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10) 로마서 4장 1-8절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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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10) 로마서 4장 1-8절 2020.12.272020-12-27T10:18:5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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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로마서 3장 19-31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은 단지 죄를 깨닫게 하고 심판을 받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의롭게 되는 다른 방법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만 의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기에 구원을 받기 위해 행함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둘째로, 이신득의의 교리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받은 것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고, 신약시대에는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셋째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면서 믿음의 강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만 있으면 되지,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나 ‘은사적인 믿음’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어떻게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의롭게 되고 하나님도 의롭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법대로 하는 것만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벌금을 내는 것도 법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를 강해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장을 마치고 4장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읽어서 알 수 있듯이 오늘 본문에는 3장까지 이미 설명한 칭의에 대해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어 보충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육신으로는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1). 이는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행하여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2).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르는 당시 고도로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예측하게 만듭니까? 그도 우상을 함께 팔았을 것이고 거짓말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장사를 하면 거짓말을 배울까요? 사실대로 말해서는 이윤을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애굽과 그랄에서 두 번이나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이와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이슬람의 조상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슬람의 공격으로 복음전도자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자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세계 복음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3을 다시 읽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 사건은 창세기 15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후사가 될 자는 그의 종 엘리에셀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날 자라고 하시면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장차 그의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즉 그가 의롭게 된 것은 그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다’는 단어가 로마서 4장에서만 11번이나 나옵니다. 헬라어로 ‘로기조마이’라고 한느데 이는 자신의 돈을 자신의 은행 구좌에 넣지 않고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의 구좌에 넣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의를 아브라함 계좌에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저의 통장에 1조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것을 여러분의 계좌로 이체하면 여러분은 1조를 가진 재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음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그를 최초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 전에 등장하는 아벨, 에녹, 노아도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죄로 세상이 점점 가득해지자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는 구원받을 요소가 전혀 없음을 아시고 다른 방법, 즉 믿음으로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이신칭의를 보충하여 설명합니다. 4-5을 읽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 본문은 번역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은 4절의 ‘일하는 자에게’와 5절의 ‘일을 아니할지라도’를 대조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4절의 ‘일’은 세상에서 대가를 받고 하는 노동을 뜻하지만, 5절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 경건하게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따라서 ‘일을 아니할지라도’라고 번역하지 말고, ‘경건하게 살지 아니할지라도’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는 ‘악한 자’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제가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보았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경건하게 살지 않아도 악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좀더 이해하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우리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인이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나섰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20:1). 주인이 품꾼을 찾지 않았다면 포도원에 들어갈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즉 품꾼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주인이 포도원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둘째는 놀고 있는 자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즉 그들이 놀고 있었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말로 별 볼일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뭔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는 3, 9, 11시에 들어간 자들이 모두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시간은 우리와 6시간 차이가 있으므로 3시는 오전 9시고, 9시는 오후 3시고, 11시는 오후 5시를 뜻합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들어가서 한 시간만 일한 품꾼이나, 오전 9시에 들어가서 여덟 시간이나 일한 품꾼이나, 오후 3시에 들어가서 세 시간 동안 일한 품꾼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베푸는 은혜에 의해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거저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믿음을 자신의 공로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단과 원인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수단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는 은혜가 원인이고 믿음은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지만 믿음은 구원을 얻게하는 원인이 아니므로 이를 자신의 공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칭의의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윗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6-8을 다시 읽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시편 32편 1-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자기의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함으로 간음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흉계를 꾸며서 우리아를 전사시키도록 살인 교사죄를 범하였을 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한 후에 죄 사함받은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를 원어로 살펴보면 사함 받은 죄의 내용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범한 죄를 묘사하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4장 7절의 불법’(폐샤)현행법을 위반한 것으로 겉으로 드러난 죄를 가리킵니다. 다음 7절의 ’(하타아)는 죄로 물들어 있는 본질적인 죄성을 뜻합니다. 그리고 8절의 ’(아본)는 마땅히 행할 길을 벗어난 윤리적인 죄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함받은 것을 묘사하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7절의 사함’(네쑤이)은 밖으로 드러난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는 것을 뜻하고, 가리어짐’(케슈아)은 보이지 않게 덮어버린다는 뜻으로 마치 이지러진 금형을 다시 녹여 새로운 금형으로 만들 듯이 본질적으로 고치는 것을 뜻합니다. 8절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야흐쇼브) 아예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지었던 모든 죄를 완벽하게 해결받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단지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 즉 의인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참고로 바울이 이렇게 아브라함에 이어 다윗을 등장시켜서 칭의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과 다윗은 전혀 다른 시대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탄생은 B.C 2166년이고 175세를 살았기 때문에 B.C 1991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B.C. 1030년에 탄생해서 70세를 살았기에 BC 960년에 사망한 것으로 봅니다. 두 사람은 대충 1,000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이 둘을 등장시켜서 칭의를 설명했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은 모세 이전의 사람이라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고, 다윗은 모세 이후의 사람이므로 다윗은 적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 이전의 사람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율법시대의 사람인 다윗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를 주장하는 바울은 복음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전이나 율법시대나 신약시대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 식사 중에서 한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책은 데이비드 그레고리’(David Gregory)가 썼는데 제목 그대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닉 코민스키’라는 사람이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출간되자마자 30만 부가 팔려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다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포이에마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닉코민스키’에게 가장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자와 가장 악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각각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한 사람은 마더 테레사라고 하고 악한 사람은 히틀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마더 테레사의 이름은 명함의 상단에 적게 하고, 히틀러는 명함의 맨 하단에 적게 합니다. 그리고 닉의 이름도 둘 사이에 적게 합니다. 그렇게 한 후 예수님이 닉에게 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아는가?”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의 맨 아래 주춧돌에 이 명함을 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의 기준은 타워의 꼭대기, 110층의 높이에 있는 것이다.” 그러자 닉이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테레사와 히틀러는 결국 같은 수준이란 말인가요?”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니다. 히틀러는 악랄했고, 테레사는 자비를 베풀었으니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테레사의 선행 역시 하나님과의 격차를 메우기엔 히틀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죄인이다.” 닉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그 기준에 못 미치겠네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자신의 쌓은 공적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나님의 기준은 한 치도 모자람이 없는 완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죄값을 치루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셨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는 충족되었고, 우리를 향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할 죄인을 아무 공로 없이 의인으로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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