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13:18-23 2014.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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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말씀으로 변화의 삶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어떻게 하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여러 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비롯하여 곡식과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보화 비유, 진주 비유, 그물 비유 등 7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의 내용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어떤 씨앗은 돌밭에,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에,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직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이 100, 60, 30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농부가 왜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지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도 뿌렸느냐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있어서 씨앗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씨앗이 없으면 아까운 땅을 그냥 놀려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는데는 전문가입니다. 어느 곳에 뿌려야 열매를 풍성히 맺을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농부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씨를 좋은 땅에 뿌려야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에 뿌린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당시 이스라엘의 농경지 사정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농경지 사정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농경지의 대부분은 척박한 산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겉은 흙인데 땅 밑에는 큰 바윗돌이 있거나,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는 땅이 많았습니다. 어떻든 농부는 좋은 땅에 씨를 뿌리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왜 농부가 좋은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을 구분하지 않고 뿌렸을까요? 씨앗이 남아돌기 때문일까요? 좋은 땅과 나쁜 땅을 구분하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비록 씨앗이 잘못 떨어져서 죽을지라도 그 중에 열매를 맺을 씨앗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에게 말씀을 전해야 열매를 맺을지 다 알고 계시지만 그것을 계산하지 않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고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여러분들이 자식을 키워서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식을 학교에 보낼 때에 공부를 잘할지 못할지를 미리 계산해서 잘 할 것 같으면 보내고 못할 것 같으면 안 보내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무조건 보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 중에 발달장애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장애아의 부모는 아이가 장차 자라서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지 못할지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한 주에 설교를 적으면 9, 많으면 12회를 합니다. 어떤 분은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아멘으로 화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과연 많은 시간 말씀을 준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치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같아서 씨를 뿌려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예배의 감격이 있고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 되었어도 감격과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니라는 여성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벌써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세계적으로 교회학교 부흥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제니는 인디애나 주의 헤몬드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도 인디애나주에서 D3왕의사역 양육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인디애나주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중소도시에 해당합니다. 제니는 가장 못 생긴 여성으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못 생겼던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남학생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그 일로 우울증에 걸려 3번이나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호흡이 끊어지지 않아 살고는 있었지만 죽은 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전도한 사람들이 끈질기게 양육을 해서 영적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전도했던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그 교회가 바로 헤몬드 침례교회였습니다. 봉사를 하고 싶어 교회를 둘러보았지만 자신을 기꺼이 받아 주는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부서가 그를 받아주어서 유치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유치부 아이들은 자기의 외모를 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그들의 선생님이란 사실 한 가지 만으로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을 쫓듯이 자기 뒤를 졸졸 따라오더라는 것입니다. 제니는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게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주시는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고 실제로 그렇게 시행을 했더니 너무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장년교인 1,500명인 교회에 주일학교 학생이 3만 명이나 몰려드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떻게 제니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사랑해준 양육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산적으로 사랑하시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깨달을 때에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니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마음 밭이 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네 개의 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마음이 네 개의 밭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네 종류의 밭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에 전혀 딴 생각을 하여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씀이 마음에 심어질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길가와 같은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 불평하고 원망하므로 받은 은혜를 쏟으면 돌밭과 같은 것입니다. 또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시떨기와 같은 것입니다. 또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면 좋은 밭에 뿌려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각각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하고 자신의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첫째로, 길가와 같은 마음인 경우입니다. 19절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길가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겉이 단단하여 씨앗이 심겨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길가처럼 단단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밭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까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굳은 마음을 기경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강퍅한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지만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씨 뿌리는 비유말씀을 읽던 중 자신이 왜 예배의 감격이 없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굳어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음을 찢고 회개하자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혹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습니까? 삶의 변화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길가와 같이 굳어져 있음을 알고 회개함으로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돌밭과 같은 마음인 경우입니다. 