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느2:1-10 2014.3.16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느2:1-10 2014.3.16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느2:1-10 2014.3.162018-12-03T21:16: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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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에 느헤미야가 고국에서 온 형제 하나니로부터 자기 민족이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물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도 자신만 사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옆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데서 시작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해결할 문제가 있는 분은 3일이라도 금식하며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느헤미야가 금식하며 기도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금식기도를 한 후 술관원이었기 때문에 아닥삭스다 왕에게 포도주를 따라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눈에 느헤미야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자, 왕은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얼굴에 이처럼 수심이 보이게 된 것은 아마도 금식기도를 하여 평소보다 수척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봐서 알고 있지만 느헤미야가 유대에 남아있는 자기 백성들이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4).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일을 금했기 때문에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왕실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법에 의하면 왕 앞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나 왕과 대작을 하는 신하들은 얼굴에 근심 빛을 띄우면 곧바로 직위를 박탈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느헤미야가 쫓겨나기는커녕 왕이 느헤미야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금식기도를 들으시고 아닥삭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 예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20년간 종살이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국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20년 전에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물어봤더니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기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소식을 듣고 얍복 나루터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러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야곱을 죽이려던 형 에서가 야곱을 보더니 먼저 달려와서 목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바뀌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하만의 궤계로 유대민족이 몰살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당시 왕비인 에스더에게 왕께 나아가 자기 민족을 건져달라고 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법은 왕비라 할지라도 왕이 오라고 명하기 전에 먼저 가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삼촌의 요청을 곧바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모르드개가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라고 하자 에스더는 삼일 간 금식하며 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므로 흔쾌히 에스더 왕비를 맞아주었고 결국은 몰살의 위기에서 모두 건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가 허드슨 테일러에게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이 그토록 선교사역에 성공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기도로 사람을 움직였을 뿐입니다. 당신도 당신의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퍅한 자를 부드럽게 하실 수도 있고, 부드러운 자를 강퍅하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해결 될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직접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기자는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21: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최고의 권력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대로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라도 친구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만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비신자들도 움직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일이 주님의 뜻이라면 누구를 통해서라도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검은 돈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무릎을 꿇음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느혜미야를 보십시오. 그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느헤미야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최고 권력자를 움직여서 자신의 원하는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기도로 사람을 움직이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악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마음에 근심이 있는 것을 알게 된 때가 언제였습니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느헤미야가 고국의 상황을 알고 나서 기도하기를 시작한 것은 아닥삭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이었습니다. ‘기슬르월, 종교력으로 9월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마음에 있는 근심을 알고 도움을 청하라고 한 때는 제이십년 니산월로서, 종교력으로는 1월에 해당됩니다. 즉 느헤미야가 기도를 시작한지 4개월이 되어서야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신자나 즉각적으로 응답이 필요한 때는 빨리 응답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신지 얼마 안 되는 분들 가운데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는 분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곧바로 응답하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런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내심을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은 기다림의 훈련입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인내심을 통해 얻어지므로 인내를 훈련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인내와 성공은 비례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인내보다 더 큰 자산은 없습니다. 세상의 불행은 대부분의 참지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옵니다. 요즘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은 대부분이 다 인내의 결핍에서 옵니다. 유혹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어릴 때 기다림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마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의 과정에서 인내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지만 응답이 안 되어 절망하고 계십니까? 조금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요? 기다리는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기다리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4)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의 기초는 바로 인내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주시지 않고 날마다 내려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날마다 만나를 기다리게 하심으로 주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75세에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25년을 기다리게 하신 후에야 주셨습니다. 25년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까? 날마다 아들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오랜 동안 하나님을 기다리는 훈련을 잘 받자 그의 믿음을 인정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장 좋은 것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다 아시고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좋은 때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결단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빵이나 케이크를 맛있게 구우기 위해서는 어두운 오븐 속에서 적당한 시간을 지내야 합니다. 너무 빨리 오븐을 열면 부풀어 오르던 빵이 폭삭 꺼져버립니다. 