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눅 23장 32-43절 2018.7.29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눅 23장 32-43절 2018.7.29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눅 23장 32-43절 2018.7.292018-12-03T23:52:5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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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신 곳이 ‘십자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물에 젖은 장작더미 위에 산채로 묶여 화형을 당하는 것도 있고, 두 손과 두 발이 밧줄에 묶이고 소나 말에 매어져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짐승들의 힘에 의해 사지가 찢겨져 죽이는 처형도 있지만 이보다 더 혹독한 처형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시민은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십자가 처형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 십자가형이 가장 혹독한 형벌일까요? 다른 처형은 고통을 당하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십자가 처형은 72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다가 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72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다가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려서 오후 3시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6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당하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예수께서 왜 이렇게 혹독하게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우리가 죄로 인해 당할 형벌을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것은 저와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해골이라는 곳에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2절과 33절을 읽습니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처형 받은 사람을 ‘행악자’라고만 언급하고 있는데, 마태와 마가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강도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시 최고의 극형인 십자가 형벌을 받은 것을 보면 단순 강도가 아니라 흉악한 죄를 범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께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해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3절). 이처럼 누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해골이라고 하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골고다로 되어 있고 찬송가에는 갈보리라고도 되어 있어서 다소 혼돈스럽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누가는 해골이라고 한 것은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크라니온’을 사용했기 때문이고, 다른 복음서 기자가 골고다라고 한 것은 아람어 ‘골고다’를 음역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갈보리’라는 말이 생긴 것은 헬라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해골’을 ‘갈바리(Calvary)’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까요? 그것은 말씀의 성취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53장 12절을 읽습니다. “그리스도가 범죄자 중의 하나로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좌우편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세상 일이 사람들의 뜻대로 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흐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예언한 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것은 바울이 수천 년 전에 예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가까이 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세 사람이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다시 살아나셨고 두 강도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두 강도는 그들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은 것을 의미하고,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혼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지 수 있었지만,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4절을 읽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34절). 예수께서는 가장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장 먼저 이 기도를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황에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주시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요? 물론 그것도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복음을 몰라 지옥으로 달려가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 곧바로 천국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이 땅에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 천국에 가기까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영혼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도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도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는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기도하실 때에 그 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34절 후반절에서 37절까지 읽습니다.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본문에는 세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로, 군병들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군병들이 무엇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4절 후반절입니다.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당시 십자가 처형은 죄수의 옷을 벗긴 후에 집행되었는데, 그 죄수가 입었던 옷을 사형 집행자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요 19).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입던 옷을 나눠 갖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제비뽑은 후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유대인의 왕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주는 군병들의 모습은 누가복음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 포도주’는 당시 로마 군병들이 마시던 값싼 술이었는데, 십자가 처형이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처형을 당하는 죄수들의 고통을 약화시키기 위한 배려로 가끔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군병들이 그것을 예수님께 주기 전에 희롱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을 배려하기 위해 신포도주를 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신포도주를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만 보면 마시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막 15:23), 마태복음에는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마 27:48)로 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요 19:28-30)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신포도주를 주며”(눅 23:37)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병들이 신포도주를 사형수에게 먹인 이유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마시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신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은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을 떠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쓰러지실 때도 구경했고, 예수께서 더 이상 지고 가실 수 없게 되어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워 갈 때도 구경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도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즉 백성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동안 당하시는 고통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관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으며 저가 다른 사람을 구원했으니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조롱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어떤 조롱을 가장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조롱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얼마든지 내려오셔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내려오시면 예수님 자신은 구원하실 수 있었어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내려오라는 조롱을 끝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과 세상의 구원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구원은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힘을 죽여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서는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죽어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려면 더 죽어야 합니다. 바울도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노라”(고전 15:31)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관원들과 군병들로부터 조롱할 때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시편 22편 6-8절을 읽으면 예수께서 조롱당하실 때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말씀은 이미 오랜 전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조롱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정통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비방과 조롱을 당하실 것이라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조롱을 당하실 때에 전혀 당황하시지 않으실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에 우리가 미리 준비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과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께서 종종 제자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차 일어날 일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단지 기도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환난시대를 기도로 준비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준비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공항에 내려서 차를 타고 오던 중 과천 은혜로교회 신옥주 목사가 휴양지로 알려진 남태평양 작은 섬 피지가 ‘새 예루살렘’,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고 그곳으로 가야 환란을 피할 수 있다며,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그곳으로 신도 400을 가게 했는데 그 과정에서 집단폭행, 특수감금, 아동학대 등 11가지 혐의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경찰에게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장차 임할 환난을 미리 말씀하신 것은 이를 위해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뜻이지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일을 하면서 환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39-40절을 읽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39, 40절). 성경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회개하였고 다른 강도는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강도가 같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은 십자가를 대할 때에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기회로 삼고, 혹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고난을 당할 때에 주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41절을 읽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처럼 한 편 강도가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린 것은 자신이 당한 고통이 자신의 죄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관계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는 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습니다. 제가 3분복음메시지에서 복음을 전하기전 상대방을 죄인으로 시인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 편 강도가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자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낙원이 어디를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머무르는 ‘중간기 처소’라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따르던 예수께서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구원을 요청하는 강도에게 ‘언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까? ‘오늘’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믿으면 오늘 즉시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죽은 후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순간 얻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복음을 믿는 즉시 구원받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중차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구원입니다.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영혼을 구원하는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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