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에게 믿음을 배운다 대상 22장 13-16 20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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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믿음을 배운다 대상 22장 13-16 2012.1.292018-12-03T18:59: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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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한 동안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이 1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1 5:4).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수 없이 많지만 특별히 다윗의 믿음에 대하여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믿음의 사람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유언입니다. 유언보다 더 진실한 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다윗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거나 소유의 풍성함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소자본으로 창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누가 어느 대학에 합격을 했다든지, 누가 좋은 차를 타거나 좋은 집에 산다든지 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소자본으로 창업해서 돈을 많이 벌면 인생에 성공한 것일까요? 사람이 많이 모이고 교회 건물을 번듯하게 지으면 목회에 성공한 것일까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으면 정말 인생에 성공한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전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대통령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다윗처럼 성공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은 성공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1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든 규례와 법도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여기서 ‘형통’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Success’ 즉 ‘성공’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행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성공으로 이해하고 믿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리로다”에서 ‘형통’이 바로 성공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또한 여호수아 1장 8절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형통’이라는 단어도 성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가는 길이 평탄하고 성공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을 그렇게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그가 친히 성공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십대의 어린나이에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사울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드디어 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쟁터에서 블레셋 군대를 물리침으로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자 사울왕은 그의 왕 자리에 대하여 불안함을 느끼고 그를 점점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다윗이 그의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려고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상황이 역전되어 다윗이 오히려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시 105:15).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들을 인간이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 왕이 비록 자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을 죽일 기회를 놓치면 자신이 도리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그를 죽이면 도망 다니는 신세에서 벗어나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그를 죽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블레셋 전투에서 스스로 죽게 하시고 다윗을 그 나라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그가 사울 왕을 제거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삶속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인생에 성공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아무렇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만이 성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선택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결론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겉으로 볼 때에 성공한 것 같지만 실패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실패한 것이 보여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공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다윗처럼 말씀대로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믿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더욱 더 헌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윗이 여호와의 전 건축을 위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드린 금액이 오늘날 화폐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지를 제가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금 한 달란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하루 노동자의 품삯을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금값만 약 60조 원입니다. 그러니 은과 놋과 철과 재목과 돌까지 합하면 그가 다 준비한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학자는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데 1달러당 1,000원으로 계산할 경우 약 330조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떠한 상황에서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환난 중에’입니다. 저는 이 ‘환난 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위해 NIV영어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 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은 ‘환난 중에서’를 ‘큰 고통을 겪은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I have taken great pains to provide for the temple of the Lord).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쓸 것을 다 쓰고 남는 것으로는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나님께 먼저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데 어떻게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리며 헌신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반대로 “여유가 있으면 헌신할 수 있을까요?” 헌신은 소유와 여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제가 총각 전도사 때에 한 달 사례비를 12만 원을 받았습니다. 돈이 생길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100만 원 건축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부서 담당 부장집사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더니 “전도사님!,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책 사는데 쓰세요”라며 돈을 주셨는데 50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사례비 중에서 아껴서 저금한 돈을 합해서 작정한 헌금을 그 해에 모두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인천 낙원제일교회를 담임하는 분이 최병현 목사님입니다. 그분이 교회를 건축하는데 헌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1억 원을 작정하면서 저의 장인이신 전석도 목사님처럼 부흥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헌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소문을 들은 다른 교회 성도가 5천만 원을 주면서 헌금을 드리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5천만 원은 그 교회 성도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보상금을 받았다고 하며 건축헌금을 드리라고 주더랍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헌금을 드리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극심한 기근 속에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자기 아들과 먹고 죽으려고 남겨놓은 마지막 떡과 기름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드렸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항상 기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약 20년 전, 분당에서 목회할 때에 1억 5천만 원의 빚을 진 상태에서 IMF를 맞이했고,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웠지만 믿음으로 매달 100만 원씩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불과 3년 만에 진 빚을 다 갚게 하셨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씨앗을 먹지 않고 그 씨앗을 뿌립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가을에 곡식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 믿음으로 심으면 때가 되면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믿음으로 사심으로 때가 되었을 때에 상상을 초월하는 열매를 거두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다윗은 자신보다 자식이 더 신앙생활을 잘하기를 바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14절을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특별히 끝부분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다윗은 그토록 성전건축을 위하여 많이 준비하였으나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는 더욱 더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들에게 더 준비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고생한 것보다 더 고생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이 애비가 다 준비했으니 너는 고생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준비한 것보다 아들에게 더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왜 다윗이 그렇게 했을까요? 다윗은 자기보다 아들이 더 믿음으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헌신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은 고생하더라도 자식만큼은 많이 공부를 시켜서 세상적으로 출세를 시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자녀들이 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사는 자만이 이 세상을 이기고 영원한 성공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이 세상에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을 철저히 믿음으로 무장시키지 못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그리스도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그들이 출애굽 할 때에 홍해 바다를 건너고 온갖 기적을 다 경험했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신앙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아도 초대교회성도들의 믿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믿음의 성장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여기서 “일어나 일하라”는 말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입니다. 즉 신앙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주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주의 일을 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부활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약속하셨습니까?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하시기 전 그들에게 무엇을 부탁하셨습니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을 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하자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와 함께 하심으로 결국 성전을 완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일하는 종교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게으름과 나태함과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벗어버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셔서 우리의 자녀와 직장과 생업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지만 그의 생애는 온갖 고난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난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으로 살면 다윗처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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