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상황의 문제가 아닙니다 창 34:30-35:5 20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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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상황의 문제가 아닙니다 창 34:30-35:5 2014.11.22018-12-03T22:34: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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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 주 ‘별미사건을 복음으로 해석하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로, 리브가와 야곱이 공모하여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복을 받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세상의 윤리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로, 에서와 야곱이 둘 다 별미를 아버지께 드렸는데 왜 야곱은 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별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별미를 만들어 드리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에서는 별미를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준비해서 자기의 이름으로 가지고 나갔지만, 야곱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을 가지고 형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와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저주 받지만 예수의 피로 자신을 가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예표한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셋째로, 야곱이 에서의 이름으로 복 받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입니다. 따라서 에서의 이름으로 복을 받으면 에서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복을 받는 것을 예표한 것으로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맛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넷째로, 왜 이삭은 야곱이 복을 가로챘다는 것을 알고도 취소하지 않고 도리어 에서를 저주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삭이 뜻한 대로 에서가 장자의 복을 받지 않고 야곱이 받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자가 차자가 되고 차자가 장자가 되는 것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장자와 차자는 바뀔 수 없어도 영적인 장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육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현재의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장차 누릴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딸 디나의 강간사건으로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땅에 있는 여자들을 보러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은 크게 분노합니다. 마침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찾아와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디나를 자부로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이 나서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누이를 줄 수 없으니 세겜 땅의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도록 해라.” 야곱의 아들들이 이렇게 제안한 것은 그들을 보복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몰은 그런 의도를 모르고 세겜 사람들을 모아 야곱의 딸과 결혼하면 자신들에게 이런저런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해서 함께 할례를 받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 후 가장 고통스러운 때를 노려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세겜의 남자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모든 물건을 노략질합니다. 야곱이 나중에 이 소식을 접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창 34:30). 이제 야곱의 가족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기상황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35장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먼저,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28장 10절-22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18절부터 22절을 까지만 읽겠습니다. 우리가 읽어서 알 수 있듯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도망가던 중 첫 날 밤을 지내다가 하나님을 만난 곳이 루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3-15).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벧엘로 올라와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지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 땅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원한 것을 이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잊지 아니했는지를 점검해서 야곱처럼 환난을 당한 후에야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말고 당하기 전에 이행해야 합니다. 저는 매달 한 번씩 첫 주일을 맞이하여 월삭금식을 해왔습니다. 어제가 11월 1일이라 금식을 해야 되는데 그냥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심도 많이 먹지 않았는데 갑자기 체해서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고생을 하면서 체한 원인이 무엇인지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떠오른 것이 월삭금식이었습니다. 저는 서원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나름대로 마음에 작정하고 한 달에 한번 월삭금식을 수년간 해왔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찾고 계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2시까지 금식 중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장막에 오르고 누가 주의 성산에 오를 수 있는가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고 지키는 자니라”(시 15:4). 주님께 서원한 것은 꼭 이행하므로 주의 성산에 오르고, 주의 장막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벧엘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5장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실 때에 반복해서 사용하신 단어가 있습니다. ‘거기’입니다. 본문에서 ‘거기’는 어디를 가리킬까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야곱은 그 장소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벧엘에서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났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만난 첫 사랑의 장소로 나아가서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야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첫 사랑을 잃어버린 채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아시고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로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리느냐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지 않으면 기쁘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에베소교회에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께 잘한 것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를 위한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미워하신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 받았는지를 아십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계 2: 4). 신앙적 행위는 있었지만 마음은 주님에게서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야곱과 에베소교회 성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과연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다른 것은 잃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는다는 것은 주님을 잃는 것이고 주님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망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이 주님께로부터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주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 드렸던 첫 사랑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자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2절 이하에 보면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환난의 때는 곧 하나님을 찾을 때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도 이렇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을 만났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대충 찾지 말고 목숨을 걸고 찾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환난을 만났을 때는 비상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실 때에 어떻게 야곱이 일언반구 없이 말씀에 즉시 순종할 수 있었을까?” 여러분은 야곱이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순종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그 답을 창세기 35장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때에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과거에 도망할 때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역시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가장 먼저 임마누엘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인생의 위기를 만납니다. 신자나 비신자나 모두 인생의 위기를 만납니다. 그런데 비신자와 신자의 위기극복의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비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은신하거나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위기의 상황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위기극복의 열쇠는 임마누엘의 확신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이 확신을 가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나 이스라엘의 군대나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었지만 골리앗이라는 적과 대치하고 있었을 때에 태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겁에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다윗은 골리앗과 맞서 싸워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물맷돌을 잘 던졌기 때문일까요? 그의 뛰어난 용맹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이나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형들에게 줄 도시락을 가지고 전쟁터에 갔는데 귀에 솔깃한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싸워 이기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주고 부모가 내야 할 세금을 모두 면제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이 나가 싸우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그를 부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보고서 너는 소년이고 블레셋 사람은 어려서부터 용사라 그와 싸워 이길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평소 하나님께서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는 위기의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 확신을 가지고 물맷돌로 그를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임마누엘의 확신을 가지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한 것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야곱은 가족과 식솔들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곧바로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먼저 가족과 식솔들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회개를 해야 할까요?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또 실제적으로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었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은 죄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도 죄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회개하는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결코 우리의 목을 곧게 세우면 안 됩니다. 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었을지라도 죄인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에 이런 마음이 없으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인격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상대방이 좋아합니다. 부부관계든, 목회자와 성도관계든, 형제관계든 교우관계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세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멀리 떨어져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그러나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사람 중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까?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죄인의 자세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가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35장 5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은 두 아들이 세겜 족속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 일로 주변 족속들이 동맹하여 공격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을 두려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면 고을들로 야곱을 두려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두려움은 단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은 단지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요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졌을 때에 처음으로 느낀 감정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후였습니다. 즉 죄를 범한 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삐뚤어질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문제를 해결 받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삶 속에서 종종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 사함을 받은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죄 문제를 해결 받았어도 그 감격과 기쁨을 잃으면 두려움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 사함을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고 삶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존 웨슬리와 모라비안 성도 간에 얽힌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가 신대륙 조지아에서 3년간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쳤지만 사역의 열매가 없자 참담한 마음으로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항해의 길은 조지아 선교현장처럼 험난했습니다. 엄청난 풍랑이 배를 덮쳐서 요나같이 깊은 풍랑 속으로 던져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위기 상황에서도 모라비안 성도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같은 주님을 믿는데 이토록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모라비안 성도들은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웨슬레는 그것을 잃은 채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것과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삶 속에서 실제로 누리는 것은 별개입니다. 죄 삶속에서 죄 사함을 받은 감격과 기쁨을 누리는 자만이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혹 이런저런 일로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므로 두려움에서 해방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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