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축복하는 자로 살꺼야 창 47:7-10절 201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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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축복하는 자로 살꺼야 창 47:7-10절 2013.2.102018-12-03T20:22: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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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날, 주님께 엎드려 경배드리시는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실 오늘 무슨 설교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주일이지만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난 축복하는 자로 살꺼야!”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설날을 앞두고 수십 번 설교했지만 축복을 주제로 설교한 적은 없습니다. 그와 비슷한 설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설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축복에 관한 말씀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설날에 서로 나누는 덕담에 대해 생각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설날에 세배를 드리고 나서 의례히 덕담을 나눕니다. 그런데 덕담의 내용이 주로 무엇이죠? 좋은 일을 축하하거나 새해를 맞아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덕담은 상대방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 첫날부터 상대방을 축복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을 맞이하여 ‘난 축복하는 자로 살꺼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금년엔 야베스의 복을 꼭 받으세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한 마디로 야곱이 바로 왕을 만나 대화를 나눈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을 만나서 대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왕을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만나자 마자 축복했고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때에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으로 야곱보다 바로 왕이 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그 당시 최대 강국인 애굽의 왕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아들 요셉의 덕분에 그 나라에 잠시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은 바로 왕을 축복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야곱이 어떻게 바로 왕을 축복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진짜 복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말속에서 알 수 있듯이 야곱은 한 마디로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팥죽사건으로 형 에서가 죽이려고 하자 부모의 곁을 떠나 20년간 타향살이를 했습니다. 그에게 타향살이 20년은 ‘풍찬노숙’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신을 죽이러 오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세겜 땅에서는 딸 디나가 하물의 아들인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 고향으로 오던 중에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야만 했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한 마디로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즉 세상적으로 볼 때 야곱은 축복과는 무관한 자처럼 살았습니다. 반면에 바로 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의 왕으로서 권력과 부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 왕을 축복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을 받으라고 축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복을 받으라고 축복했을까요? 신령한 복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산다 할지라도 그들을 축복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 그들이 영적인 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무리 잘 살아도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그들을 축복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번 명절에 부모님도 뵙고, 자녀들도 만나고, 형제 자매도 만나고, 일가친척도 만날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세상적으로 여러분보다 잘나가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결코 그들 앞에서 기죽지 마시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의 자녀가 세상적으로는 잘 나가지만 영적으로 죽어있다면 이번 명절을 기해서 담대히 복음을 말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강권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우리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이 많거나 권력이 높은 사람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제가 총신대학교 신학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할 때에 아주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100위 안으로 들 정도로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분도 내외가 각각 벤츠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양수리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분이 저를 목사로 소개했는데도 지난 주에 절에 다녀왔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생각을 갖고 만났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그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생각이 들자 불쌍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던 중 화제를 바꾸어서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 중에 소망교회와 사랑의교회와 광림교회에 다니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자꾸 예수를 믿으라고 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교회에 나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면 자신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축복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는 한센씨 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 고침 받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계집아이’입니다. 그 계집아이는 성경에 이름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천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계집아이가 어떻게 나아만 장군을 엘리사에게 소개할 수 있었습니까? 나아만 장군이 아람나라를 구원한 위대한 장군이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는 나아만 장군과 같은 영적 문둥병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경제적으로는 부요하고, 사회적으로는 신분이 높고,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비신자들의 영적 실체를 알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세상의 영광은 잠깐이고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로 왕에게 자신이 130년 산 것을 ‘나그네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인생의 덧없음을 실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은 잠시 애굽 땅에 와서 살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산다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바로 왕이 다스리는 애굽 나라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곧 무너지지만, 장차 자신이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작품 가운데 ‘신의 도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22권으로 된 명작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지만 이 세상나라는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신의도성을 쓴 것은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인 로마제국이 야만족인 게르만족이 휘두르는 칼과 도끼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 나라는 멸망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찬란하다 할지라도 지나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온전히 깨달을 때에 야곱처럼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설을 맞이하면 여기저기 흩어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고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숨결이 묻어있는 고향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개발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부터도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사리가 제 고향입니다. 제가 태어난 집이 현재 김인중 목사님이 시무하는 안산동산교회입니다.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지도 않고 그곳을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형님집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돌아갈 고향은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고향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한 것처럼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들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천국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오직 이 세상에서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입으로는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영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어가 산란기가 되면 바다에서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자라는 것을 알고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오를 때에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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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당시 기근을 만나 애굽에 가서 빌어먹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그렇게 알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 요셉을 불러 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 48:15).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출생부터 지금까지 기르셨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낳고 기릅니까? 부모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을 달리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존귀한 자라고 생각하면 고상하게 행동을 하지만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자라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행동을 합니다. 야곱은 비록 애굽에 와서 바로 왕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빌어먹는 자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왕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내세울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면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교회에 잘나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헌금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또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의 어떤 집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으로부터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자신감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 그분의 눈에 우리 교회 성도들이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비춰졌을까요? 아마도 우리교회의 성도님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당시 그들은 로마제국의 귀족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로마귀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충만하여 담대히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면 세상에 아무 것도 겁날 것이 없고 무서워 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기분상으로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양육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책임을 지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 생애를 책임을 져주시는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둘째로, 재산상속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재산상속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아도 죽으면 가지고 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울 자리만 차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을 상속받아 그곳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신할 때 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들을 축복할 수 있고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동안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불행한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는 일이 잘 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잠시 성공하고 실패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왕 노릇을 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들을 만나면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축복을 구하는 자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축복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하기로 굳게 결심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기와 새 힘을 솟구칠 것입니다. 야곱이 당대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 바로 왕을 축복한 것처럼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들을 당당히 축복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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