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복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로마서 1장 1-2절 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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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복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로마서 1장 1-2절 2020.10.112020-10-11T12:08:3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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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8장 22-31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피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로마의 유대인들이 기독교가 어디를 가나 반대를 받는 것을 알고 있는 데도 바울의 사상을 알고자 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내용이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어도 우리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산다면 그들이 우리의 전도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반대하는 자들과 찬성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복음을 전하면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자들만 보고 낙심하여 복음 전도를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옮겨간다고 말할 때 이미 로마 제국에 도로가 잘 닦여져 있었고,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팍스 로마나가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복음화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자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아가라는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넷째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자 사람들을 자신에게 오도록 해서 복음을 전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닫혔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상황에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듯이 우리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로, 누가가 사도행전의 끝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고 기록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은 계속 가르치고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8장 이후를 계속 기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록할 거리가 있습니까?

     

    로마서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로마서 1장 17절 때문이었고, 어거스틴이 회심하여 바울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 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로마서 13장 13-14절 때문이었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회심의 계기가 되어 부흥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도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서문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서는 바울이 쓴 서신 13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로마서가 다른 서신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서신들은 복음이 각각의 독특한 문화권에 전해졌을 경우 발생하는 제반의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극히 부분적이고 특수 상황에 대한 제한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복음을 다룰 뿐 아니라 기독교의 전반적인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다른 서신들은 없어도 로마서만으로도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로, 바울이 왜 유독 로마서만 다른 서신서와 다르게 복음을 다루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세계의 심장이라고 하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도들을 섬긴 후에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전도자 빌립의 집에 있을 때 아가보 선지자가 결박을 당한다고 예언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어떤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복음을 로마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이 열두 제자처럼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기독교의 교리부터 윤리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열두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수제자들보다 기독교를 더 정확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 직접 그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만큼 주님을 알아가고 닮으려고 노력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 우리가 주님을 알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자신을 계시해주십니다. 제가 다수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도 궁금한 것을 주님께 계속해서 여쭙자 이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번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바울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절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작다’라는 뜻을 가진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가 ‘작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그의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외경인 바울과 테클라의 행적에 바울의 외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그런데 정말 그의 키가 작은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울인데 ‘요청되어 진’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바울이 이렇게 두 가지 이름을 가진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울이 교만한 자였는데 예수님을 믿고 겸손해져서 ‘크다’는 뜻의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작다’는 뜻의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즉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원래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사도행전 13장 이전에는 사울로 불리다가 13장 이후로는 바울로 불린 것은 그가 첫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이 두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방인 사역을 하기 전에는 사울로 불린 것이고 이방인 선교사로 헌신한 후에는 바울로 불린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먼저 종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합니다. 이는 가장 비참한 신분인 노예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당시 종은 자신의 뜻은 완전히 무시되고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습만 인간이었지 동물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렇게 살았던 종들이 약 6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의 종들’이라고 불리는 특정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런 호칭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소개한 것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종이냐에 따라 전혀 다릅니다. 황제의 종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말로는 그리스도의 종이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다음은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사도란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 말은 황제를 대신하는 자나 왕의 밀사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사’를 지칭합니다(고후 5:20). 즉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복음’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좋은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당시에도 ‘유앙겔리온’은 로마제국 전역에서 ‘좋은 소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복음’ 앞에 ‘하나님’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당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복음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황제의 복음과 하나님의 복음은 비교불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따로 떼어 두다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떼어 두셨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택정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9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를 따로 떼어놓으셨다는 것을 알고 복음을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편지 형식이 바울의 다른 서신과 형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인과 우리의 편지 쓰는 형식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먼저 수신자를 쓰고, 다음에 문안 인사와 사연을, 그리고 맨 마지막에 발신자를 씁니다. 그런데 헬라인은 가장 먼저 발신자를 그리고 다음은 수신자를, 다음은 문안 인사와 사연을 적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로마서는 바울이 쓴 서신 13개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일반 서신서의 형식으로 썼어야 합니다. 즉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1장 1절에서 먼저 발신자를 쓰고, 2-6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하고, 7절에서 수신자를 쓰고 인사말을 적었습니다. 즉 로마서 1장 1절과 7절 사이에 하나님의 복음을 넣었습니다. 우리는 헬라인의 편지 형식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형식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편지 형식에 익숙한 자들은 바울의 서신을 받고 하나님의 복음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 바울이 그들의 관심을 끌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정확히 깨닫게 하여 바울의 다음 선교지인 서바나로 보내주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실은 로마서 1523-24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이를 정확히 깨달으면 그 일에 동역하는 자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정확히 깨달으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자가 됩니다. 제가 ‘3분복음메시지’를 전 세계에 다니며 보급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2을 다시 읽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복음’이 정치적인 의미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황제는 모든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자로 받아들여졌고 황제 숭배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즉 황제가 곧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황제 흉상을 세워놓고 이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황제의 체제에 적응해야만 출세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부인하면 그런 쫓겨나야 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황제 외에 또 다른 구원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2절을 다시 읽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일반 사람들과 같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은 즉흥적이고 임시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우리의 신앙은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약성경이 모두 복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기 위해 세운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은 모두 그의 아들에 관한 것, 즉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서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지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선지서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이를 발견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성경이 열린다’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고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고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간 곳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복음의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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