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십니까 행 5:42절 201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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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십니까 행 5:42절 2015.5.102018-12-03T22:48: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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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한 마디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무려 530회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이고, 그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 그리고 그 구원을 받은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동신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할 때였습니다. 거의 일년 동안 매주 토요일 오전에 김정현 집사에게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그 때에 김정현 집사가 한 말 중에서 아직도 저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한양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30개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뭔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수없이 탐색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그것에 목숨을 겁니다.” 저는 그런 태도가 김정현 집사가 사업에 성공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은 김정현 집사뿐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목숨을 걸고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성공은 일시적이지만 구원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을 아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국어사전은 구원을 ‘위험이나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이란 일반적으로 각종 어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일반적인 구원의 개념과 전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의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질병이나 각종 문제 등 어려운 상황에서 건짐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씀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구원은 죄 문제로부터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이처럼 예수라는 이름이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므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구원은 죄에서 해방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이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또한 현재 짓고 있는 죄와 장차 지을 죄까지 다 사함 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은 구원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을 행해야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의 착한 행실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첫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선을 행해도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남자가 화장을 한다고 여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새로운 길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행위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행위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우리가 믿는 것을 통하여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담의 후손으로 오시지 않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시므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시기 위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의인이 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자꾸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유혹합니다. 기회만 나면 우리 로 하여금 자신의 의를 의지하게 합니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고 죄 문제를 해결받아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치 못하는 이유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마귀가 그 어떤 공격을 해 와도 이것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코 행위구원론에 솔깃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 믿음교회 아무개 목사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을 펴낸 것입니다. 어떤 자를 크리스천이라고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를 따라가는 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죄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이 어떻게 지옥에 갈 수 있겠습니까?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크리스천 흉내를 내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복음을 믿지 않거나,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그 마음에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말 중에서 “선행은 구원의 증표는 될 수 있어도 구원의 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행함과 구원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주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방금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세월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구원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행위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 알았지 구원의 증표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거듭난 증표가 없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믿음가운데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단지 죄에서 해방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을 ‘경험적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경험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됩니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것에 만족해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아프면 웁니다. 부모는 아이가 울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문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 문제를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즉 갓난아이가 울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듯이 그리스도인은 기도로 모든 문제를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까? 혹 질병입니까? 혹 물질입니까? 혹 불투명한 미래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각종 문제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0).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단지 죄에서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삶 속에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쇠사슬과 차꼬에 묶인 베드로를 건져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들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핍박이 본격적으로 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비록 성령충만을 받았지만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핍박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십니까? 간절히 기도함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두려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져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라”(행 5:42).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께서 구원자라고 가르치고 또 그것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가르치고 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날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전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가르치는 것과 전하는 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우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가르치는데 초대교회 성도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날마다’ 가르쳤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면 우리도 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고 날마다 가르치면 먼저 자신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날마다 세상으로 나가 담대히 예수께서 구원자이시라고 전하였던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가르침으로 먼저 삶 속에서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날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제가 평신도사역을 강하게 주창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목회자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삶 속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왜 3분복음스피치를 매주 발표하게 합니까? 혹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지 못해도 자신이 스스로 암송하는 과정을 통하여 구원을 경험하므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교리적으로만 알지 말고 그것을 반복하여 말하므로 삶속에서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즉 예배당 안에서 단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삶속에서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누리고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선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종말적 구원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신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하고 종말적 구원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즉 구원 받은 자로서 이 세상에서 구원을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천국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 크리스천에게 심각한 위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천국의 존재를 믿지만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천국에 대한 설교가 강단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지만 종말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페이스북으로 ‘자유사상가가 다녀온 천국과 지옥’을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댓글에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이 땅에 지상 천국을 이룩하는 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잠언 2장 21-22절 말씀에 근거합니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그러나 이 말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이 세상에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주장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이 친히 천국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고 준비가 다 되면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따라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우리에게 상 주실 것을 바라보며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말씀드린 세 가지 구원과 각각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이미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까? 삶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까? 종말에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첫 번째 질문과 세 번째 질문에는 거의 모든 분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 즉,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에 대한 확신은 가지고 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삶 속에서 날마다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본문의 말씀대로 날마다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심을 믿고 그것을 가르치고 전파할 때에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날마다 삶속에서 구원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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