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바꿀 수 있을까? 역대상 4장 1-10절 2013.1.20

//내 운명은 바꿀 수 있을까? 역대상 4장 1-10절 2013.1.20
내 운명은 바꿀 수 있을까? 역대상 4장 1-10절 2013.1.202018-12-03T20:20: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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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운명(運命)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운명의 뜻 자체로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운명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의 관심은 운명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냐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느냐, 없으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이 “나의 운명을 바뀔 수 있을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본문에 등장하는 야베스를 통하여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앞뒤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역대상 1장부터 9장까지 무려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약 40여 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고 단지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에 대해서만큼은 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야베스에 대해서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을까요?  다시 한 번 9-10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 4:9).

      야베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습니다. 야베스는 ‘그가 괴롭힌다. 그가 슬픔을 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야베스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왜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는 뜻을 가진 야베스라고 지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아버지가 없이 이 세상에 나와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준 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자식의 이름을 짓는데 어머니가 지은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없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야베스는 유복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유대전승에는 야베스가 난산을 통해 장애자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야베스는 태어나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자였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없으면 자식 키우기가 힘든데 당시 여자는 특별한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아비 없이 자식을 낳고 길러야 하는 어미의 마음은 심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야베스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입든지 이런저런 일로 부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 딸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질 못해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남편은 실직하여 집에만 있고, 유일한 생계수단인 한복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들도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는데 여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등 지속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자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유서에 이런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네. 너무 힘이 들어 날아가고 싶다. 애들아 미안하다” 이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의로 많습니다. 이번에 야구천재 조성민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전 아내였던 최진실씨도 그렇게 생을 마감했고, 처남인 최진영씨도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실 이미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조성민씨와 최진실씨가 낳은 두 자녀의 운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환희는 이제 12살이고, 준희는 10살입니다. 아이들이 받은 상처와 장차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모의 죽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비신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야베스’가 어떻게 바뀌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가 귀중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고통으로 시작된 그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야베스’를 떠올리면 ‘축복을 받은 자’를 연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야베스’를 떠올리면 먼저 ‘기도로 운명을 바꾼 자’를 떠올려야 합니다.

      어떻게 평생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줄 자로 생각했던 야베스가 다른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되었을까요? 즉 어떻게 야베스의 운명이 바뀌었을까요? 우연히 바뀌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살다보니 자동적으로 바뀌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0절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뢰어”란 말은 히브리어로 “카라”로서 “크게 부르짖다”라는 뜻입니다. 즉 야베스가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자 그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성경은 우리가 기도하면 운명이 바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몸종에게 조차 무시를 당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무엘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로 인하여 한나의 뿔이 높아졌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 38: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하자 15년이나 더 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곧 죽을 운명이 15년이나 더 사는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은 고 이민아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녀는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입니다. 그녀는 김한길 의원과 결혼했지만 이혼했고 이혼 후 갑상선 암(癌) 선고를 받았고, 다섯 살 아이는 특수자폐 판정을 받았습니다. 또 그녀는 실명(失明)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고, 가장 사랑했던 맏아들 유진군은 스물다섯 꽃 같은 나이에 돌연사를 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 후 30년을 살면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영원히 무신론자일 것 같았던 아버지 이어령씨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기 까지의 과정과 그의 후의 삶을 펴낸 것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민아씨는 결국 검사직을 사임하고 목사가 되어 아프리카, 미국, 중국 등을 돌아다니며 청소년 구제활동을 왕성하게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지병인 암으로 작년에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대상의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운명을 바꾼 야베스의 기도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기도했기에 구한 것을 모두 응답 받았을까요?

      첫째로,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는 소원을 아뢰기 전, “주께서 복을 주시려거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려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고 싶어하지만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심을 믿으면 주님께 매어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뭔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을 때에 왜 부모에게 매어달립니까? 그것은 부모만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얍복나루터에서 야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은 일로 고향을 떠나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가서 20년간 풍찬노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로 말하면 재벌이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려고 하는 데 소문에 듣자하니 자기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를 찾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야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형이 자기를 죽이면 지금까지 고생해서 벌은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꾀를 냈습니다. 자기의 종과 아내를 네 떼로 나누고 자기는 맨 뒤에서 얍복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야곱이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한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야곱이 밤새도록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하시지 않으면 자기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던 에서의 마음을 바꾸어주셔서 오히려 자신을 돕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해야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1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여기서 ‘지역’이란 땅의 경계를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을 각 지파들에게 분배하고 지파들은 족속들에게 분배했습니다. 야베스의 집안도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분배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여호수아에게 받은 그 땅에 만족하지 않고 믿음으로 더 넓혀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인생의 지경을 넓히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넓히려고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시 81:10-11)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만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거에 미국으로 이민을 갈 때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야채와 생선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세탁소에 일을 해도 자녀 교육은 최고로 시켰고, 몸은 고단해도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뭐라고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야베스처럼 인생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지금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강영욱 박사 같은 사람은 시각장애인이지만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차관보까지 올랐습니다. 왜 21일부터 25일까지 야베스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까? 인생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간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함께 모여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가 넓혀주시도록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과 마음의 영역’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시고 높은 생각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영역도 넓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사람은 용서한만큼 인생을 폭넓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이 세상을 넓게 사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세상이 새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난과 근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난 중에 있을지라도 운명적으로 맞이하지 말고 그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야베스가 당한 환난과 근심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난과 근심을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께 구하면 환난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구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이나 걱정꺼리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싸인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재앙은 나를 찾으라는 것인 줄 알고 전심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환난과 근심꺼리를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걱정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운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이 누구의 손에 달려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하신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면 운명이 바뀝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비밀 병기입니다. 배경이 없음을 탓하지 마십시오. 조상과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돈이 없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야베스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야베스처럼 기도하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 있을 야베스신년축복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새일을 경험하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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