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러야 할 노래가 있습니다. 시23:1-6 201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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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 안에는 서바이벌 키트라고 불리는 생존 장비가 실려 있었습니다. 이 생존 장비에는 혹 전투기가 적진 한가운데에 추락했을 때에 조종사가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지도, 나침반, 비상식량, 권총 등 100여 가지의 물품들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물품들 가운데는 카드 한 장이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그 카드는 어떤 카드였을까요? 혹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였을까요? 아니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도박카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 카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말씀카드였습니다. 그런데 그 카드에 적힌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쓴 시로서 신구약 66권 1189장의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든 성도들이 시편 23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암송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영국에 ‘프레드릭 마이어’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금세기 전반 영국에서 성경을 가장 영향력 있게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70여 권의 저술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하여 술집 500개를 닫게 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도 한때 깊은 좌절과 절망 속에 빠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는지 아십니까? 시편 23편을 읽는 가운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무려 20년 동안이나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하루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학생시절 역도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십수년을 고생을 했는데 시편 23편을 하루 25번씩 암송하다가 치료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혹자는 시편 23편을 ‘지팡이 시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팡이는 사람이 쓰러졌을 때에 짚고 일어서는데 큰 도움을 주듯이, 시편 23편은 거칠고 험한 인생길을 가다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짚고 일어설 수 있도록 지팡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혹 이런저런 문제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시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가 정확히 언제 쓰여졌는지 모르지만 다윗이 표현한 단어들을 보면 아마도 환난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평안한 어느 때, 인생도 살만큼 살았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노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주 짧고 간결하지만, 모자람이 없고 풍성함이 넘치는 시입니다.

      먼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양치는 목동에서 골리앗 장군을 쓰러뜨림으로 한 순간에 사울왕의 사위가 되어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의 인생길은 가시밭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전쟁에 승리하므로 그의 인기가 점점 더해가자 사울왕은 다윗을 사위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왕위를 찬탈할 원수로 생각하여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타오르는 질투와 시기의 불길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조그마한 나라에서 다윗을 죽이려고 13년 동안이나 이를 잡듯이 추격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미친 체까지 하며 적국에 가서 피신을 하기도 하였고, 도망을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 제사장만이 먹는 진설병을 먹은 일로 아무런 죄 없는 85명의 제사장 일가를 참살 당하게 하는 아픔을 맞기도 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제사장이 85명이나 죽었고 제사장이 살던 곳의 남녀와 아이와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까지 칼로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한 마디로 다윗의 생애는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과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과의 관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혹자는 단지 주일날만 와서 예배를 드리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각종 예배는 드리지만 실제의 삶속에서는 그분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혹자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그분께 아뢰고 그분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어떤지 아십니까?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어려운 과정을 많이 겪었지만 주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자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양은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가듯이, 삶속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8-10)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삶속에서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사랑을 맛보며 살기 때문에 다윗과 같이 늘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4절). 이스라엘에는 실제로 ‘죽음의 그늘’이라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아주 가파르고 깊으며 좁은 협곡입니다. 정오에만 해가 바닥까지 비췰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밑바닥이 캄캄합니다. 다윗은 목자로서 아마도 이 골짜기를 통해 양들을 인도한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목자들이 양들을 데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골짜기를 통과해야할까요? 그것은 새로운 초장으로 옮겨야 늘 풍성한 꼴을 먹일 수 있는데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새로운 초장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고 있듯이, 목자의 최대 관심은 양으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양이 풍성한 꼴을 먹기 위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듯이, 우리가 풍성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골짜기라는 연단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골짜기를 통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짜기는 폭이 매우 좁기 때문에 건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단지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고 고통이 수반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통과하는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도 매우 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기간이 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을 날아가는 화살에 비유합니다. 왜 인생을 날아가는 화살에 비유합니까?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 빠름 속에는 행복도 고난도 포함됩니다. 행복도 고난도 지나가는 것이고 잠시 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둘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실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할 때는 태양 빛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태양이 없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더욱 더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어려운 시기를 혼자 걷게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골짜기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라고 고백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목자와 양이 그려진 그림에서 예수님 같은 사람이 지팡이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을 치는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중에 지팡이는 양들을 인도하는데 사용하고 막대기는 양을 보호하는데 사용합니다. ‘지팡이’는 우리가 알다시피 길고 가늘며 손잡이 끝은 낚시 바늘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 양들이 흩어지려고 할 때에 지팡이로 양의 목을 걸어서 어미 양들에게 몰아주기도 하고, 목자 곁으로 양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목자가 지팡이를 양들의 옆구리에 살짝 갖다가 대기만 해도 양들은 목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주의 지팡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우리의 방향을 제시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막대기는 양을 습격하는 맹수들을 방어(guard)하는 데 사용합니다. 목자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으면 양들은 위안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자의 손에 들려진 막대기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괴롭히는 뱀을 때려잡거나, 들개나 맹수들을 쫓아버리거나, 사자와 곰을 물리칠 때에 막대기를 사용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였습니다.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골리앗 앞에 서자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주의 막대기’는 무엇입니까? 그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적 마귀와 싸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귀의 공격을 받으셨을 때에 무엇으로 물리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넷째로, 준비하신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상’이라는 단어는 ‘펼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잔칫상을 차려준다는 것은 그저 평범한 식사가 아니라 엄청난 만찬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코스별로 우리 앞에 차려주십니다. 그런데 이 만찬에 초청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각각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 한 사람씩 초대하셔서 만찬을 대하실 때에 이 광경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원수들입니다. 그런데 ‘원수’는 누구일까요? 종국적으로는 마귀를 가리키지만 이 세상에서 사탄에게 조종을 받아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과 생각과 뜻이 달라서 미워하는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원수’가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뜻과 생각이 달라서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실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생각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을지라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나는 하나님이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실는지 모르나, 나의 인도자가 누구신지는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다윗처럼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해야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노래해야 하고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노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입만 열면 불러야 할 노래인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심으로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만족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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