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야베스를 카베드로 바꾼다 대상4:1-10 2013.12.1

//기도는 야베스를 카베드로 바꾼다 대상4:1-10 2013.12.1
기도는 야베스를 카베드로 바꾼다 대상4:1-10 2013.12.12018-12-03T20:59:5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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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거의 생소하고 발음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자주 들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베스입니다. ‘야베스고통, 수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이름이 그런 뜻으로 불린 것을 보아 아마도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가정 환경이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본문을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누가 누구를 낳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각자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다는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을 낳았고, 소발은 르아야를 낳았고, 르아야는 야핫을 낳았고, 야핫은 아후매와 라핫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야베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서학자들은 그 이유를 야베스가 유복자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복자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즉 야베스는 복중에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당시는 가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시대였습니다. 가장이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없이 살아야 하는 자녀들은 고통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을 때에 고통이라는 뜻을 가진 야베스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저는 8살 때에 아버님을 여의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기 때문에 별로 고생하지 않았지만 어머님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고생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들과 누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야베스의 집안도 저의 집안과 비슷했기 때문에 야베스는 유년기를 힘들고 어렵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야베스를 어떤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9절 상반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대상 4:9). 야베스를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드로서 존경을 받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안고 태어난 자가 그의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10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야베스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닥친 고난 앞에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존경 받는 자로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베스가 기도하자 고통의 사람에서 존경의 사람으로 바뀐 것을 보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막강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하나님과의 호흡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실제로 기도하여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실 수 있도록 성경의 인물가운데 두 사람을 통하여 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야곱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은 이삭이 리브가에게서 낳은 쌍둥이 아들 중에 둘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팥죽 사건으로 형과의 관계가 원수관계로 돌변했습니다. 이 일로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가 남편이 죽으면 작은 아들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남편을 설득시켜서 그를 자신의 고향인 밧단 아람으로 보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며 풍찬노숙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셔서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외삼촌의 아들들이 자신이 외삼촌의 양을 도적질 했다는 말을 퍼뜨렸습니다. 그 일로 야곱의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에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서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합니까? 가족들을 여러 떼로 나누고 자신은 맨 뒤에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있는 가족을 치면 도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자, 어떻게 합니까? 가족들을 다 얍복 강을 건너게 한 후 홀로 남아 하나님께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데리려고 오던 형 에서가 오히려 그를 영접하고 고향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운명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운명이 바뀝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하나님께서 대신해 주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면 운명이 바뀝니다. 둘째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때에 사역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웠느냐 하면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조차도 바알 신을 섬기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이 진짜 신인지 여호와가 진짜 신인지 알아보자고 갈멜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모이게 하여 영적 싸움을 합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가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돌로 제단을 쌓게 하고 그 둘레에 도랑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물을 붓게 하여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차게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소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이렇게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핥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의 불을 내려 제물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비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3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그가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더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없는 것을 있게도 하고 있는 것을 없게도 합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야베스가 어떻게 고난 가운데서 기도하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기도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평소 인생의 지경을 넓히고 싶어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현재의 상태로 만족하지 않고 그 꿈을 이루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되는 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18). 야베스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꿈을 갖고 하나님께 매어달려 간구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하는 강한 갈망이 있을 때에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81: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큰 꿈을 갖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꿈을 갖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드셨어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내 흑인의 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행방 운동을 꿈꾸고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킹 목사는 어릴 적부터 목사인 아버지가 흑인들에게 적용하는 부당한 법에 대항하는 것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교훈삼아 흑인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27살 때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버스회사에 대항해 버스안타기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백인과 버스회사 측에서 이 운동에 관여한 흑인들을 잡아가고 부당한 벌금을 물게 하자 루터 킹 목사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흑인행방 운동을 포기해야 하나, 그대로 나가야 하나를 고민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올바른 것을 위해 굳건히 서라. 진리를 위해 굳건히 서면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셔서 힘을 얻어 끝까지 계속 운동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고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날을 위해 꿈꾸고 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환난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기를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기를 기도했습니다. 왜 엘리야가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기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어지기를 위해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아무리 지경이 넓어져도 환난이 불어 닥치면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환난을 막아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진이나 태풍을 통하여 평생 일군 재산이나 생명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것을 수없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은 우리의 수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막아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127:1-2)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환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쌓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가까이 모셨던 목사님을 통하여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모셨던 목사님은 30대 초반에 현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단지에 600평 되는 대지에 1500석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40대 후반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5,500석의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90년대 초에 재적 성도가 8천 명에 이를 정도로 목회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분은 한 주에 두 번씩 부흥회를 다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한 달 수입이 4,000만 원을 넘었고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키디아 승용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크게 성공한 목회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신임했던 장로에게 배신을 당하여 사기와 횡령 혐의로 7년 형을 받아 교도소에 들어가자 그가 쌓았던 모든 성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송파구 장지동에 지은 교회도 시가로는 천억 원에 가까웠지만 200억 원에 경매로 다락방교단에 빼앗겼고 분당 오리에 있는 교회도 시가 160억 원이었지만 80억 원에 경매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수천 명이던 성도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15여 명만 남아서 목사님이 출소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목회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환난을 막아주시고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처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직장도, 사업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불어오는 인생의 환난을 막아주시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베스처럼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닥칠 환난을 위해 미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 후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하나님께서는 야베스가 구한대로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도 응답해주시지만 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응답받아야 할 제목을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인인 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즉 문제는 우리의 기도꺼리인 줄 알고 문제를 만나면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삼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든 작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제목이 되지 않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언 듯 보면 기도하자마자 곧바로 응답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기도한 기도제목은 성격상 단 번에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가 기도한 제목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오랜 시간 기도해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야베스가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랜 동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그 기도에 응답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랜 동안 기도도 하지 않고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동안 기도해서 응답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6:14)라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몇 세에 주셨습니까? 100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은 무려 25년 만의 일입니다. 그는 자그마치 25년이나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6:14)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금번 아주 특별한 7주연속 금요성령집회를 인도하면서 마치는 날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기도회를 통하여 또 다른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지만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 생각이고 내 생각은 앞으로 계속되는 금요성령집회를 통하여 새 일을 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짧은 기도가 아니라 긴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금번 7주 연속 금요성령집회가 끝났다고 금요성령집회에 그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참석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사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프로그램이 일상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금요성령집회에만 나오고 그 후로 기도를 중단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가끔씩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기도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첫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걷게 되듯이 특별기도회를 통하여 기도의 첫 걸음을 걷게 하여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들이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면 우리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시고 은혜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 받은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이미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장차 죽으면 고 전재찬 집사님처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누릴 영생복락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야베스처럼 기도하여 운명을 바꾸어야 합니다. ‘야베스에서 카베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배운 것이 적고 외모가 못나고 부족해도 기도하면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 모든 것을 다 응답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구하는 모든 기도를 응답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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