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눅14:25-35절 2017.6.18

//그리스도의 제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눅14:25-35절 2017.6.18
그리스도의 제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눅14:25-35절 2017.6.182018-12-03T23:28:3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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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본문은 한 마디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것을 말씀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25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이를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수많은 무리를 향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의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단순히 따르는 자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단순히 따르는 자는 조건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6절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전반절에 “내게 오는 자”라는 것은, 예수님을 그냥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미워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헬라어로 ‘미세오’라고 하는데, 이는 “다른 것과 비교하여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주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실까요?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인데 주님보다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가장 우선적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최우선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반면에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요구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께서 구원자이시고 주인이심을 알면 이런 요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믿음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런 명령을 하신 분이 누구신지를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백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분이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전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을 명하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 명령을 하신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명령하신 분이 누구신지를 알면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하실지라도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합니다. 27절을 읽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께서 이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만하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런데 예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계셨지만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고통을 피하지 말고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단순히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대 계명을 실천하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령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대부분 이 명령을 알고만 있지, 실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을 주셨는데 이 계명과 함께 그것을 실천할 방법을 알려주시지 않았겠는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제품을 구입하면 당연히 그 제품의 사용설명서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대계명의 실천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대계명을 실천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영혼 구원인데, 가서 제자를 삼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원하게 되고, 복음을 전해서 이웃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그들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원수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므로 최고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을 능히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8-33절입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에는 두 가지 예화가 나옵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비유와 이 말씀의 상관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께서 제시하신 세 번째 조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두 비유를 말씀하신 후 곧바로 ‘이와 같이’라는 접속사를 통하여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두 가지 비유와 ‘이와 같이’ 뒤에 나오는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망대에 관한 이야기든 싸움에 관한 이야기의 공통 주제가 무엇입니까? 망대를 세우든, 싸움을 하든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망대이야기에서는 먼저 계산해 해야 중도에 건축을 중단하지 않음으로 비난을 피할 수 있고, 싸움이야기에서는 먼저 맞서 싸울 것인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소유욕을 버릴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자기 소유욕을 버리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 종종 이름을 날렸던 영적지도자들이 쓰러집니까? 겉으로는 이유가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소유욕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아가는 일에 성공하려면 소유욕을 버려야 합니다. 소유욕은 크게 명예, 물질, 권세를 포함합니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유욕을 버리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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