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49차 로마서 16장 17-20절 2021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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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49차 로마서 16장 17-20절 2021년 10월 10일2021-10-10T13:40:0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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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로마서 163-16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의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이름을 호명하고 그들에게 문안 인사를 해야 할 이유를 말했습니다. 혹자는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기 때문에, 혹자는 주의 종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혹자는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많이 수고했기 때문에 혹자는 바울의 동역자였기 때문에 혹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혹자는 주 안에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린 시간과 물질과 헌신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충성을 받으시고 영원히 면류관을 쓰고 왕 노릇하게 하십니다.

    둘째로, 바울이 거룩한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이냐는 것입니다. 당시 입맞춤은 고대 근동 지방에 퍼져 있었기에 유대 사회에서도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하지 않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입맞춤을 통해 형식적으로 인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제의 시작이 인사로부터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마음으로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서로 문안하라고 한 후 곧바로 로마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17을 읽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그들이 배운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떠나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교회가 배운 교훈에 거슬리는 말을 해서 분쟁을 일으킨 자들은 어떤 자들이었을까요? 크게 두 부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부인하고 행위로 얻는다는 유대 율법주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을 부인한 영지주의자입니다. 저는 당시 로마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던 자들은 주로 ‘유대 율법주의자’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교회는 유대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르게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을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영지주의자들의 공격이 전혀 없다고도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단지 육체적으로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이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과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 정 반대였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든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계속해서 이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바울 당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교회를 공격하기에 교회마다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면 마귀가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마귀가 공격하므로 얼마든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권합니까?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살피라’고 말합니다. ‘살피고'(스코페인)는 원어상으로 계속 목표를 응시하라는 뜻입니다. 왜 항상 우리가 눈을 뜨고 있어야 할까요? 베드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호시탐탐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됩니다. 마귀가 어떤 자를 찾는지 아십니까? 틈을 보이는 자들을 찾습니다. 각자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약점을 공격하여 틈을 생기게 하고 이를 공격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살피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어떻게 합니까? 먼저 자신을 살피지 않고 상대방부터 살핍니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랍니다. 자신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잘 살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입니다. 예수께서 성찬식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 성찬식 할 때만 먼저 자기를 살피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살핀 후에는 떠나라고 했습니다. ‘떠나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교제를 단절해야 합니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주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은 색으로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꽃향기에는 나비가 모여들지 파리가 모여들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믿음이 좋아지고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불평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하고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감사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면 자신이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터키에서 1차 D3워크샵을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제자훈련으로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이를 보충하고 적용사례를 발표하므로 공유하고 이를 확산하자는 취지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떠나라에 원어적으로 단번에떠나라는 의미가 들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악과의 단절은 즉시 행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체하면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 줄 알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즉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즉시 버리면 기쁨을 가져다 주지만 이를 미루면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따라서 순종은 즉시 해야 순종입니다. 순종을 늦추는 것은 단지 미루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즉시 떠났던 것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가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즉시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성령께서 즉시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즉시 순종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18입니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그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그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입니다.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주고 죄에서 건져주셨기에 구원자이시고 주인이십니다. 구세주와 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2:36)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도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구원자와 주님이십니까? 우리가 매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예배는 드리지만 삶 속에서는 주님께 묻지 않고 자기 뜻과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19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수 주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 도둑놈이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재물 도둑놈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영광 도둑놈이다.” 왜 그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예수께서 구원자로만 섬기고 진짜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도둑놈이라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주님을 섬기지 않은 것은 그들 자신의 배를 섬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배’란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복음을 구실삼아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복신앙과 거의 흡사합니다. 기복신앙은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가시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을 섰을까요? 그들의 배를 채우려고 예수님을 좇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께서 힘없이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기까지 좇겠다고 한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까?

    두번째로,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교활한 말이라는 것은 ‘말 재주가 좋아 그럴듯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온갖 좋은 신앙적 용어와 제스처로 교인들을 미혹합니다. 아첨하는 말이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을 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오로지 듣는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는 말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혹하는 대상이 어떤 자들입니까? ‘순진한 자들’입니다. 순진한 자들은 자신이 순진하기에 상대방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을 한다고 전혀 의심하지 않기에 쉽게 넘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사기꾼에게 잘 넘어갑니까? 상대방을 자신처럼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이 사깃꾼에게 잘 속아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기꾼이 노리는 것은 물질에 불과하지만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얻은 것이기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명예를 얻는다 해도 권세를 얻는다 해도 미혹을 당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셨지만, 말씀으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단들이 구원받은 자를 미혹하기 위해 교활한 말과 아첨의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세일즈 맨들은 상품을 팔기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끝까지 하는데 참고 설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설득하려고 노력하느냐는 것입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상대방을 칭찬하고 설득해서 주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분쟁을 일으킨 자들의 실체를 밝히면서 로마 성도들의 헌신과 신앙을 높이 평가합니다. 19입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로마교회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고 자신도 그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이는 바울이 로마교회를 칭찬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고 피하라고 하다가 갑자기 그들을 칭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로마교회가 지금까지 잘했던 것처럼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고 떠나라는 말에 순종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원어로 ‘악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입니다. 미련하다는 말이 일상적으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문장에서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고 떠나는 것은 악한 일에 조금도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선한 일에는 미련하고 악한 일에는 지혜롭습니다. 악한 일에 얽혀 있습니다. 종종 매스컴에 나쁜 일로 등장하는 사람 중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화천대유 사건에도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TV를 시청하는 데는 시간을 펑펑 쓰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 위해 기도하는 데는 한 시간을 아깝게 생각합니다. 밤새워 영화를 봤다는 사람은 많아도, 밤새워 성경을 읽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육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는 지대한 관심을 쏟아붓지만,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바울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같습니다. “주님,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20절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로마교회 성도들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신속하게 승리하기를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고 하면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평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상하게 하심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상하게 하신다는 것은 싸움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평강을 얻는 과정에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4-36). 무슨 말입니까?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얻기 전에 먼저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와 전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불가피합니다. 저도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가정에서 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이 되었기에 더 이상 신앙을 이유로 다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그냥 누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한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상하게 하시지만 우리가 사탄을 발로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길 수 있다고 약속하셨어도 우리가 힘써 싸우지 않으면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크게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약속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이 없습니다. 상대적 약속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주기도 하시고 이루어주시지 않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그렇지 않으면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신다는 약속을 성취하려면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한주간 사탄을 발 아래 밟으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마음껏 누리는 일들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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