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에 앉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눅14:7-11절 201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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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에 앉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눅14:7-11절 2017.5.282018-12-03T23:27: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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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우리가 초청을 받았을 때에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어떤 상황에서 말씀하셨습니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7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택하시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청한 받은 사람’이라고 하시지 않고 ‘청함을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청을 받은 자들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는 하나인데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청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앞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맨 앞에 앉는지를 주목합니다. 즉 누가 상석에 앉고 말석에 앉는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석에 가서 앉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잔치에 초대를 받아왔지만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초청을 받은 사람도 자신이 말석에 앉는다면 하찮게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말석에 앉으면 사람이 예상보다 많이 올 경우 음식이 모자라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받을 경우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은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누구나 대우를 받고 인정받고 싶어 할까요? 그것은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의 모든 실과는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후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최고가 되고 싶어 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의 정도만 다를 뿐 한 사람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교만하기 때문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높이기 때문에 다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순간은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평안은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났지만 참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낮아진 마음’을 갖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는 ‘높아진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입니다. 최상과 최고를 추구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는 곳에 만족이 있고 그곳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부탄은 인구가 75만 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국민소득은 2017년 현재 일인당 2,900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수십 배로 잘 살지만 행복지수가 세계 80위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족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높은 자리를 선택하려는 것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8-9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시면서 높은 자리를 선택하면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 끝자리로 밀려나게 되어 부끄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를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이유는 높은 자리에 앉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만 도리어 낮아지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잔치에 가면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우를 받아야 할 곳에 갔을지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광을 얻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하기 원치 않는다면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낮은 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청함을 받았을 때는 어느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까? 10절입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동시에 말씀하셨습니다. 낮은 자리를 선택하는 자가 도리어 영광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낮은 자리를 선택하는데 영광을 얻게 될까요? 잔치에 청한 자가 “벗이여 올라 앉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낮은 자리를 선택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가 나서 도망을 갔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백성의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옥살이를 하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서 옥살이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8째 아들 중 막내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번에 김동연씨가 판잣집 아들로 태어나 상고 출신으로 경제부총리가 되었다고 지난 주 매스컴이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에 제자교회 목사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김동연경제부총리 내정자를 아느냐” 알아보니 저보다 덕수상고 1년 선배였습니다. 그가 노무현 정부시절 차관까지 지냈지만 이번에 경제부통리가 된 것은 하나님께 그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작년에 서울영동교회에 680만원 헌금을 드린 그리스도인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6-7절). 이것을 알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는 ‘높은 자리’와 ‘끝자리’밖에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뮤지컬이나 쇼를 하는 공연석에는 일반적으로는 다섯 등급이 있습니다. R(royal), G(good or great), S(special), A(average), B(base)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 등급만 말씀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와 끝자리입니다. 왜 주님께서 두 자리만 말씀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밖에 선택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 밖에는 선택할 것이 없습니다. 높은 자리를 선택하든 끝자리를 선택하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를 선택할 경우는 부끄러움 당하기에 반드시 끝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므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낮아질 때에 주님께서 높이셔서 앉게 하신 자리는 영원합니다. 즉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순간이고 영광을 누리는 시간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잠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영원히 앉아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잠시 동안은 부러움을 사도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길을 선택하지 말고, 잠시 동안은 부끄러움을 당해도 영원히 영광을 누리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1절을 읽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높아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낮아져야 높아지고 죽어야 삽니다. 따라서 정말 높아지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누구나 아담의 후손으로 나면서부터 높아지고 싶은 본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낮아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일에 본을 보여주신 주님을 날마다 묵상하고 따르면 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날마다 죽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세상에 성공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했을까요? 자신이 날마다 죽지 않으면 자신이 행한 일로 교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은 아는 만큼, 행한 만큼, 드린 만큼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을 묵상하고 자신을 부인할 뿐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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