20-21절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흙이 얕은 돌밭에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흙이 얇아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습기도 부족하여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면 곧 말라 시들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만 마음 깊은 곳에 견고한 돌덩어리가 자리를 잡고 있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견고한 돌덩어리라 무엇이지 아십니까? 이런저런 일로 받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대부분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병으로 발전합니다. 암의 원인도 결국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라는 한자가 병질 부()에 바위 암() 자를 쓰고 있습니다. 암이 바위처럼 단단하다는 뜻이지만 이는 바윗덩어리와 같은 마음의 병이 암을 일으킨다고도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암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최소 3년에서 최대 8년 사이에 사업 실패, 이혼, 사별, 배신 등의 충격으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경우에 걸린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잘 걸리는 병중에 화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몸에서 열이 나며 마음이 분노로 가득한 병입니다. 정식 영어 명칭도 있는데 ‘Hwa byung’이라 씁니다. 1996년에 미국 정신의학회에 보고까지 된 한국인의 정신병인데 화병은 분노의 억압에서 기인하는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마 화병은 한국의 유교문화가 만든 질병일 것입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자는 복종과 인내를 강요당했습니다. 시집살이도 힘든데 벙어리 3, 귀머거리 3이라 하여 분노를 억제하고 꾹 참고 지내도록 강요당했으니 얼마나 마음의 응어리가 많겠습니까?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말씀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시험에 들어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세월이 흐르면 될까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자를 기억속에서 잊어버리면 될까요?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는 용서하지 않으면 온전히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용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마음의 상처로 인해 생긴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심을 치유하지 않으면 결코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용서 받았습니까?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정도로 큰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우리에게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36:26)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언약을 믿고 용서할 때에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공격을 이기고 용서함으로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인 경우입니다. 22절입니다.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덤불이 자라는 토양은 옥토와 같이 좋은 흙입니다. 그 땅은 표면이 단단하지도 않고 밑에는 돌도 없습니다. 문제는 씨보다 가시덤불이 먼저 자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흙의 영양분을 가시덤불에게 빼앗겨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그런데 이때에 믿음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은 더 빨리 자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는 속도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자라는 속도보다 빠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세상의 염려를 물리쳐야 합니다. 염려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는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6:2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염려는 아주 잘못된 습관이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악한 것입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베스트셀러 중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주된 내용은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중요한 약속을 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상대방이 나오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럴 경우 우리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혹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거는 아냐등등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서 염려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긴급한 일이 생겨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연락을 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합니다. 세상의 염려는 다 이와 같은 수준으로 쓸데 없는 것입니다. 미리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지나치게 염려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상의 염려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면 됩니다. 염려꺼리를 기도꺼리로 바꾸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비신자들 가운데 어려운 일을 만나도 태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천지를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가 염려하면 되겠습니까?

    또한 재물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싸워야 할 적중에 가장 무서운 적은 재물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재물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6:24).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지 재물을 섬기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일에 돈을 벌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재물보다 주님을 더 섬기는 것입니다. 또 여기저기 돈을 써야 할 곳이 많이 있지만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재물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욕심을 비우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물질의 유혹에 넘어져서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요즈음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왜 넘어지고 있습니까? 물질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계영배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계영배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일정 높이 이상이 되면 따랐던 술이 사라지게 만든 잔입니다. 사람들에게 적당히 마실 것을 권유하기 위해서 만든 교훈의 잔입니다. 조선 말기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욕심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촐하게 살던 주인공 파흠이 땅 욕심에 눈이 뜨여 수없이 이사를 다닙니다. 하루는 어느 마을에서 1000루블, 우리 돈으로 약40,000원만 내면 원하는 만큼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러자 즉시 머슴을 데리고 가서 그곳 촌장을 만납니다. 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하루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드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곳을 출발해서 한 바퀴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꿈에 부푼 파흠은 해가 뜨자마자 길을 떠납니다. 걷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숨이 차도록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런데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때부터 죽으라고 출발점을 향해 달려 보았지만 힘도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엄청난 땅을 코앞에 두고서 피를 토하며 죽었습니다. 뒤따라온 머슴이 주인을 묻었는데 그가 묻힌 땅의 크기는 3아르신, 2미터 10센티였습니다. 이 이야기 끝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파흠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벌어들인 게 전부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인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 축복인 줄 알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자족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인생의 종말이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해야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혹 우리가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면 회개하여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돌밭과 같은 마음이라면 용서하여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야 하고,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라면 염려대신 기도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짐으로 좋은 마음의 밭을 만들어 100, 60, 30배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새해에 이런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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