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요8장 41-42절 2012.4.29

//또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요8장 41-42절 2012.4.29
또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요8장 41-42절 2012.4.292018-12-03T19:15:4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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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3일 D3행복축제’로 매주 설명회가 있기 때문에 주일 낮 설교는 이전보다 더 짧게 하겠습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 된 ‘나를 변화시키는 지저스 코칭’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82세의 노인과 52세의 아들이 거실에 마주 앉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중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얘야, 저게 뭐냐?” 그러자 아들은 다정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까마귀예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4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러자 아들이 화가 나서 큰소리를 지릅니다. “아버지, 까마귀요. 까마귀라니깐요. 그 말도 못 알아 들으세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와 아들에게 펴 보입니다. 그 일기장에는 세 살 때 자신의 아들과 이야기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까마귀라는 똑같은 대답을 23번이나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에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니 행복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연령대 별로 다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서는 모르는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은 존재로 바뀝니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세대 차이를 느껴 대화조차 하기 싫은 존재로 전락되고,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직장을 갖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좀 더 초라하고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일대 반전이 시작됩니다. 아버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가치 있는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버지는 ‘존재의 기원’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든지 아버지를 통하여 이 세상에 나오기 때문에 아버지 없는 인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모든 존재의 시작입니다. 둘째로, 아버지는 ‘가장 처음 만나는 스승’이라는 점입니다. 자식은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인생의 첫 스승이기에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7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아버지 한 사람이 교장 백 명보다 낫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존재의 기원과 인생의 첫 스승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존경심을 가졌고,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을 했습니다. 자녀에게 아버지는 거의 신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는 모두의 마음에 영웅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시대를 맞이하면서 그 권위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추락의 끝이 거의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아버지의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인생의 첫 스승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 일을 포기하여 스승의 자리를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크게 신장되어 그만큼 어머니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의 수입에만 의존했을 때는 아버지는 거의 제왕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힘이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경제권을 가진 후 자녀들의 교육문제, 집을 사고파는 일, 이사 등 집안의 대소사에 아버지는 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주로 어머니와 자녀들의 결정에 끌려고 가고 있습니다. 다음의 짤막한 글은 오늘날 아버지의 권위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0대 남자가 무서운 날은 ‘봉급날’이다. 왜냐하면 카드 결제가 많아 봉급을 받아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40대 남자가 무서운 날은 ‘월요일’이다. 왜냐하면 출근해서 책상이 없어지지 않았나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50대 남자가 무서운 날은 ‘아내가 곰국 끓인 날’이다. 왜냐하면 아내가 며칠 놀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60대 남자가 제일 무서운 날은 ‘이사 가는 날’이다. 왜냐하면 남편을 버리고 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땐 장롱 속에 숨거나 텔레비전을 꼭 안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그것을 꼭 갖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 중에 권위가 추락당하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권위는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히 동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기원(起源), 근원(根源), 조상, 창시자, 원점(原點)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만드신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디슨을 ‘발명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뉴턴을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각각 그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아버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시면 예수께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사람들이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시고 육신의 아버지와는 별도로 또 다른 아버지가 계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아버지 즉 하나님 아버지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나 ‘영의 아버지’나 모두 우리의 아버지시지만 전혀 다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무능하고 힘이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못하실 일이 전혀 없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아는 것에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지하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만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끝까지 약속을 지키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 대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1996년에 출간되어 6개월 만에 1백만 부나 팔려나가 ‘아버지 신드롬’이란 사회적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던 김정현의 장편소설 ‘아버지’에서도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식 사랑 이야기가 언제나 감동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빗나간 자식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자식이 매를 맞고 오자 조폭을 동원하여 자신도 쇠파이프로 때리고 자식에게도 때리라고 해서 한 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동적인 아버지의 사랑이야기든 빗나간 아버지의 사랑이야기든 아버지가 자식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혹 자식이 물에 빠지거나 불 속에 갇히는 등 위기상황에 처했을 경우 자신의 목숨을 던져 자식을 구원해낼 수는 있어도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자식을 위해서 대신 죽을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 넓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죄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까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행하면 될까요?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드리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누군가 대신하여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어야 합니다. 즉 죄 없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죽는 것은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또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요 1:12).

      이제 여러분의 선택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주인이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제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자만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지금 주님께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여러분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이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돈이 함께 하면 재벌이 되고, 권력이 함께 하면 세상을 다스리게 되고, 명예가 함께 하면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처럼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빗장을 젖히시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여러분은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육신의 아버지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이심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날, 저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께서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사오니 이 시간 저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주시옵소서. 남은 생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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