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11:17-44 201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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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11:17-44 2014.8.172018-12-03T22:29: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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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자주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이라는 단어가 주로 무엇과 함께 사용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영광은 헬라어로 독사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카보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을 주어로 취하느냐, 아니면 목적어로 취하느냐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영광이 하나님을 간접 목적어로 취할 때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에 그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17:15)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영광이 하나님의 소유의 대상으로 사용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형태를 취할 때는 하나님의 임재와 나타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 왕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4)는 말씀은 성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을 믿으면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존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존재하시기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종종 보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종말적 믿음이 아니라 현재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평소에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나사로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11:21-22)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지만 지금이 아니라 종말에 가서야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르다는 지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먼 훗날에 부활할 것을 믿지만 말고 지금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즉 종말에만 부활이 있을 것을 믿지 말고 지금도 부활이 있을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이 사실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미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가고 있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시는데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하나님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있는 분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가 30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점심 양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그러자 뮬러는 평소와 똑같이 침착한 태도로 이렇게 말합니다. “평소대로 식사준비를 하시죠.” 그래서 요리사는 식당으로 가서 빵을 담을 접시를 식탁에 일렬로 놓았습니다. 30명의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30개의 접시와 물 컵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이렇게 식사준비를 끝낸 요리사는 다시 초조한 얼굴로 뮬러에게 와서 선생님, 식사시간이 15분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뮬러는 ,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요리사는 식당으로 돌아가고, 뮬러는 계속 기도를 하였습니다. 뮬러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어린이들에게 빵을 먹여 주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다시 요리사가 와서 말을 합니다. “선생님, 5분전입니다.” 그러나 뮬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요리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문 밖에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립니다. 요리사가 나가보니 빵이 가득 실린 트럭이 한 대 서 있었습니다. 식료품회사에서 고아원에 빵을 주기 위해 가져왔던 겁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가면 기적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마포구 상수동에서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2층 건물의 지하에 있었는데 건물 구조가 좀 복잡해서 지그재그로 세 번 계단을 내려가야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출입하시기에 너무 불편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새벽예배에 오시다가 발을 헛디뎌 다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매어달려 기도하자 성령께서 새롭게 문을 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건물주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였더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비가 없었습니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나중에 헌금이 들어오면 공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금이 들어올 것을 믿고 지금 공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싸게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주셨고 또 새벽기도 나오시는 타 교회 성도가 헌금을 해서 공사를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날지라도 기도하면 당장 응답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만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삶속에서 건져주시는 삶의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아는 믿음이 아니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방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다고 말씀하셨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를 펄펄 풍기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단지 주님을 아는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먼저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을 잘 알아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는 믿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잘 알면 귀신같이 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3년간 따라다녀도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었지만 귀신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그 곳에 있던 귀신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귀신이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신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머리로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면 아는 신앙을 믿는 신앙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아는 단계에 있는지 아니면 믿는 단계에 있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을 쉽게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것을 대처하는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이때에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매어달려 기도하는 사람은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문제가 일어나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하나님을 아는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알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반하우스(Barnhouse)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교회의 사모님이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부흥회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담임 목사가 반하우스 목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의 문제로 백치나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반하우스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다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828절의 약속을 기억하시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 말입니다. ‘모든 것가운데는 당신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것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담임목사는 곧장 아내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로마서 828절 말씀과 출애굽기 411절 말씀을 읽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가 태어난 것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믿읍시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그러나 곧 안정을 찾은 후, 남편이 읽어준 출애굽기 411절과 로마서 828절을 다시 읽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4:1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사모는 두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어느 덧 이 아이에 대한 소문이 병원 전체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병원에서 근무하던 전화 교환원이 우연히 사모님이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를 태어나게 하시는 복을 베푸셨어요. 우리는 그것이 어떠한 복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복이라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어요.” 그녀에게서 어떤 슬픔이나 충격 또는 실망감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 교환원은 그들의 대화에 큰 감동을 받고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다음 주일 낮 예배에 무려 70여명의 병원 직원이 그 교회를 찾아와 예배를 드렸고 그중에 30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만일 목사와 사모가 로마서 828절 말씀을 알고만 있었다면 그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묻힌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 기도를 드리실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4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예수께서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지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홍길동은 첩의 자식이라 자기 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가 집을 떠나는 날에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감사기도를 드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응답을 확신하면 얼마든지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기적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섭섭한 마음을 가지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늘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기도할 때에 더 빨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난과 슬픔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키신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50:14-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자신의 구원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보시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끝까지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셨을 때에 무덤이 돌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나사로가 이미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네가 믿으면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잠시 동안 마르다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과 마르다와의 대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사망 소식을 접하시고 그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들 모두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32)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속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좀 더 빨리 오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주님께 다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면 믿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는 기적을 행하실 수 없기에 예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을 경험하려면 상황과 상관없이 끝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적은 단 1%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어느 목사가 교회를 신축하기 위하여 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재정 형편상 싼 산비탈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는 저런 곳에 어떻게 교회를 짓느냐며, 목사님은 어쩌려고 이런 곳을 사셨나?”며 수근 거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제직회를 열고 말씀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1720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리고 이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밤이 깊도록 하나님, 이 산을 옮겨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산은커녕 흙 한 삽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지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대부분의 교인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전화가 한통 걸려 왔습니다. “여보세요! 목사님 댁입니까?” “, 제가 목사입니다만…” “아 예. 여기 전화국인데 뭣 좀 부탁을 드려볼까 하는데요, 산 몇 번지가 목사님 교회의 소유가 맞죠?” “예 그렇습니다만.” “사실은 저희 전화국을 새로 짓기 위해 땅을 샀는데 너무 낮은 곳이라 흙으로 좀 메워야 되는데, 그 산의 흙을 좀 파가도 되는지를 알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흙 값은 저희가 보상해드릴 테니 좀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흙을 옮기는 것도 큰일인데 게다가 큰 금액의 돈까지 받고 옮기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만일 그날 밤 목사님이 끝까지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까?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칠흑같이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가는 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만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보고 싶다면 단지 머리로만 알지 말고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현재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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