에게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한 것처럼, 해결하지 못한 문제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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