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46절. 2018.6.10.

//기도는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46절. 2018.6.10.
기도는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46절. 2018.6.10.2018-12-03T23:49:4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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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감람산에서 가셔서 기도하실 수 있었던 이유를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9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습관을 따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공생애동안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문제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평소 기도하셨기 때문에 기도의 습관을 가지시게 되었고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도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습관을 가지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날지라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왕 느브갓네살 왕에게 끌려가 그 나라의 총리가 된 자입니다. 다니엘은 총리 세 명 가운데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다리오 왕은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여 다니엘의 허물을 찾고자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고국을 향하여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서 다리오 왕에게 30일 동안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넣도록 금령을 내리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아 전국에 공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서도 이전처럼 하루 세 번씩 고국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리오 왕은 조서대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지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살리셨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을 참소했던 총리 일행은 대신 사자 굴에 던져 죽임을 당하고 다니엘은 다리오왕과 고레스왕 시대까지 형통하였습니다. 어떻게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그가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하루 세 번이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로,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아도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여 기도하고 있지 않다면 아직 기도의 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왜 기도의 습관이 중요한 줄 알면서도 이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껏 자신의 힘으로 살아오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갖기 힘든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제자를 데리고 산으로 가서 작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나무를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이제 막 심은 나무인지라 쉽게 뽑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나무를 가리키며 그것도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나무는 심은 지 어느 정도 지났기 때문에 쉽게 뽑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뽑으려고 애를 쓰자 마침내 뽑혔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나무를 가리키며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아무리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심긴지 오래되어 뿌리가 땅 속 깊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습관도 이와 같다. 선이든 악이든 그것이 오래되어 습관이 되면 그만큼 바꾸기 힘든 것이다.” (축사사역도 그렇습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것은 쉽게 나가지만 오래 된 것은 쉽게 나가지 않습니다.)
    토머스 스탠리 교수는 ‘부의 세습’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통계 자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미국 경제를 움직인 백만장자들을 연구해 보니 그들 중에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서 재벌이 된 사람은 고작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중산층이나 노동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즉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공통된 비결은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성실, 정직, 용기, 믿음, 신뢰, 근면 등 좋은 습관을 가짐으로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이 세상의 성공을 꿈꾸는 자들이 아닙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성공을 꿈꾸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습관보다 더 좋은 습관인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기도의 습관을 가지면 이 세상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습관을 쟁취하므로 이 세상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기도의 습관을 따라서 감람산에 가실 때에 혼자서 가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40절을 읽습니다.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에서는 40절을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전에 쓰던 개역한글판에서는 40절을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역개정판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번역하고, 개역한글판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번역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시험에 드는 것’과 ‘유혹에 빠지는 것’은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즉 시험에 드는 것은 곧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마귀의 통치하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드는 것은 마귀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에 이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자는 시험에 든 것을 자랑하듯이 말하는데 이는 창피한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될까요? 예수께서 친히 그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시 40절을 읽습니다.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예수께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어떻게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될까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합시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 시험에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시험을 이기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면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기에 시험에 들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단지 기도의 응답을 받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정도로 끝이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시험에 들지 않게 되어 마귀의 지배아래 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41절입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시고 그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 친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은 예수님께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런 시험 앞에서 예수께서는 친히 기도하심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기도하라고 말만하시지 않고 먼저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시험을 앞두시고 기도하신 것은 우리도 기도하면 어떤 시험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도하면 그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 말하지 말고 실제로 기도하므로 모든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다시 42절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께서 처음에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계셨기에 이를 피하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의 끝을 예수님처럼 맺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소원을 아뢰지만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어떤 자세로 하셨습니까? 44절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 본문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힘쓰고 애써’ 기도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기도할 때에 육체적으로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단지 입으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노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언제 땀을 흘립니까?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즉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육체적으로 힘들게 기도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려면 반드시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힘을 소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더욱 간절히 기도하더니’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간절히’라고 하는 말은 원래 희랍어로 ‘내면으로부터 밖으로 쭉 뻗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동일한 단어가 사도행전 12장 5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빌더라.”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본문에는 비교급이 사용되고 있고, 사도행전에는 원급이 사용된 것입니다. 왜 누가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단지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하지 않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했을까요? 즉 원급을 쓰지 않고 비교급을 썼을까요? 그것은 42절을 읽어보면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던 중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른 것을 알고 이 둘 중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셨기에 이전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도 항상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기도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선택할 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기도에 전혀 간절함이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힘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니다. 자신이 90%는 했으니 하나님께서 10%를 도와주셔서 일이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가지고 기도하면 간절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무엇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잠을 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잠을 자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45절입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한마디로 슬픔 때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신 것을 인하여 슬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공관복음 기자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마 26:43)라고 말하고, 마가복음 기자는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막 14:40). 한마디로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잠들게 된 이유를 피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제자들이 잠들게 된 이유를 다르게 기록한 것을 빌미로 성경의 오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자들이 잠든 이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제자들이 잠든 이유가 여럿이 있는데 누가는 둘 중에서 슬픔을 크게 강조했고 마태와 마가는 피곤을 더욱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일로 근심하거나 육신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물리치고 기도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슬픔과 피곤의 이유로 기도의 잠을 자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동안 한국에서도 기도에 관한 책으로 베스트 셀러까지 오른 책 가운데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기도를 강조하고 건강한 교회사역으로 명성을 떨쳤던 빌 하이벨스가 14년간 교회의 여성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기도의 습관을 갖고 있었고, 겉으로는 건강한 사역자처럼 보였는데 이토록 장기간 성적인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더욱 간절히 기도하지 않음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기도의 습관대로 기도해서는 마귀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뜻과 정욕을 죽이고 오로지 하나님을 뜻을 좇기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자라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부터 이렇게 하기로 새롭게 결단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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