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막10장 46-52 201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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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막10장 46-52 2014.2.232018-12-03T21:14:3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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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뜬 기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떴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 과정을 아주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바디매오가 눈을 뜨는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을까요? 그것은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은 바디매오만의 특허물이 아니라 누구든지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적은 상식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기적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다면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위에 세워지는 신앙의 집도 기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스라엘백성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적은 출애굽사건입니다. 즉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해방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방이 되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은 그들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누가 외부로부터 와서 구원해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출애굽으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광야로 들어와서는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는 등 수없이 많은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적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소경 바디매오는 길가에서 구걸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곁을 지나가신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은 경멸, 가지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한 것은 별로 좋은 의미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고 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어떤 분이십니까? ‘나사렛 예수이십니까? 아니면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이십니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가 기적을 만들기도 하고 못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단순히 4대성인이나 훌륭하신 분이나 사랑이 많으신 분 정도로 믿으면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때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께서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해주실 뿐 아니라, 현재 겪고 있는 모든 문제에서 능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구원자로 믿으심으로 기적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가 어떻게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즉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온갖 고통과 불행에서 건져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가 길에서 구걸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5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소경 바디매오 안에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오신다고 말씀하신 메시아이심에 틀림없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면 내 눈을 뜰 수 있어!” 그렇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들으면 예수께서 구원자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10:17).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하지만 예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실제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결코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믿을 수 없습니다.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음식을 취하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듯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목사 장로 권사의 직분을 받았어도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하십니까? 죄송하지만 주일날 한 번 듣는 말씀만으로는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욥은 하루 세끼 밥은 먹지 않아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겠다고 했습니다(23:12). 단 한 장이라도 날마다 성경을 읽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서 예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믿게 되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고 그가 누구신지를 알자 그에게 한 가지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평생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디매오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기 전부터 고침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방법을 동원해도 눈을 뜰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고 누구신지를 알자 다시 소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해결하시지 못할 문제가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뿌리는 꿈과 소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적을 맛보기 원한다면 잃었던 꿈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꿈을 꾸지 않으면 기적의 주인공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망이나 꿈을 이야기한다면 요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17세에 장차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상황은 꿈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꿈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소치 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목에 메달을 건다는 것은 그 종목에서는 세계에서 3위안에 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기적의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까? 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꿈을 꾸고 계속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특수부대 중에 거카사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네팔 출신의 거카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 번은 2차 세계대전 때에 미얀마 전투에 이 부대가 투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투를 하다가 그만 한 병사가 대열에서 낙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2,000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아군의 진지로 돌아왔습니다. 대원들이 깜짝 놀라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정글을 헤매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를 보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도 한 장을 꺼내들었는데 그 지도는 정글의 지도가 아니라 런던시내의 관광지도였습니다. 그 병사는 그 관광지도를 보고 꿈과 소망을 가졌고 사선을 넘어 아군진지로 돌아온 것입니다. 기적은 꿈을 잃지 않는 자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꿈꾸는 대로 되어집니다. 혹 이런 저런 일로 꿈과 소망을 잃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께서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잃어버렸던 소망과 꿈을 다시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꿈을 꿀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인본주의 꿈을 꾸면 안 됩니다. 인본주의 꿈은 자신이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본주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의 꿈과 소망을 이루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신본주의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예수께서 도와주시면 두 눈을 뜰 수 있다고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간 종노릇하다가 해방이 된 것도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장애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을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외침을 들은 주변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10:48).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바디매오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장애물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바디매오가 이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눈을 뜨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문제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장애물 앞에서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앞에 항복하느냐, 뛰어넘느냐 입니다. 성공하는 자들은 모두 장애를 뛰어넘었습니다. 기적은 성공을 뜻합니다. 기적을 맛보려면 반드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하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장애물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힘과 용기를 얻으셔서 그 장애물을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물을 파서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암반입니다. 암반을 뚫기 전까지는 아무리 물이 나와도 그것은 마실 수 없는 건수에 불과합니다.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암반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번에 소치 올림픽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람은 안현수입니다. 안현수가 삼관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무릎을 다쳐서 1년에 4번이나 수술을 받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하는 불운의 상황에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강영우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소경이었지만 장애를 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맹인 박사학위를 가졌고 미국 교육부차관보에 올랐으며 세계 100대 인물 중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둘인데 큰 아들 진석이는 의사로, 작은 아들 진영이는 변호사로 키웠습니다. 그가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인도 거둘 수 없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장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강우영 박사의 첫째 아들인 진석이가 네 살 때였습니다. 큰 아들에게 식사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이 하더랍니다. 아버지가 눈을 떠서 야구도 하고, 운전도 하고, 세발자전거 타는 것도 가르쳐 줄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버지가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맹인은 능력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성장하면서 맹인 아버지를 무시하고 피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강 박사는 아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 줄지를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진석아, 야구, 운전,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주는 것은 눈뜬 엄마가 더 잘하지만, 눈먼 아빠가 더 잘하는 것들이 있단다.” 그러자 진석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빠, 그게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불을 끄면 아무 책도 읽어줄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아빠는 네가 잠들기 전에 불을 꺼도 성경이야기나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잖아.” 강 박사의 이 한 마디에 진석이는 아빠의 실명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진석이에게 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사랑하는 주님, 눈뜬 아빠를 가지고 싶어요.’라고 기도를 하더랍니다. 이런 기도를 듣는 강 박사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우영 박사는 어린 아들의 기도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눈을 다쳐 차츰 차츰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의사들은 고쳐보려고 무척 애를 썼단다. 그것 때문에 2년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 하지만 결국은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단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진석이가 커서 의사가 될 쯤에는, 의학이 더 발달되어 아빠의 눈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랬더니 열심히 듣고 있던 아들이 아빠, 그럼 내가 커서 안과의사가 되어서 고쳐 줄게요. 그때까지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진석이는 안과 의사가 되기로 꿈을 꾸었고 세월이 흘러 결국은 안과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장애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장애물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앞에 장애를 허락하시는 것은 그 장애를 뛰어넘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공과 장애는 비례합니다. 얻어야 할 것이 크면 클수록 이에 대한 장애도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 앞에서 주저앉지 말고 장애 보다 큰 성공이 있음을 믿고 끝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때를 놓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께서 자신의 곁을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간청한 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소경 바디매오의 곁을 지나가실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범사에 때가 있듯이 기도도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가 기도할 때인가요? 생각지 않은 일이 발생한 때입니다. 물론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에 늘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영혼의 호흡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더욱 더 간절히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환난을 만난 때가 간구할 때인 것입니다. 왜 인생의 환난을 만난 때가 특별히 간구할 때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더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다른 점인 것입니다. 사람은 잘 나갈 때에 가까이 합니다. 금년에도 6월에 지자체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 당선이 되어야 여기저기서 찾아와서 인사를 하지 떨어지면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정 반대입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 더욱 더 가까이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로 힘들어하십니까?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려고 하십니까? 환난 날에 우리를 도와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또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사람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큰 도움이 되십니다. 혹 여러분 중에 당장 어려움이 없다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다가올 환난을 위하여 미리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때를 놓치지 않고 기도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예수께서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하자 그의 눈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고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한 후에 고쳐주신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구체적입니까? 추상적입니까? 바디매오처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보기를 원한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체적인 기도를 원하시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응답 받아야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바디매오처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꿈과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에게 임한 기적이 우리 모두의 기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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