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성탄의 주인공입니다 마1장 21-23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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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성탄의 주인공입니다 마1장 21-23 2011.12.252018-12-03T18:55: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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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축하 받아야 할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20명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으므로 자기 자식이 장차 자기 민족을 구원해주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배고프고 굶주려 있는 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빵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즉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모든 불행과 죽음의 근원이 죄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즉 근본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 받지 않으면 빵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죄입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두려움도, 고통도, 질병도, 죽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이 고생하고 저주가운데 살다가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8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아주 독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생명이 탄생하려면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남녀가 동거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임신해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이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절대로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본문에 보시면 성령께서 그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아도 여자의 몸에 생명을 잉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여자의 몸에 생명을 잉태시킬 수 없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은 하지 않았지만 임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만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아직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이 시간 한 번 생각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못하시겠는가? 사실 우리가 믿는 이런 능력도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니다.

    두번째로, 왜 하나님께서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예수님을 탄생시키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 15절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대로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남자의 후손으로 오시지 않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시면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하여 죽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첫 조상이기 때문에 그의 피를 이어 받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에 의인이시고 그분만이 의인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죄 문제만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 못지않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기 보시면 우리의 눈에 매우 익숙한 단어가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단어입니다. 21절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는데, 23절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이 나면서부터 2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이고, 다른 하나는 임마누엘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은 ‘함께’ 라는 뜻이고, ‘마누’는 ‘우리’라는 뜻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죄를 사함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단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실 때에는 연약한 인간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는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곧 새해가 오지만 2012년이 그렇게 만만한 해가 아닙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있고, 우리의 경제사정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 용서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아무리 예뻐도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는 안아주지 않습니다. 깨끗이 씻긴 후에나 안아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이 2개인데도 예수라는 이름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를 먼저 해결하신 다음에야 함께 하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호렙산에서 그를 부르실 때에 ‘네 신발을 벗으라’고하셨습니다. 온갖 더러운 곳을 밟던 신발을 벗으라는 것을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기독교 역사에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인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쓰임 받기 전,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를 가진 자와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어도 죄가 있을 때에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주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쁘다 구주오셨네”라고 아무리 외쳐도 죄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성탄절은 그냥 공휴일이지 감격과 기쁨의 날이 될 수 없습니다. 혹 지금까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몰랐는데 오늘 설교를 듣고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로 작정하신 분은 없으십니까? 잠시 우리 함께 눈을 감으시겠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이 저의 죄를 위하여 돌아기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듣고 예수께서 저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사실을 믿겠습니다.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예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서 너희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맛보고 싶으십니까?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밤이 맟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고기를 잡지 않으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수 출신의 예수께서 그에게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그는 얼마든지 예수님께 “나는 어부이고 당신은 목수인데 모르는 소리 마십시오”라고 하며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미 그물을 씻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하고 그물을 내리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이 잡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3)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가까이 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데 도와주시지 않느냐고 투덜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오히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힘들어 점점 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기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국민일보에 국내 최상류층 1%의 자산을 맡을 정도로 PB업계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메리츠증권 이재문 전무의 간증이 실렸습니다. 그는 “영업을 잘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너무 기뻐서 늘 싱글벙글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벽기도에 있다”고 하며 “기도할 때마다 아이디어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잠자는 새벽을 깨우십시오. 새벽에 하나님을 찾으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생의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구원을 가장 사모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구원은 죄로부터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장차 죽으면 천국으로 구원해주십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슴마다 예수의 피가 적셔지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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