빵을 굽는 시간에 배고파 죽겠으니 빨리 익으라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 빨리 익지 않느냐고 불평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서는 오직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혹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가장 좋은 것을 받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중임을 아시고 최고의 것을 받을 때까지 계속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사에 때가 있음을 아시고 조금만 더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느헤미야가 3개월이 지나도록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 유다는 3차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1차는 기원전 605에 일부 백성들, 즉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끌려갔습니다. 이때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할 것과 70년간 포로생활을 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2차는 기원전 597에 여호야긴과 관료들과 모든 용사들이 사로잡혀 가서 극빈자들 외에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왕하 24:8-16). 3차는 587에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어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사로잡혀 갔습니다. 반면에 바벨론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것도 3차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1차는 B.C 538스룹바벨이 중심이 되어 귀환했고. 2차는 B.C 457년경 에스라의 인도 하에 귀환했고, 3차는 B.C 444년경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귀환을 했습니다. 그런데 2차로 귀환한 에스라가 기원전 457년경 성벽을 재건하려고 했을 때에 그 일을 누가 중지시켰는지 아십니까? 아닥삭스다 왕이었습니다. 사마리아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삭스다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자, 아닥삭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 재건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왕에게 다시 성벽 재건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신하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역모로 몰려 민족적으로 큰 위기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도록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11). 그래서 그가 오직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 취하는 행동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하고 기도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성공하기를 원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처럼 아닥삭스다 왕이 100% 결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직 기도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마시고 빨리 손들고 주님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 줄 믿으시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그분께 목숨을 걸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닥삭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왜 근심하는지를 알자, 곧바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이보다 더 기다렸던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폐하, 제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지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4). 왜 느헤미야가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순간의 방심이 지금까지 그토록 기다려왔었던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다 되었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말에 다된 밥에 재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기다렸어도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이 날아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어떻게 끝까지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매 순간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기도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영혼의 호흡이었습니다. 평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우에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빈둥빈둥 놀다가 시험이 닥쳐야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학생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기도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이 안 될 때도 기도하지만 잘 될 때는 더욱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어떤 형태로 기도했을까요? 느헤미야가 폐하, 잠시 제가 하나님께 여쭙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대화를 중단해가면서 기도를 했을까요? 느헤미야가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왕이 눈치를 채도록 했을까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알지 못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그냥 기도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개역개정판은 그런 의미를 살려서 묵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왕이 알도록 기도했다면 왕이 어떻게 했을까요? 왕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돕기는커녕 형벌을 내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행실로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돕는 자를 발로 차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잠시 기도한 후, 왕에게 자신을 유다 땅으로 돌아가게 해서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5). 이 때 왕은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고 묻습니다(6). 이에 느헤미야는 자신이 얼마나 있다가 올지를 말하고 왕에게 두 가지를 요청합니다. 하나는 강서편 총독들에게 자신이 유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려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자신이 성문을 짜고 성을 쌓을 수 있도록 재목을 제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가 하려는 일에 대하여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할 때에 느헤미야처럼 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연구해야 합니다. 알아볼 것을 충분히 알아보아야 합니다. 혹자는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면 되지 사람이 무슨 계획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계획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루의 일과에 대한 스케줄이 있어야 합니다. 되는 대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신 것은 계획적으로 사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새벽에 첫 시간을 드리지 않고서는 계획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에는 특별히 새벽기도를 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벽시간을 먼저 주님께 드림으로 계획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릴 때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필요한 것을 다 말하자 아닥삭스다 왕은 느혜미야의 요구대로 다 허락했습니다(8). 그런데 느헤미야는 자신이 구하는 것을 왕이 그냥 허락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8) 라고 단서를 붙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는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 ‘그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비록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나의 하나님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도움을 간청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까이 계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와 친밀하게 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식과 멀리 하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멀리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감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감정은 수시로 바뀝니다. 언제 하나님과 멀리 느껴지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겠다고 결단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심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함께 따라서 외칩시다. 주님, 정말 세상에서 주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주님이 가까이 느껴짐으로 그분께 도움을 구하고 응답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오래 믿거나 직분을 받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사람을 움직여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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